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2549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물(人)좋은 지리산(6) - 밥 짓는 여인



세상에, 세상에 비도, 비도...............
잘 때만해도 청청하늘이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어제 밤, 자기 전 까지도 맑은 하늘에 별이 총총했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니 장대같은 비가 퍼붓고 있다.
텐트안도 어떻게 물이 들어왔는지 거의 물바다다.
폭포수 아래에 텐트를 쳐 놓고 있는 것 같다.
노고단 (老姑壇) - 늙은 시어머니 제사 터에서 누가 제사라도 
잘 못 드렸나?



추석 연휴를 맞아 조상차례도 외면한 채 벼루고 별루든 
지리산 단독종주를 위해 2박 3일의 여유를 가지고
이곳 노고단까지 와서, 추석 전날 밤을 맞았는데 또 악천후란 핑계로 
실패란 말인가? 지리산 종주를 비박으로 낭만을 즐기며....................

전날 느지막해서 노고단에 올라서니, 얼마 전만해도 없던 식기 개수대가
새롭게 지어져 지붕도 씌운 채 아주 깨끗한 상태로 서있었다.
지붕도 있고 바닥도 반듯한 개수대에 일인용 텐트를 치고 잘까? 망설이다가 
여기까지 와서 또 시멘트 바닥에 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내츄럴 하고픈 생각에 배수로도 파져있는 흙바닥에 
텐트를 치고 잤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비가 그칠 때까지 텐트 안에 갇혀 기다릴 수도 없다.
아무리 플라이가 없다 해도 명색이 고어텍스 텐트인데 어디로 비가 새어
들었을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일본 ICI의 제품으로 침낭처럼 
생겨 입구에만 폴 대 하나만 들어가, 앉아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는 않는다.
편의성은 비박용에 가깝다. 이번 종주계획으로 짐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고어텍스라 무게는 좀 나가는 편이지만 과연 설치도 간편하고 부피는 작다.

그나마 이런 물속에서도 세상천지 모르고 잔 것은 오리털 침낭과 서머 레스트
(Them-a-rest)에어매트 덕이었다. 꼭 눈 위에서 자는 겨울이 아니더라도 야영 시 
매트의 중요성을 재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일반 스펀지 매트에 눈에 안 보이는 
바늘구멍이라도 있다면 등에도 물 바닥이 되었을 것이다. 냉기도 올라오고.
안락함 또한 침대에 누운 듯한 탄력을 유지 할 수 있다.
찬찬히 내부를 살펴보니 씰링이 안 된 봉제 선으로 빗물이 새어들었다.
역시 텐트는 플라이가 있어야 하는데, 부피도 줄이고 비박용에 가깝다보니
생략한 것 같다.

비는 조금도 숙으려 들질 않는다.
일단 비에 젖은 비옷을 껴입고 밖을 나와 텐트 채 끌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개수대로 들어갔다. 사람이라고는 대학생 2명과 여자 한명뿐이었다.
오늘 같이 저 너른 대피소 놔두고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는가? 하고 모두들
측은한 듯 쳐다본다. 학생 두 명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씻고, 여자 한 
명은 쌀을 씻어 뜨물을 버리고 있었다.

텐트 속에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니 물통에서 막 건져낸 빨래 감 같았다.
가든지 오든지 하나하나 정리하여 다시 배낭에 집어넣을 수밖에.
다행히 비에 젖지 않은 여불 양말 한 켤레만 두고 비닐 텐트 시트까지 말끔히
씻어 다 집어넣었다. 이미 집 떠날 때 비에 대비해 배낭 속에 대형 비닐봉투를 
넣고 그 속에 다 넣어 왔기에, 속으로는 더 물이 스며들지는 않겠지만 오리털 
침낭도 물을 먹어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다.
여기서 집으로?.........  산으로?..............
어디서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 나도 쌀은 있었지만 이 상황에 밥 지을 
의욕도 나지 않아 비상식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그때 ‘아저씨 식사 좀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까 쌀을 씻던 여자가 말을 했다.
바람도 불고 스산한 날씨다. 학생 둘은 가고 없고 사람이란 두 사람 뿐이다.
개수대에서 밥을 짓고 여기서 먹을 참인데 맥 빠진 내 모습이 처량해 보여 
호의를 베푸는 것 같다.
산에서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 상대적으로 빼앗긴 사람은 한 끼를 굶어야
할 정도로 식량은 귀중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산 걸뱅이’라 한다.
내가 드디어 산 걸뱅이로..............(계속)  [疊疊山中]


 

  

  • ?
    진로 2004.07.01 11:02
    저도 이제는 비박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그래도 반짝이는 별을 보며 산중에 누워
    웃어도 보고 상념에 사로 잡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지리산 음악소리에
    잠이 들고 싶어지네요.
  • ?
    솔메 2004.07.01 12:05
    '산걸벵이'!
    재미있는 말이네요.

    지리산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많으시군요.
  • ?
    오 해 봉 2004.07.02 01:26
    역시 첩첩산중님 이십니다,
    김은샛는데 그 후가무척 궁금합니다.
  • ?
    가시고기 2004.07.29 14:54
    지난 추석일이군요 저희도 대원사 골에 있었답니다 님처럼 그많은 비를 맞이했구요 가족 네명이 추석날 지리에 도착해 일박을 했는데 매미의 태풍이 그리올줄을 몰랐답니다 비상사이렌은 울리지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그래도 지금생각하면 추억이랍니다 님의글을 우연히 보게되니 저희와 비슷한 상황이었군요 그래도 지리산에 추억을 묻지않았습니까 님에글이 정말 좋으네요 저희도 지리산을 무척좋아합니다 저희는 팔월에 다시들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지리산의 추억 4 file 운영자 2001.09.15 9607
89 [re] 제가 2학년때 아빠와 둘이 다녀온 지리산에서 느낀것을 글로 씁니다 전형기 2004.08.17 1851
88 물(人)좋은 지리산(8) - (종)밥 짓는 여인 6 疊疊山中 2004.07.04 2975
87 물(人)좋은 지리산(7) - (속) 밥 짓는 여인 5 疊疊山中 2004.07.03 2204
» 물(人)좋은 지리산(6) - 밥 짓는 여인 4 疊疊山中 2004.07.01 2549
85 한수내야~한수내야~(진로님 글에서) 4 섬호정 2004.06.26 1823
84 물(人)좋은 지리산(5) ㅡ 오영희 10 疊疊山中 2004.06.25 2349
83 반가운 얼굴들...-송정분교 사랑방모임. 19 솔메거사 2004.06.24 2595
82 술에취해.이야기에 취해 30 산사춘 2004.06.22 3511
81 [re] 술에취해.이야기에 취해 명일 2007.01.17 1568
80 우중(雨中)속의 호사(豪奢) 20 편한세상 2004.06.21 2416
79 반가웠습니다. 16 file 솔메 2004.06.21 1890
78 늦은 도착 보고입니다. ^^* 24 부도옹 2004.06.20 2232
77 예... 시인의 마을이었죠 ^^* 18 허허바다 2004.06.20 2364
76 "벽소령 솔빛 울음" / 詩 오영희 11 疊疊山中 2004.06.20 2072
75 물(人)좋은 지리산(4) - 오브넷 가족들 모임 15 疊疊山中 2004.06.20 2553
74 물(人)좋은 지리산(3) - 자랑스러운 “포터” 6 疊疊山中 2004.06.14 2142
73 추억의 오버랩 (진민) 15 진민 2004.06.09 2224
72 물(人)좋은 지리산(2) - 생선회 5 疊疊山中 2004.06.02 5097
71 별 . . . * 2 疊疊山中 2004.06.01 2043
70 [re] 별 . . . * / 화가 김형권 1 疊疊山中 2004.06.01 21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