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며 (1) 다유락에서

by 도명 posted Sep 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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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詩: 차 한 잔

             -박희준-


한 잔의 차
한 잔의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잔의 마음
한 잔의 차에 담겼네


一椀茶出一片心
一片心在一椀茶


봄바람에 나부끼는 찻잎을
깃발이라고 한다.


차를 만드는 일은
펼쳐진 깃발을 르르 마는 일에서 시작한다.
도르르 말리면 말릴수록 더 향기로운 찻잎.
도르르 말리면서 더 단단해지는 찻잎.


차를 마시는 일은
펼쳐진 깃발을 다시 펼치는 일이다.
더운 물을 부으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대지처럼 피어나는 찻잎.
깊은 밤  봄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찻잎.


도르르 말린 깃발이 펼쳐지며
차 한잔이 된다.
이윽고 우리 마음 속에도
깃발이 펼쳐지리라.


차를 마시는 일은
마음의 깃발을 말고 펼치는 일이다.


마음의 깃발도 도르르 말리면 향기로울까?
마음의 깃발도 도르르 말리면 단단해질까?
마음의 깃발도 펼치면 대지의 잠을 깨울 수 있을까?
마음의 깃발도 펼치면 봄비처럼 젖을 수 있을가?


마음을 담지 못하는 차 한잔을 내며
마음을 담은 차 한잔을 꿈꾼다.


1994. 칠석 다음날.


- 인사동< 다유락>에서 수제차로 茶香을 피우시는
   박희준님의 저서 <차 한 잔 >에서 '서시' -도명합장

  







(1) 다유락에서 /  도명


비오는 오후 다유락에서 수제차들을 마십니다
향기를 찾는 사람들의 방인지라 시 몇편 낭송하며

주섬 주섬 꺼내시는 방장님의 차 울구는 분위기에서
그 다락방 에 비치는 인사동 길이 참 아늑하여 좋아
보이더군요 .

'동방차의 연구가'이시라 '동방미인' 백암차' '철관음'도,
또  새로이 창제한 화개 잭살과 다질링을 섞은차의 향이
참 잊혀지지 않는군요

'무이에서 화개를 보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

9월들어서 덴버의 동포신문에 차 이야기를 올립니다 .
화개 벽사 김필곤시인의 차시조론(육당, 가람, 노산..)을
특집으로 연재해 드리거든요...

차마시기 좋은 때입니다.
이곳 저곳에들 흩어져 차와 함께 살아가는 인연있는
차담 벗이 보고싶고 차를 향음하던 그 자리들이 그립습니다 .

아마도 차 향에 홀로 취하여 하마 나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을터,  
차를 마시는 자리에 한 자리 비워두고 손짓하는 마음들이
이 가을처럼 깊어가는데, 발길은 선 자리에서 좀 처럼 떼어지지가
않는군요.

아직, 나를 창공에 훌 훌 날으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한채 ,
산처럼 물처럼 살겠노라고 입술로만 마음에 거짓소리를 울립니다
부끄러운 차인 하나가 , 어설픈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마음을 담아 차를 마시는 그 찻잔의 심오함을 못 만나고,  
혀 끝으로 물맛만 느끼는지, 향기에만 취하는지,
눈으로 부실한 실눈을 뜨며 차의색을 분별도 못한채 ,
아 ,헛 잔을 들고  마음 담지 못한 그 잔으로 차의 세상을  
꿈 속에서만 맴 돕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