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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방>삶의추억

2006.10.02 21:10

판소리 춘향가

조회 수 407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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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달빛 아래 듣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이왕이면 벛꽃 강물에 떨어져 흘러가는 섬진강 달빛을 보면서 듣는 것은 더 좋을 것이다.
30일 장충동 극립극장 하늘극장에 가서 판소리 들으며,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멀리 갈대밭은 바람에 흔들리고,푸른 대숲과 하얀 백사장은 달빛 아래 조는듯 고요한데,섬진강 물 위로 배 한 척이 흘러내려온다.카메라가 배 위의 한 여인을 비치니,여인은 하얀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고,머리엔 옥비녀 끼고 손에는 합죽선을 쥐었다.하늘에 별은 총총하고,밝은 달은 강물에 비치는데,여인의 수심어린 까만 눈동자는 조용히 지리산을 보고 있다.

이 장면에서 음악이 나간다.
발치에 좌정한 삿갓노인 대금소리 강물 위로 번지고,이어서 맑은 거문고 소리,피리소리에 화답한다.
달은 밝아 멀리 흰 물새가 날고,부는 강바람은 살랑살랑 옷깃 흔드는데,바이올린 현처럼 부드러운 생황소리 하늘로 오르고,딱따닥닥 장고소리 장단 때리고,디이잉 디이잉 나직한 징소리 먼 산울림으로 흩어진다.

배가 구례 운조루 쪽에서 화개장터에 이를 즈음,이때 月下 미인은 해당화같이 붉은 입술 열어 드디어 唱을 시작한다.그 목소리는 한이 배여있고,가락은 애절하다

내가 연출가라면 판소리 공연을 이리 만들 것이다.

판소리는 해학과 익살도 많지만,唱의 기조는 애잔함이다.
이슬에 젖으며 별빛 아래 몸을 떨면서 들어야 맛깔난다.
돗단배에 몸 싣고 달빛 아래 강 굽이굽이 흘러내려가며 들어야 감동이다.
그래야 산수유처럼 붉디붉은 민초의 恨이 푹 익을 것이다.

근세의 명창 권삼득 송만갑 임방울 김동진 이화중선 박초월 김소희 박녹주가,피를 토하며 得音한 ‘소리’는 남겼으되,모습은 볼 수 없다.악보 없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애닲은 판소리만 남았다.
우리의 명창 안숙선이라도,뮤직비디오 만들어 ‘소리’와 ‘태’를 함께 보존하는 일이 시급할 상 싶다.

막이 오르자,사회자가 안숙선을 국악계의 ‘거인’이라 소개하고,50년 외길 걸어온 한국 최고 명인의 가락에 심취하시라고 권한다.추석 앞 둔 하늘엔 달이 떴고,노천극장에 남산 자락 스쳐온 바람은 시원하다.
명창은 쥐면 한 줌에 쥘 듯 가날픈 몸으로 무대에서 첫 短歌를 뽑으니,여인이 옮기는 발동작,탁! 부채를 펴는 손동작,사뿐이 돌아서는 몸태,가슴 속 깊은 恨을 허공에 던지는 시선,높고 낮고 길고 짧은 애잔한 음색,하나하나가 몇십년 積功 쌓은 천하 명품이다.혹은 흐느끼듯,혹은 시원한 폭포수 내려쏟듯,관중의 애간장을 녹였다가 시원히 뚫혀주다가 한다.

본무대는 춘향과 이도령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그 유명한 ‘사랑가’ 가락 터진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니가 내 사랑이야
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가 놓고서 이는 빠져 먹지는 못허고 어르르릉 어흥 어루는듯,북해 黑龍이 여의주를 물고 彩雲간에서 넘노난듯.
저리 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꾸야.
너는 죽어서 버들 柳자가 되고,나는 죽어서 꾀꼬리 鶯자가 되어 유상앵비편편귐이로다.가지마다 놀거덜랑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너는 죽어서 종로 인경이 되고,나는 죽어서 인경채가 되야 아침이면 이십팔수,저녁이면 삼십삼천 그저 뎅뎅 치거드면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너는 죽어 이백도홍 삼춘화란 꽃이 되고,나는 죽어서 범나비되야 네 꽃송이를 덤뿍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추거덜랑 니가 난 줄 알으려므나.
사랑이야 내 사랑이로구나 사랑이로구나 어허 둥둥 네가 내 사랑이야.

애 춘향아 말들어라.밤이 매우 깊었으니 어서 벗고 잠을 자자.
도련님 먼저 벗으시오.매사는 쥔이라고 하니 쥔 너 먼저 벗어라.도련님 거동보소.우르르르 달려들어 춘향의 가는 허리 예후리쳐 덤썩 안고 옷을 차차 벗길 적에,저고리 벗기고,치마를 벗기고,고쟁이 벗기고,바지 벗기고,버선마져 뺀 연후에 놀래잖게 덤쑥 안아 이불 속에다 훔쳐넣고,도련님도 훨훨 벗고 둘이 끼고 누웠으니 좋을 好자가 절루 난다.
거침없이 질펀한 椿事가 나와버리는 판소리다.
‘사랑’ 다음에 오는 것은 ‘이별’ 이다.

내 몰랐소 내 몰랐소 도련님 속 내 몰랐소.
도련님은 사대부요 춘향 나는 賤人이요.
일시 春興을 못이기어 잠깐 좌정하셨다가 부모님께 꾸중 듣고,이별차로 오시는 양반.속 모르는 이 계집은 늦게 오네, 더디 오네, 편지 없네,손을 잡네,목을 안고 얼굴을 대니,짝사랑 외즐겨움에 오직 보기가 싫었겠소?
속이 진정 저러시면 누추한 첩의 집에 오시기가 웬일이요?
책실에 있으시어 방자에게 일장 편지 거절한다고 하였으면 젊은 년 몸이 되어 살자 살자 하오리까?
아들 없는 노모를 두고 자결은 못하겠소.獨守空房 수절타가 老母 당고 당하오면,初終장례 뫼신 후에 소상강 맑은 물에 풍덩 빠져 죽을런지,白雲靑山 幽僻庵子 削髮道僧이 되올런지?
소견대로 내 할텐디,첩의 마음 모르시고 金佛이요 石佛이요 도통하려는 학자신가?千言萬說 대답이 없으니 이게 계집 대접이며 남자의 도리신가?
듣기 싫어하는 말은 더하여도 쓸데없고,보기 싫어하는 얼굴 더 보아도 병되나니,나는 건너방 우리 어머니 곁에 가 잠이나 자지.
춘향이가 문 열고 나가려니 도련님이 기가 막혀,춘향의 치마를 부여잡고,‘게 앉거라 게 앉거라 그럴 리가 있겠느냐?내가 말을 허면 울것기에 참고 참았더니,너 하는 말에 울음 비쳐 빚어노니 속 모르면 말을 마라.’
  
自古로 속 좁은게 여자라.서울 가는 이도령 붙잡고 원망하는 춘향이 모습을 판소리는 이렇게 묘사해놓았다.

춘향가의 구성은 <사랑> <이별> <시련> <재회>로 나눠져있는데,이 넷이 이른바 ‘起 乘 轉 結’인 것이다.

‘이별’ 다음은 ‘시련’이다.‘시련’의 白眉는 ‘쑥대머리’로 시작되는 춘향이 ‘獄中歌’다.

쑥대머리 鬼神형용 적막 獄房 찬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우리 님 정별 후에 일장서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여의신원 금슬위지 나를 잊고 이러는가.

개궁항아 추위이얼월같이 번뜻아서 비치고져,
莫往莫來 막혔으니 鸚鵡書를 내가 어이 보리.
反轉번측에 잠을 못이루니 胡蝶夢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의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하고,
肝臟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볼까.
梨花一枝春待雨로 내 눈물을 뿌렸으니,
夜雨문령 斷腸聲에 비만 많이 와도
님의 생각 녹수부용 採蓮女와 제롱망채에 뽕 따는 여인들도
낭군 생각 일반이라 날보다는 좋은 팔자,
獄門 밖을 못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것나.
내가 만일에 도령님을 못보고 옥중 孤魂이 되거더면,
무덤 근처 섯는 나무는 想思木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있는 돌은 望夫石이 될 것이니,
生前死後 이 寃痛을 알아줄 이가 뉘 있더란 말이냐.

‘시련’이 끝나니,‘재회’의 기쁨이 온다.
슬픔 다음에 기쁨이다.‘어사또 출두’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패랭이 쓴 젊은 사람이 질청으로 뛰어오며 ‘어사또 출두요’외치자,동헌이 들썩들썩,공방을 불러 재물을 단속,신칙 사정이 불러 옥쇠를 단속,南原 성중이 떠는구나.
패랭이 어쨌느냐?방망이 들어라!사자같은 마도역졸 육모방망이를 높이 들고,해 같은 馬牌 달 같이 들어매고 우루루루 달려들며,화닥딱 ‘암행어사 출두야!암행어사 출두야!’ 두세번 부르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듯.白日霹靂이 진동하고 가슴이 모두 쪼개진다.
각 읍 수령이 겁을 내어 탕건바람 버선발로 대숲으로 도망가고,本官은 넋을 잃고 골방으로 들어가며,통인은 목을 안고 날 살려라 날 살려라.불쌍하다 관노사령 엎어지고 상투 쥐고 도망치며 난리났네.
역졸이 수령 모인 좌석을 뭉치로 쎄려부시는데,金甁 繡屛 산수병과 대합 쟁반 술그릇 왱그렁 쟁그렁 깨어지고,거문고 가야금 생황 세피리 젓대 북 장고가 산산히 깨어진다.
각읍 수령이 도망할제,운봉영감은 도장 담는 주머니를 상 밑에 넣어두고 술을 먹다가 느닷없이 ‘출두야!’하는 바람에 상 위 수박덩이를 번쩍 들고 도망가고,곡성 원은 겁결에 기생방으로 들어가 기생 속곳이 자기 道服인줄 알고 훌렁 뒤집어쓰니,그 바지가랑이 사이로 곡성원님 대그빡이 쑥 나왔지.      
운봉 영감 거동 보소.한참 도망허다 봉께 말 한 마리 있는지라,겁결에 말을 거꾸로 타고 아이고 이 말 좀 보아라.운봉으로는 안가고 남원으로 부두둥 부두둥 가니,암행어사가 縮地法도 하나부다.운봉 하인 여짜오되 말을 거꾸로 탔사오니 바로 타시오.아이고 이놈아 언제 돌려타더란 말이냐? 말 모가지를 쑥 빼 똥구녕에다 쑤셔박아라!
이때 본관의 거동보소.어허 무섭다 안으로 쫒겨들어가며,‘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요강 마렵다 오줌 들여라.’쥐구멍에 상투를 박고, ‘이 급살을 맞아 죽을 놈의 문이 왜 이리 비좁으냐’
이렇게 분주헐제 짖던 개 목이 쉬고,날던 새도 못날고,산천초목이 벌렁벌렁 떠는구나.

이를 소설에서 劇的反轉이라 부르니,춘향전의 ‘어사또 출두’야말로 고전적 극적반전의 원형이다.이로 인해,골 깊으면 뫼가 높다고,슬품 깊을수록 기쁨은  두곱절 세곱절이다.관객은 事必歸正이라며 무릅을 탁!치고,희희낙락 기뻐한다.이것이 듣고 또 듣고도 신물내지 않고 관중이 춘향전 찾는 이유이다.
거사는 잘 아는 춘향전이,새삼 그 구성 완벽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극 끝나고 돌아보니,부부동반한 김원용 노경상 박경만 이병소 이종태 이종해 최한수 친구들이 와있어,마침 반갑게 우릴 찾아 무대 밖으로 나온 명창 안숙선과 부군 최상호 친구와 인사하고 헤어졌다.
보람있는 仲秋의 밤이었다.



  • ?
    부도옹 2006.10.03 19:16
    와 ~~
    판소리 춘향가 한마당을 다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 ?
    섬호정 2007.03.03 19:39
    현 시대의 명창 이며 미인인 안숙선여사가 고향 동창의 부인이시라니, 우리 소리 가락에 자주 흠취하는 동창님들과의 반갑고 멋진 분위기가 부럽습니다요~
    알기로는 안숙선님이 진주 개천예술제 출신 명창이라 하였습니다만...

    춘향가 판소리의 해설 정리를 해주시니 잘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 ?
    섬호정 2007.03.03 19:43
    김현거사님의 판소리 무대공연 가상 연출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 꾸며진 무대라면 더 한층 친근하고 정감있는 판소리 무대로 비추어 졌을테지요~ 훌륭하신 연출가님! 지금도 늦지 않으신데 그런 장르에로 기대를 해 봅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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