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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산의 추억

조회 수 509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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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좋고 물 좋은 산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끓이고, 지지고, 
굽고 해서 일상에서보다 더 많이 원대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갖이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인 것처럼 희희낙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입맛, 밥맛 다 떨어지고, 할일도 없을 때는 산에나 올라가 땀 빼고 
목욕이나 하고나면 몸도 가벼워지고 건강에 좋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산이 좋아 다니다보니 몸도 마음도 좋아 지더라 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임자 없는 산에서 무언가를 얻겠다는 목적과 오직 정상만을 
바라보고 갈뿐이다. 후자는 산을 들어서는 첫발부터 이미 산행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후자는 두고 오거나, 가져오지도 않는다. 
짓밟거나 꺾지도 않는다. 마음만 왔다 갔을 뿐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두고 먼 길 떠나면서 덥석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긁적대는, 속 깊은 사내의 연정과 연민의 정만 남겨두고 
부끄러운 듯 돌아 설 뿐이다. 지리산아, 잘 있어, 다음 또 올게. 꼭 오마.

꽃피고 새 우는 산에는 연초록의 여린 나뭇잎이 어느 듯 참신한 청년의 
티가 뚜렷해지는 오월의 끝물이다. 중산리 공용 주차장에서 천왕봉을 
향하던 중, 10여명에 가까운 한 무리의 남녀계원 같은 사람들이 앞서 가고 
있었다. 그 중 남자 셋은 배낭대신 라면 박스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를 각각 
하나씩 둘러메고 낑낑대며 올라가고 있었다.

분명 먹을 것은 확실한데 무엇이 들었으며, 저걸 어디까지 메고 갈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 난 후 박스는 물론 저 큰 아이스박스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보조를 함께했다.

“행님, 인자 내꺼 하고 행님꺼 하고 바꿔 맵시다” 

“어께 다 뿌라지는 것 같심더”

무엇이 들었는지? 라면박스를 멘 사람이 이보다 부피는 더 큰 
아이스박스를 멘 사람을 향해 지친 듯 호소한다.

“마~ 쪼깨마 참아라, 쪼깨 더 가다가 갱치 좋은데 있으면 
 마 묵고 치아뿌자”

‘김영샘이 갱제원칙’ 말투를 보아 갱상도 사람들이다.
아~ 지리산도 이제 끝장인가? 등산인구가 늘면서 겨울에도 
눈길을 아이젠 하나 없이 덤비는 사람이 있더니, 봄이 오니
행락객의 놀이터라도 된 것인가?

“행님, 여 갱치 좋네요. 인자 마, 여기서 묵읍시다”

“야~ 그래도 그렇지, 팽생 배루고 밸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쪼깨이만 더 가서 묵자”

“왔다. 참, 미치겠네”

아이스박스 행님은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

“ 았다!~ 그자슥, 쪼깨만 참아라. 고마”

한동안 말 없는 침묵 속에 앞만 보고 걸어갔다.
이 틈을 이용해 나는 아이스박스 형님에게 드디어
말을 걸었다. 그래도 그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의 정체는 보았을 것이다.

“아저씨들은 어디서 오셨는데 이렇게 많이 사 왔습니까?”

나는 그나마 조금 가벼운 듯한 아이스박스 형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이었다.

“예?~, 거기서 왔습니까?”
“제 이종사촌 누님도 거기서 활어 도매하신지가 
 한 20여년은 될 겁니다. 이름이 옥희 라고, 옥희 누님이지요?”
“나이는 저보다 3살 더 많습니다”

“옥희? ..... 옥희?,,,,,, 어떻게 생겼습니까?

시장사람들이 워낙에 많으니 이름으로는 잘 모르겠는지 
나는 생긴 모습과 현재 살고 있는 곳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때야 일행 중 한 아주머니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 아이구!~ 대구네. 대구엄마 말이네” 대구? 맞아, 나도 생각이 났다.
언젠가 생선 장사를 하더니 왜 막내 이름을 그 귀한 대구라 했느냐고
놀린 적이 있었다. 시장 통에서는 막내 이름으로 통하고 있었다.

“예, 막내 이름이 ‘대구’ 맞습니다”

하는 나의 큰소리에 보물찾기라도 했듯이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야야!~ 여 됐다. 경치도 좋고 여기서 인자 묵자”
“앗따!~ 덥다. 내 물부터 좀 주라”

아이스박스 형님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나도 그들과 잠시 휴식을 취했다.

“ 아저씨도 우리하고 같이 먹고 갑시다.”

아직 반도 못 온 길인데 우연한 인연의 정으로 나를 잡았다.
라면박스에는 세우고 눕힌 소주가 가득했다. 대충 뒤처진 일행
들도 하나둘 모이니, 드디어 아이스박스도 해체되었다.

뚜껑을 여니 놀랍게도 각종 야채와 생선회가 가득했다.
늘 만지는 것이라 때와 장소가 없는 것 같았고, 어떻게 해야 선도를
잘 유지하는지도 알고하니 감히 여기까지 생물을 가지고 온 것 같다.

참 별난 사람들이다. 물에 사는 생선이 이 고고한 지리산에 튀어 
오르다니,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도 일어났다 말인가?
지리산에서 먹는 생선회 맛 - 그 맛이 어땠을까?

오늘따라 날씨도 따뜻하고 화창하기 그지없다. 배도 고플 때가 되었다.
각자의 입맛으로 쌈을 싸 꼭꼭 씹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왕 힘들게 가져온 소주, 술 좋아하시는 분은 한잔하십시오. 
먹을 만큼 먹고 나는 먼저 일어서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져온 
쓰레기들은 꼭 도루 가지고 가시기를 당부했다.   [疊疊山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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