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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랑방>삶의추억

2004.07.20 11:05

속초에 가신다면

조회 수 1885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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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입니다.
글 한편 올립니다.

속초에 가신다면

속초는 아름다운 도시다.설악산과 동해 사이의 보석같은 도시다.떠나오면 신기루처럼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는 도시가 속초다.

속초에 가신다면 무엇부터 볼 것인가?
달빛부터 보아야한다.달빛이 신선봉에서 화암사와 청소년 캠핑장으로 내려와 영랑호와 먼 바다 닿은,그 부드럽고 광활한 언덕 가득 푸른 빛 던진 광경을 보면서,수석(壽石)같은 울산바위 아래 하얀 이슬 밟으며 밤 깊도록 거닐어보아야한다.

월하(月下)에 경전 읽는 소리 들으면 마음이 탈속(脫俗)하고,월하에 시를 논하면 운치 표묘하여 속세를 떠나고,월하에 미인을 보면 번뇌 한없이 높아진다고 한다.

단청 붉은 신흥사 극락보전과 부도(浮屠)에 비치는 달빛은 탈속한 친구와 감상하기 알맞고,기러기떼 허공을 나르는 송지호와 하얀 갈대 흩날리는 화진포 달빛은 시를 논하는 친구와 감상하기 알맞으며,암벽이 바다로 돌출한 영금정의 일렁이는 푸른 은파는 연인과 함께 보아야 제격이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너무 밝아서 사람에게 답월(踏月)을 강요하거나,끝내 잔 들어 마시게하는 달빛만이 진정한 달빛이다.차 속에서 '에딛 삐아프'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샹숑 '고엽'(枯葉)을 들어보라.인생이 월광(月光)의 허공에 흩어지는 푸른 담배연기같음을 알수 있다.


천하 제일 단풍 묻지마라.
한계령(寒溪嶺) 단풍을 보아야한다.
이른 아침 하얀 안개 산허리에 감겨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한계령에 가보라.촉촉히 젖은 바위와 계류 굽이굽이 수정같은 물결 위에 흩어지는 낙엽의 비 만산홍엽(滿山紅葉)인데,안개는 조용히 수묵화 그리고 있다.

다정한 사람 손잡고,수억년간 한 점 티끌도 씻은 준수한 암벽에서 꽃처럼 떨어져서 벽옥(碧玉)의 물에 떠가는 단풍잎을 보라.사람이 파스텔화 속을 걷게된다.

선녀탕과 용소폭포 주전골 만경대 만물상에 가보라.
설악의 나무 모두가 화가임을 알게된다.나무가 화폭(畵幅)인양 산을 덮었다.나무도 선호하는 색이 있으니,은행과 백양은 노란색을 주로 쓰고,벛나무 옻나무는 붉은색,굴참나무 신갈나무는 갈색 톤을 즐긴다.노란 은행나무잎 오십대 여인의 미소처럼 은은하고,벗나무 단풍 밤 깊은 삼십대 카폐 여인의 루즈처럼 짙다.

어성전 법수치리 면옥치리 현리를 아는가.
청옥의 물빛이 속초의 자랑이다.물이 그리 깨끗할 수 없다.
옥류는 바위 곁에서는 바이올린 현처럼 부드럽게 구비치고,폭포 만나면 은구슬처럼 깨어지고,들판에서는 흰구름 비친 거울이 된다.

봄물은 시적이고,가을물은 사색적이다.
산 가득한 벛꽃 물에 흐르는 면옥치 봄은 '산중대작(山中對酌)' 칠언절귀(七言絶句) 생각나게 한다.

'두 사람이 술잔을 대하니,산꽃이 피네.
한잔 들게 한잔 들게 또한잔 들게.
나는 취하여 잠을 자려하니 그대는 잠깐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오라'

사람(人)과 산(山)을 합해 선(仙)의 경지 이룬 이태백의 풍류가 있다.

투명 크리스탈 잔에 담고싶은 현리의 가을은,얼음처럼 차고 맑은 수면 위 낙엽 노랑과 주홍 비단무뉘 수놓으며 흐른다.간혹 피라미가 황혼의 수면에서 튀어오르고,이때 문득 보들레르의 '가을의 쏘넷' 한구절 툭 떠오른다.

최상의 물빛 본 후라야 물소리 논할 수 있다.
선림원 폐허의 구름무뉘 조각 석등(石燈)과 삼층석탑 위로 초생달 뜬 밤,구룡령 물소리 혼자 들어보라.이곳 물소리 들으러 오던 한 숙녀가 있었다.
아!그러나 물소리 가슴에 들리고,남대천 뚜거리탕은 아직도 따끈하건만,그때 잔 건네던 그녀의 흰 손 보이지 않는다.

설경(雪景) 진경산수(眞景山水) 알려면 속초로 가라.
눈이 하지에 가야 녹기에 설산(雪山)이요,바위가 눈처럼 희다해서 설악(雪嶽)이다.
산 아래 단풍이 한창 붉을 때,이미 눈 덮힌 은백 봉우리들이 청자빛 하늘을 이고있는 모습,설악만이 간직한 비경이다.
눈은 기암절벽의 노송과 검은 고사목(枯死木)과 청댓잎 만나서 그 격조 더함을 알 수 있다.
흰 바탕의 코발트불루 청화백자 단색의 깊은 맛 여기서 깨닫는다.

설악의 인적없는 설원(雪原)은 어디인가?
용대리 산림욕장 계류의 푸른 결빙 위에 찍힌 육각 보석같은 눈의 결정을 보라.낙엽교목 설화(雪花)의 궁전에 안개가 무시로 지나가는데,미답(未踏)의 설야(雪野)에 눈바람 멀리 흩어짐 보라.

녹차 한잔 마시며 호반(湖畔) 눈내리는 풍경 보기엔,영랑호가 제일이다.
지붕까지 쌓인 눈에 집이 반쯤 묻히고,푸른 사철나무 울타리 붉은 열매 맺힌 모습,영랑호의 서정이다.눈 쌓인 매화가지 너머 신선봉 미시령 황철봉 대청봉 보라빛 연봉 사이로 가장 장관인 것은 하늘로 치솟은 토왕성빙폭(氷瀑)이고,낮엔 아껴두었다가 달 아래 볼 곳은 기암(奇巖) 울산바위 설경(雪景)이다.

안개는 잊혀진 시간 떠오르는 하얀 커텐인가.
그리운 '아야진' 커피숍 창가로 가보라.
안개가 선박의 마스트 가리고,허공을 가리고,희미한 먼 바다의 등불 가리고,추억을 가린다.낮선 이국 홀로 헤매는 정취 솟는다.

한치 앞 분간하기 힘든 해무(海霧)에 덮힌 미시령고개,
늦가을 홍시 달린 감나무에 비치는 장산리 공항 푸른 써치라이트,
수산에서 들어가는 여운포 밤바다 드라이브 길의 오징어잡이 푸른 어화(漁火)가 끝없이 신비로운 것은,속초에 수시로 안개 짙은 밤이 있기 때문이다.

신(神)이 살던 정원의 폐허련가.
처처(處處)의 꽃은 숨어서 피어있다.
도원저수지 옆 초등학교 교정에 피는 벛꽃의 속절없는 흰 물결,
향냄새 젖은 낙산사 홍련암 뜰의 붉은 해당화,
필레약수의 자주빛 금낭화,비룡폭포 오르는 난간 절벽의 푸른 금강초롱,
미시령 눈밭의 보라빛 얼러지꽃,영하의 대청봉 솜옷 입은 하얀 에델바이스,조용한 하일라밸리의 보라빛 난쟁이붓꽃,
알프스 3번 파브릭코스 오르는 전동차 범퍼 위로 덮히는 분홍 코스모스.
그밖에 푸른 용담꽃,하얀 구절초,노란 삼지구엽초와 매발톱꽃,자주빛 꽃창포 등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자생한다.

송이(松 ) 향기만 말하지 말라.야생 꽃향기 송이보다 향기롭다.향수(香水)도 오히려 부끄럽다.꽃이 여승처럼 기품있는 향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속초는 실낙원(失樂園)이다.
푸른 파도 한없이 밀려오는 피안(彼岸)의 땅이다.
천상의 모습을 지상에 재현한 신의 작품이다.
속초에 가신다면....
문득 아름다움의 극치에서 들리는 가날픈 쏠베지송 들을 수 있다.


  • ?
    허허바다 2004.07.20 15:02
    아이고~~ 무례하게도 이것은 인간의 글이 아닌 줄 압니다.
    전 이 글로 지금 미칠 지경입니다!
    강원도지사 속초시장은 이 글 보고 바로 달려와야 합니다.
    저번 3편의 대청봉 등반기와 함께
    읽고 또 읽어 아예 외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 글로 충분하니
    그냥 눈 감고 그 정경들 마음 속에 하나씩 비추며
    조용히 잠들어 버려야겠습니다.
  • ?
    疊疊山中 2004.07.20 16:39
    김현거사님의 방문을 먼저 쌍수로 환영 합니다.
    너무나 고독한 추억방입니다.
    요즘 젊은이는 좋은 세상 만나
    추억 같은 건 씹을 여유도 없는지?

    김현거사님의 인생철학이 설악과 어우러져
    바로 실낙원(失樂園)이 아닌가 싶습니다.
    푸른 파도 한없이 밀려오는 피안(彼岸)의 땅
    속초에서 속세를 향해 울려 퍼지는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입니다.


  • ?
    오 해 봉 2004.07.21 00:57
    "속초는 실낙원(失樂園)이다.
    푸른 파도 한없이 밀려오는 피안(彼岸)의 땅이다"

    설악산에갔다가 천불동으로 내려오면 설악동에서 시내버스타고
    언제나 속초에와서 고속버스를탔는데 그렇게 좋은걸 몰랐군요,
    김현거사님 말씀에 따라볼렵니다.
  • ?
    부도옹 2004.07.21 01:09
    이런 아름다운 곳을 멋진 글로 풀어주셨습니다.
    참고로 신혼여행을 '화진포'로 갔었답니다. ^^;;
  • ?
    솔메 2004.07.21 11:17
    '속초'를 이름 삼아 강원도 전체를 예찬하셨군요.
    그중에서 저는
    아직 못가본 선림원지를 꼭 한번 답사하고 싶답니다.
  • ?
    섬호정 2004.07.31 21:31
    청옥의 물빛 속초의 파도를 보며
    급강하 비행로로 착륙이 인상적이던 속초.
    그 곳서 지낸 며칠...화암사 설화에만 묻혀 있던 일이...
    지금 김현거사님의 속초 예찬사를 새삼 알게되니,
    당시에 비구니 스님의 일주행 권유를 사양한 일이 새삼
    부끄럽기만 합니다. 靑玉 을 놓아 두고 떠나온 기분입니다.
  • ?
    섬호정 2004.08.27 11:23
    김현거사님! 백두산 다녀오시면
    이 방에 백두산행 천지이야기
    많이 풀어 주세요
  • ?
    sagesse 2004.09.15 21:44
    뒤늦게야 글을 찾아 읽으면서 상상하는 이 기쁨...
  • ?
    김종광 2007.05.18 15:59
    형언할수없는 감동으로 읽어습니다.
    댓글 달기가 머뭇거려집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그리고 소중한 자연유산 선생님의 글이 더욱 빛나게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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