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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220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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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人)좋은 지리산(7) - (속) 밥 짓는 여인



산 걸뱅이 신세- 부득이 나도 오늘 산 걸뱅이가 되었다.
평소 같이 가는 일행들 중에도 점심때가 되어 다같이
식사준비를 하면 달랑 스푼과 포크만 들고 온 사람이 있다.
스푼도 보통 스푼이 아니다.
US 마크도 선명한, 웬만한 소형 국자만한 미제 군용
스푼을 잊어버리지 않게 철저하게 소형 카라비너에 걸어 다닌다.


아가씨는 -
‘오늘이 추석인데 고향은 안가시고 어떻게 산행 길로 접어들었습니까?’
‘예, 모든 걸 버리고 이번 휴무를 이용해 꼭 첫 종주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화엄사 머리 자르고, 대원사 꽁지 자르고 여기서 천왕봉까지의
일정을 계획하고 왔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쩔까? 생각중입니다.
뭔가를 느껴보리라! 각오하고 챙겨온 비 젖은 야영장비의 무게가
작란이 아닙니다. 비도 언제 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가씨는 어쩌시렵니까?’
‘예. 전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감행합니다.’
연상 밥숟가락을 떠 넣으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어쩔까? 하는 생각뿐인데.
‘웬만하시면 가시다가 정 안되면 중간에 떨어지더라도 같이 가시죠?’
하며 아가씨는 같이 가길 독려했다.
예, ‘나도 중간에.........’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전에 1차 때도 악천후에, 고독에 중간에 떨어졌는데 습관성이 될 것 같아
아예 종주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출발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이래저래 종주할 사람치고는 이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파트너인지 러닝메이트인지 동행자가 있을 때 나도 함께 감행하기로 했다
둘이서 한솥밥을 먹은 탓인가 의기투합하여 손바닥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명절이라 적막하기 까지 한 노고단을 뒤로하고 우리는 출발 했다.


앞서 걷는 뒷모습을 보니 배낭을 꾸린 솜씨나, 옷차림과 착지하는 보행자세도
아주 단정하고 노련하다. 체계 있는 산악회에서 선후배들과 평소 많은 산행을
하며 나름대로 산행의 멋과 지혜도 잘 터득한 것 같았다. 한 말로 매너 있는
‘山 낭자’였다. 앞서 가면서도 수시로 뒤로 돌아보면서, 나의 컨디션을 읽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은 물먹은 배낭무게에 짓눌려 벌써
낑낑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쉬고 일어 설 때마다 무게가 틀린다.
처음엔 돌을 몇 개 넣은 것 같으니, 다음에는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다.
이제 빗줄기도 많이 약해졌다. 배낭을 내리고 Dunlop 고어텍스 얇은 비옷을
벗었다. 여태 겉은 멀쩡하고 부드럽고 가벼워 많이 애용했는데, 옷을 벗어 안쪽
등판을 유심히 보니, 그새 많이 낡아 등판 부분의 노란 고어 필름은 이미 다
벗겨져 물기가 비쳐있었다. 배낭에 시달린 임자의 흔적처럼 보였다.


Karimor 콘돌 배낭 60~80 리터는 사람의 등판 체형에 따라 후래임 형태를 맞출 수
있어 배낭 크기에 비해 짊어 져보면 등판에 착 들어붙는다. 잘 만든 배낭의 첫째
조건이다. 그리고 평소 귀찮게 여기던 허리벨트나 가슴벨트도 짐이 많거나 체력이
소진되었을 때는 실로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애초부터 잠글
건 다 갖춘다. 출렁출렁 달고 다니는 것보다 보기에도 단정하다.
좀 답답해도 다 필요에 의해 부착된 것이다. 하중의 분산이다.

아!~ 이제 얼마 안가면 뱀사골 산장으로 빠질 수 있는 돼지령이 나온다.
봄이면 전문 산나물 채취꾼들이 이곳저곳에서 채취한 나물들을 한곳에 집결 시키는  
수집 장이라 큰 자루들이 몇 개씩이나 듬성듬성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키는 사람은 없어도 그들의 생계를 생각한다면 아무도 집어 갈 사람이 없다.

이때 ‘땅!!!!~~~~~’ 하는 천둥소리에 우리는 기겁을 하고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오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번쩍거리는 섬광은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큰 뇌성은 처음이다. 두 사람 다 눈만 멀뚱해 있는데, 불과 10여m 숲 속에서
갑자기 ‘우지직~~’소리가 들리더니 전봇대 보다 더 큰나무가 힘없이 중간이
찢어지면서 넘어졌다.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저 벼락이 만약 내게로 정통으로
왔다면 나는 이 순간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서 주인공이 일찍 사망하면 이야기가
안 된다.아마 ‘강시’아니면 ‘터미네이트 5’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설마 지가 아무리 조종을 잘한다 하더라도 이 넓은 지리산에서 또 이 자리에
떨어질까? 생각하며 좀더 가까이 들어 가봤다. 허연 나무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끝은 꼭 아쉬운 되로 나무젓가락 비틀어 이 쑤시게 하기에 알맞은
모양으로 삐쭉삐쭉하고 예리하다.


혹시 대추나무?, 저게 만약 ‘벼락 맞은 대추나무’라면 잔솔가지 하나만 꺾어가도  
온 식구대로 진짜 도장을 하나씩 파고도 남아, 친구들한테도 인심 쓸 수 있는데.
모든 나무가 물에 다 뜨지만 진짜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뜨지 않고 깔아 앉는다.
왜, 대추나무만 벼락을 맞으면 웬만한 톱으로는 슬어지지도 않을 정도로 강해지는지?
십년감수가 따로 없다. 하필 뱀사골로 떨어지는 길목에서 어째 이런 일이 발생하여
선수사기를 떨어트리는지 모르겠다.


토끼봉 넘어가는 쪽으로 짙은 스모그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여기까지는 무사히 잘 왔다. 다른 사람은 구경도 못했다
일단 점심 겸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짧은 순간 이었지만 극지에서 만난 연민도 석별의 정을 나눠야한다.
먹을 것은 전부 다 끄집어내었다. 가랑비만 조금씩 뿌렸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건 모두 다 주었다,
나는 추파춥스, 오이, 스튜 한 캔, 마른 마늘빵, 자유시간, 양갱만 나눠챙겼다.
허탈하고 외롭고 지루한 하산 길이지만 4시간 여 후면 반선에 떨어진다. 시원한
민물 매운탕이나 산채 비빔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이제 그녀도 외로운 고행 길로 들어섰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초점을 빼앗긴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전 그녀는 뒤돌아보며 무언의 손짓을 했다.
나도 말없이 잘 가라며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무사히 완주하여 귀가하시길 기원했다.
은근과 끈기, 지성과 지혜, 인내와 고행의 길도 마다않는 여자
참으로 멋진 여자다. 오늘날 한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탱해나가는 精神이자,
이 나라의 눈부신 발전에 보이지 않는 神力 이었다.
만용, 기만, 허욕, 폭력, 경쟁, 과욕이 넘치는 수컷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다.
여자..........., 여자.........., 그러나 내게는 必要惡 일 뿐이다. [疊疊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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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해 봉 2004.07.03 21:49
    돼지평전에 떨어진 벼락에 무지하게 놀라버렸군요,
    그래 비맞고 힘들어서 뱀사골로 내려와버렸단 말이군요,
    가을언제쯤 가벼운차림으로 화엄사에서 대원사 2박3일한번 어떨까요.
  • ?
    疊疊山中 2004.07.04 00:35
    '가을 언제쯤' / 나를 닮은 계절이라 더욱 설레이는 말 입니다.
    지금부터 몸을 만들면 불가능도 아니련만 화엄사 '코재' 생각에
    괜히 멀쩡한 내 코를 한 번 만져 봅니다.

  • ?
    sagesse 2004.07.06 17:42
    굉장히 차카게 사신 모양입니다.
    벼락맞을 확률이 로또맞을 확률보다 높다던데...
    전 아무래도 천둥번개님이 오시는 날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군요.
    하느님께서 인재는 너무 일찍 데려가시는 경향이...
    우리 가족카페와 동시에 열어놨는데 음악은 우리 가족카페의 완승이로군요.
    지금 여기에 나오는 음악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우리의 엘자양이 "Quelque chose dans mon coeur"를 목터져라 반복해서 부르고 있네요. 얼른 가서 쉬게 해줘야겠습니다.
  • ?
    나그네 2004.07.07 11:51
    뱀사골로 빠지는 곳은 돼지령이 아니라 화개재입니다.
    돼지령에선 피아골로 내려가게 되지요.
  • ?
    疊疊山中 2004.07.07 19:40
    으흠~~ 그래 맞네 맞어. 기억 용량 부족 입니다.
    산행기가 아니고 그냥 인물 본위의 이바구 인께.
    예리한 관찰력 좋습니다.
    그래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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