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 산장 할아버지 그때 초코파이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by 이수진 posted Oct 02, 2001 Views 3321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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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9월경으로 기억됩니다. 일본 유학이 10월1일로 결정되고 나서 이제 언제 올지 모를 지리산이 한없이 그리워 계획도 없이 찾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노고단에 가서 운해나 보고 오자고 해서 떠났으니까 준비물이라곤 튼튼한 몸 밖에 없었습니다.
신발도 그동안 신어서 익숙해진 구두와 청바지, 초코파이 하나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지리산을 갔지요. 노고단에 서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 가장 짧은 코스인 피아골이나 갔다오자' 그동안 지리산 산행은 몇 번 있던 터라 자신은 쬐금 있었습니다. 물 하나, 빵 조가리 하나 없이 피아골 코스로 갔습니다. 중간에 길을 잃어 1시간 연장,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난 2시가 넘어 겨우 피아골이라고 적혀있는 표지를 발견, 계속 내려갔습니다. 다리는 후들후들, 배는 엄청 고프고, 인적이라고는 하나 없는,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 하나에도 촉각을 세우며 이 근처 어디에 산장이 있을 텐데 하는 기대감 하나로 걸어내려 갔었습니다.
4시가 넘어 겨우 도착한 피아골 산장, 산장이라고 하기에 너무 황량하고 스산하기 그지없었던, 혹시 폐쇄된 건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너무 배가 고파 걸어갈 힘 마저 다 소비된 난 문을 두둘겼습니다. 한참 만에 할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인사도 못하고 초코파이 있어요? 대뜸 물어본 나에게 할아버지는 "자살하려 왔슈?"하고는 쯧쯧쯧 혀를 치시고는 초코파이를 건네주셨다.
하나로는 부족해 하나 더 먹고 값을 지불하려니 만원 짜리 밖에 없었다. 거스름돈이 없다며 할아버지는 그냥 주셨다. 산의 해는 금방 지니까 빨리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자살길이라며 할아버지께서는 빨리 나의 길을 재촉하셨다.
사람의 인적이라곤 느낄 수 없었던 몇 시간의 산행, 사람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던 그때...
어쨌건 난 할아버지가 주신 공짜 초코파이 덕분에 힘을 내서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난 일본에서 돌아왔고, 다시 한번 지리산을 가볼 계획을 하고 있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산, 보고 있었도 보고 싶은 산... 지리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분이 피아골 산장에 계신다면 인사를 드리고 싶다. 정말 그때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