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오버랩...(2)

by 아낙네 posted Dec 03, 2004 Views 2879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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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98년 여름...
산에 대해 무지했고, 관심조차 없던 저는 직장동료들의 권유에 못이겨
지리산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썩 내키지 않아 가지않겠다며  우기고 있던 중이였는데 ..
출발 당일 백기를 들어버린터라 번갯불에 콩궈먹듯 회사업무를 마치고
남대문으로 가서 등산화와 등산용 양말을 구입하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진주행 마지막 열차 안에서 구입한 등산화와 양말을 갈아 신고서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들뜬 마음과 정신없는 준비로 조급해진 마음을 안고
지리산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산행코스는 (거림 >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중산리) 로
하산을 하겠다며 일행이 안내를 합니다.

우리는 진주에 도착을 했고, 거림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 기억으론 거림 매표소까지 버스가 가지 않았던 것인지 잘 몰랐던 것인지 모르지만
거림마을에 내려 발을 동동구르다가 지나가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 트럭을 얻어타게
되어었습니다.

거꾸로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내것인냥,
행복해지는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니, 마냥 신이 납니다.
그도 그럴것이 집 떠나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본 적이 없었으니깐요 ..

뚜렷이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보니 등뒤로 이마위로 땀이 송글송글 맺습니다.
목도 축이고, 쵸코파이도 먹고, 두런두런 웃음꽃도 피어나지요.
산행복장이 아니라 등에 맨 배낭이며 바지가 내내 불편했습니다.
산장 올라가면 땀으로 범벅된 몸을 깨끗이 씻어줘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직 산장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생각들이지요 ㅎㅎ

산행하다 만나는 등산객들의 인사에 어색하게 답례하던 제 모습이
웃음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등산하는 내내 산하나 중심으로 나선형 모양으로 오르는 기분이 드니
전인권의 ♬돌고돌고돌고를 부르며 투정을 부려가며 올랐었지요 ..
마치  스쿠르바처럼 비비꼬여진 등산로를 하나씩 풀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곧 멋진 세석산장을 만날꺼란걸 모른체 말이지요..

세석산장 ..
산속에 나무로 지어진 산장의 모습은 입을 짝~ 벌어지게 하더군요
아마 저 산장안에는 여러 객실들이 있겠지.. 저혼자 생각을 또 해버립니다 ㅎㅎ
(아직도 산장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세석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부지런한 등산객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음식 냄새가 시장기를 제촉합니다.
무겁게만 보이던 배낭에선 흰쌀과 고기와 김치가 줄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많은걸 ~~ 정말 무거웠겠다.. 나는 내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었는데..
일용한 양식을 준비하고 무겁지만 내색않고 들고 온 일행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조리되지 않은 준비물들만 봐도  뱃속에서 반응을 해댑니다.
손하나 까딱을 하지 말라며, 공주님 대하듯 합니다.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
장정 다섯명의 호위를 받으며 저는 그렇게 행복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까 싶기도 하고 정말 까딱을 하지 않았습니다 ㅋㅋ
장정 다섯명의 음식 솜씨는 대단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솜씨들이 좋구나 했지만 산에서 먹는 음식들은 모두가 꿀맛이란 것을
이후에 다시 산을 찾게 되어 알았습니다. ㅎㅎ

세석산장의 앞마당에 오후햇살은 따듯했습니다.
더 가지않고, 그렇게 햇살 마주하며 눕고 싶었지만, 서둘러 장터목으로 향합니다.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넓고 웅장한 지리산에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몰랐지만  나도 모르게 숙연해집니다.
저 멀리 보이는 굽이굽이 능선들 하나같이 장관을 이루며
고사목을 지나 장터목까지 가는길 발걸음도 가볐습니다.
발 보폭이 넓어지면 이내 다투어 손 내밀어주던 장정들로 하여금 제 얼굴에는
붉은 홍조끼가 산행내내 따라다닙니다 ^^*

장터목에 도착했습니다.
세석산장의 이미지와는 또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게뭐야~” 라는 실망스런움을 담은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산장파악이 아직 안된 무지한 저는 당연 실망이 클 수 밖에 없었습지요..
잠자리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몸하나 겨우 뉘울 수 있도록 비좁고, 코고는 사람,
발냄새며 쾌쾌한 냄새들.. 샤워하겠다는 저의 생각은 온대간대 사라지고,
식수장의 물도 찔끔 나오는 것을 보며 얼굴을 찡그려야 했던 상황들이  지리산을
더 그립게 만드는 일부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여락한 잠자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일까요?
잠들기 싫어서 산장 밖으로 나옵니다.
까만 밤하늘 위로 큼직한 별들을 보게 됩니다.
아까 찡그렸던 일들은 사그라지고, 별들로 인해 마음이 풀어집니다.
(제가 좀 단순합니다 ^^;)
난간에 기대어 별을 쳐다보고있는데, 남자숙소에서 일행중 한명이 때마침 나와
이야기합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연출된 상황처럼 그 시간 묘하게 다가옵니다 ㅎㅎ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그렇게 장터목에서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몇 시간 잤을까요? 눈은 붙이기라도 한걸까요?
일행이 일어나라고 저를 깨우러 왔습니다.
천왕봉 일출 보러가야 한다며 서두르기를 제촉합니다.
비좁은데서 못잔다고 하더니만 코만 잘 골고 자더라며 .. 저를 놀려 대지만,
창피하지않고, 그렇게 적응하는 제 모습에서 즐겁기만 합니다.

더 자고 싶은데 .. 눈꺼풀이 무거워 떠지지도 않고, 세수고 못하고, 이도 못 닦고,
꼬질꼬질한 모습을 내내 보여주며 천왕봉을 향해 갑니다.
어둡고 캄캄한 그 길 무섭지만 선두자 뒤꽁무니 졸졸 따라오르기 바쁘지요

드디어 천왕봉에 섰습니다. 칼바람 장난아닙니다.
산행복장이 아니었던지라 벌벌 떨고 있는데 장정들이 다투어 겉옷을 주려합니다. ㅎㅎ
아직 해 뜨기엔 이른 시간인지 뜰 생각을 안합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 해는 안보이고 하늘이 그냥 밝아집니다.
어라.. 언제 튀어나왔는지 해가 떴습니다.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 틈에서 저거 참 희안하다며 투덜거려 댑니다.
천왕봉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우리 일행은 중산리로 하산을 합니다.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가는 방향을 보니 .. 이거 장난아닙니다..
경사가 심합니다.. 돌두 많고 .. 발 잘못 디뎠다가 구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다리가 떨리기 시작합니다.
모든 신경들이 긴장했던 탓인지 산행 후 후유증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또 다시 나선형 모양으로 산을 내려오니, 로타리 산장을 만나게 됩니다.
이젠 산장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은 달라져 있습니다 ㅎㅎ
(산장이 아닌 꼭 대피소라고 강하게 말을 하는 증상이 나타나지요 ..)
휴~ 이젠 산행 마무리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 기운 내자고 시내에 나가면
맛난거 먹자고 무거운 발을 조금이나마 경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

일행에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고, 진주로 가서 저녁만찬을 즐기며
지리산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갑작스런 산행에 준비도 부실하고, 무지해서 느끼는 실망도 컸으며, 처음 산행이라
많이 고생도 되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게 되어집니다.
늘 그리워지는 마음은 한해 한해 깊어만 가더라구요
그때 그 다섯명의 장정들은 모두 결혼하여 애기아빠가 되었고,
직장을 옮기며 자연스레 나름 바삐 산다고 연락이 끊기기도 했지만  
함께한 일행들도 저처럼 지리산을 생각할 때면 그해 여름 지리산의 추억이 오버랩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편한세상님 글 덕분에 그해 지리산을 곱씹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