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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302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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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희 갤러리 : 출처/ 노고단에서

물(人)좋은 지리산(10) - 여 선생님


‘아저씨는 뭐 하시는데 여기 오시면 꼭 그것만 보십니까?’
어느 날 찜질 방에서 주야 교대로 청소를 하시는 한 아주머니와의 첫 대화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녜, 이곳은 “오브넷” 이란 곳인데 우리 젊은 회원들이 
산행 중에 찍은 사진과 산행기를 써서 올려주기 때문에 저는 이곳을 자주 
들어와 봅니다.’그 이후 그녀는 복도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다가도 나를 보면 꼭 
인사를 하였고, 조용할 때는 어느새 왔는지 내 뒤에서 살짝 보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3년 전에 찜질 방이 하나 생겼는데
내 성격과 별로 맞질 않아 한 번도 그런 곳에는 가보질 않았는데, 어쩌다 최근에
환경이 바뀌다보니 이용하게 되었다. 그곳 휴게실에는 8 대의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물론 500원 주화를 넣어야 20 분간을 사용할 수 있다. 20분이면 충분히 
한 번 둘러보고 댓글도 달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언제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스톱 아니면 무슨 오락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음료수를 함께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기 옆집에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다가 퇴직하고, 지금은 집에서 학생들을 개인지도 
하면서 홀로 사시는 언니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살아생전에 다시 한번 지리산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면서 심심하면 지리산 이야기를 하더라했다. 
그 뒤 나는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잊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홀로 계시는 초로(初老)의 
전직 여교사의 지리산 동경’에 연민이 싹 트면서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도무지 미워 할 수 없는   오브넷에 투신하고부터는 누가 지리산 
이야기만 하면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내가 지리산 산지기라도 되는 듯 신이 난다.
단지 언젠가 어느 분이 지리산에 올라보니 사방이 온통 산뿐이라, 갑자기 
疊疊山中님 생각에 감개무량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어떤 여인은 고난의 인내 끝에 천왕봉에 올라 疊疊山中을 보니 눈물이 다 
나올려 하기도 했다고 그 감동을 산행기에 섰다. 진짜다. 

‘그것 참, 지리산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라? / 그것도 초로의 전직 여선생님께서....’ 
‘다른 곳도 아니고 지리산이라면 나의 영혼의 고향인데......../ 그것 참.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지만..... / 지리산이라?......
그리고 잊은 듯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점심시간 쯤 그 곳을 들렸더니 그 여인이 근무 중인데, 평소 그녀의 친절이
고마워 나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제안 했더니, 점심은 이곳에서
제공 받는다며 사절을 했다. 그 대신 퇴근 후 저녁을 사주시면 안 되겠느냐? 했다.
‘좋습니다’ 하고 나 홀로 점심을 먹고 나오니, 또다시 ‘저녁에 언니도 함께 오면 
안되겠느냐? 고 말했다 ‘아~ 지리산 가고 싶다는 선생님 말입니까?’ ‘예’
‘좋을 대로 하십시오’ 

연세는 나보다 많았지만 아직도 초롱초롱한 눈매를 하고 계신 선생님은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사범학교를 나와 이곳으로 발령받아 여기서 결혼하고 홀로 되신
적이 한 10년 가까이 된다했다. 학창시절에 친구 두 명과 함께 산청을 지나 겨울
방학 때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는데, 그 때의 고생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하면서 
그 중 한 친구는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조용히 하시는데, 불빛에
눈동자가 촉촉해 보였다. 이럴 때 나는 한없이 마음이 약해지는 약점을 보유하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뭔가의 명분을 찾기 위해 골몰하였다. 
‘그래 맞아!~’ 언젠가 신문지상에서 모범택시 기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이나 
장애인들을 번갈아가며 무료로 봉사해주는 미담을 읽은 생각이 났다.

그 분들은 생계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런 봉사를 하시는데 나라고 못 할 소냐?
‘그래, 좀 멀긴 해도 차로 태워 모셔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 언저리도 안 가본 적이 몇 년 된 것 같다
나는 대뜸 ‘ 선생님, 언제 한 번 지리산 구경 시켜드릴까요?’ ‘예?~~’
‘나도 따라가면 안 됩니까?’ 하고 청소부 아주머니는 뜻밖의 제안에 기뻐
큰 소리로 말했다. 날짜는 청소아주머니의 휴무일로 잡기로 했다.
식사를 끝내고 헤어져 돌아오면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잘한 것 같다.

산행을 할 것은 아니지만 오래 만에 다른 곳도 아닌 지리산을 간다하니, 
나도 당일 산행에 버금가는 복장으로 갖추었다. 
등산은 사람이 즐기는 무상의 행위 가운데, 승부욕이나 경쟁심을 유발하지 않는 
제일 상급인데도 골프나, 볼링, 테니스 등은 별의 별 복장으로 똥 폼을 다 잡는데, 
아무리 자연의 품이라 해도 산에 나무하러가는 복장이나 예식장 가는 복장은 스스로 
삼가야 한다는 것 또한 나의 똥 폼 철학이다.

맞다, 깜빡 잊을 뻔 했다. 이런 날 기념촬영 하나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실까?
친구들에게 확실한 자랑꺼리가 될 텐데. 그런 것도 가지고 다니기가 싫은 연령이 
되다보니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한 때는 열정을 가지고 한 가방 메고 다니면서
헤맸지만 오래전에 모든 걸 접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단지 P&S (point & shoot)용으로 허리 벨트에 찰 수 있는 조그마한 Contax T2가
하나있다. 물론 필카다. 2안으로 현대적 감각의 오토지만 눈알만은 명색이 칼짜이즈 
소나 2.8이다. 아쉬운 되로 접사도 먹어진다. 거기다 환갑 기념 제품이라 금장으로 된
바디에 ‘60th anniversary’ 라고 선명히 찍혀있어 아끼기만 했다.

두 분의 옷차림도 나름대로 가벼워 보였다.
‘지리산은 워낙 넓으니 어느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까?’
‘우리야 뭐 압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그래, 언젠가 사업상 협상 테이블이 되기도 한 ‘하늘아래 첫 동네’ 심원계곡으로 모셔 
점심을 무지개 송어회로 먹으면 한결 좋을 것 같았다.
칠선계곡, 문수계곡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계곡 중에 하나다. 주민들의 인심은 점점
각박해 졌지만 그런대로 원시성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비록 정상은 아니지만 40여년 만에 찾은 선생님의 감회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계곡을 살금살금 걷는 뒷모습에서 지나온 한 여인의 일생을 보는 듯 아렸다.
한 동안 누구도 서로 말이 없었다. 과연 여자의 일생은 무엇이 중요한가?
인생은 행복도 불행도 아니지 않는가?‘다시 한번’이 없는 인생이 원망스럽다.
‘생선회가 다 되었다’는 소리에 한자리에 모였다.
선생님은 식탁 앞에서도 눈에 안보이게 뭔가를 묵상하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선생님 많이 드십시오.’이런 생선회는 처음 드시지요? 당근처럼 속살이 붉은 참치
나, 연어, 송어는 피로회복과 stamina 식으로 좋답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숭어 Trout Quintet의 주인공입니다. 지리산의 맑고 찬물에 자란 것이라 맛이 좋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하니 선생님이 단호히 뿌리치셨다.
‘우리도 돈을 버니 염려 마십시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노고단을 올라가는 성삼재 인데 구경 
한 번 하시고 가시렵니까?’‘예, 노고단 말은 많이 들었지요. 갑시다’
이 성삼재 주차장에서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내로 노고단을 갈 수 있습니다.
여기를 차로 올라왔어 그렇지, 이 주차장이 해발 약 1,100m 가 됩니다.
석남사 가지산 꼭대기를 차로 올라 온 셈입니다. 굉장히 높은 곳입니다.

‘아, 이런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하룻밤 자면서 노고단도 가보고 했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유명한 노고단 원추리도 핍니다.’ 
한 두 포기도 아니고 온 산이 꽃이지요. 안개가 바람에 날릴 때면 더욱 장관입니다.
그때 한 번 더 오시면 이 밑 동네에서 민박하시고 새벽녘에 일찍 올라가시면 
산봉우리들이 구름위에 떠 있는 신비로운 운무도 볼 수 있습니다.
원추리가 필 때 쯤 제가 다시 한 번 모시겠습니다.


그때는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그런 약속 비슷한 말을 하고 말았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는 일을, 남의 사연도 모르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노고단에 
원추리가 피었다고 오브넷에 사진을 올리고 하니 이 일을 이제 어쩌면 좋을까?

보고도 못 본 척 눈을 감고 있어야 할지? 
선생님, 노고단에 원추리가 활짝 피었답니다. 하고 말을 해야 할지? [疊疊山中]

If we take a little time /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And we leave it all behind / 모두 제쳐 놓고 한 곡 더
And sing one more song / 노래를 부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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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바다 2004.07.17 16:06
    말씀 드리고 같이 가서 보세요 ... ... ...
    조물주가 준 시간이 아직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가시어 이미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확인하시더라도...
    지나면 후회하는 것 너무나 여러번 당해 보셨을 것을...
  • ?
    김수훈 2004.07.17 21:42
    어제, 번개 모임에서 얘기했던 "싱가폴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울릉도에서 만나 얘기 끝에 우연히 지리산을 같이 가자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작년에는 2박 3일 종주, 금년에는 바래봉 철쭉 구경을 같이 갔었습니다.
    다음 주에 노고단 탐방을 한 번 모시고 가시지요? 원추리가 한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
    sagesse 2004.07.18 11:18
    ㅏㅏ,,, 나두 노고단 원추리 보는게 소원인디...
    근디 젊은 처자는 사절이신감유?
    노고단 원추리,,, 지금 한창 곱게 단장중이고
    7월 마지막 주쯤이면 그 식구들 모두 모여 운동회도 하고, 반상회도 하고 그럴 듯...
    우린 그저 휘둥그레할 눈과 감탄할 입만 갖고 가면 될 듯...
  • ?
    오 해 봉 2004.07.19 01:10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비록 정상은 아니지만 40여년 만에 찾은 선생님의 감회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계곡을 살금살금 걷는 뒷모습에서 지나온 한 여인의 일생을 보는 듯 아렸다.
    한 동안 누구도 서로 말이 없었다. 과연 여자의 일생은 무엇이 중요한가"
    가슴속 어딘가가 찡하네요,
    첩첩산중님 정말로 복받을일 하셨습니다.
  • ?
    疊疊山中 2004.07.19 21:38
    따뜻한 격려에 정말 겁나게 신납니다.
    아직도 차후 일들을 결정 내리지 못 해
    답답합니다.
    덕분에 과분한 복 많이 받겠습니다.
  • ?
    솔메 2004.07.20 10:19
    정녕,
    아름다운 인간관계란 무엇이고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것일까? 를 생각케 합니다.
    황혼녘에
    담장을 넘어 흐르는 '황혼의 부르스' 같습니다.

    겁나게(전라도말 ; 최상급수식어) 아릅답습니다.
  • ?
    작은 이영진 2004.07.23 13:36
    정말 보기좋은 모습이네요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
    망망대해 2004.08.25 22:52
    이토록 아름다운 일들이
    세상에도 일어나는가 보네요
    아직도 믿을 만한 것은 사람들 뿐인가 봅니다.
    첩첩산중에서 문득 길을 잃고
    한 사나흘 보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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