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김수훈님 감사합니다. ^^

by 이대경 posted Jul 2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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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잡아 주신대로 잘 다녀왔습니다.
공덕동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작고 튼튼하게 새로 만든 지도도 샀는데 1000원 받더군요.
영등포역에서 4시 59분 기차를 타고 남원에 9시 반에 도착해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 타고 가서 터미널 바로 뒤에 있는 터미널여인숙에서 묵었습니다. 방값은 20000원이였고 방도 아주 좋고, 저녁밥도 지어먹고 푹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도 지어먹고 7시반에 터미널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를 탔지요.
뱀사골은 처음 지리산 가는 분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길이였어요. 산이 험할 거라는 마음의 부담을 지우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물색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계곡을 거닐면서 산을 올라갈 수 있었어요. 날씨가 흐리고 축축한 날이여서 더 편안했는지 저희는 '등산로 정말 잘 만들어 놓았다'는 감탄을 하면서 뱀사골대피소까지 올랐습니다. 점심 때는 '행동식'으로 먹으라고 하셨지만 저희가 '밥'을 좋아해서 점심도 해 먹었는데 꿀맛이였어요. 옆에 사발면 드시는 분들에게 김치와 고추, 장아찌 반찬을 나눠드리고 복숭아를 얻어 먹기도 했어요. 반팔을 입고 올랐는데 산장에서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자욱한 속에서 물방울도 떨어져서 긴팔을 입고 있었구요. 조용하던 산 속이 대피소에 들어서니 그제야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화개재로 올라서니 능선을 타느라 상기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쯤 되니 사람들이 다들 밝게 웃고 신이난 표정을 하고 있는지 힘이 들어도 찡그린 사람들은 별로 없대요.
삼도봉으로 가는 510계단도 멋졌어요. 계단 옆으로 참취,참나물, 노루오줌, 까치수영,비비추,동자꽃,모싯대,하늘말나리,여로,으아리, 산수국,,, 하얗고 붉고 주홍빛, 보랏빛의 꽃들이 얼마나 멋지게 피었는지 꽃밭속을 거니는 기분이였구요. 구상나무와 신갈나무도 늠름했지요. 계단 사이에 쉬어 가는 곳에 편하게 드러누워 하늘을 보기도 했지요.
삼도봉에 올라서 흐린 햇살을 조금 받았지만 안개가 잔뜩 껴서 아래는 보이지 않았어요. 아쉽게도. 그래서 노루목에 가서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임걸령으로 바로 갔습니다. 노루목에서 임걸령 가는 길은 흙길이고 아주 편안하고 좋은 길이여서 또 한번 감탄했지요. 이렇게 길이 다양하구나. 임걸령 물은 아주 차고 맛있었어요. 물을 마시면서 오고 가는 이들과 어디서 왔냐, 어디로 올라 왔냐, 어디서 잘 거냐 얘기도 나누구요. 한가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원주에서 온 아저씨 셋은 노숙을 할 거구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 볶음이라네요. 쿠쿠쿠.
임걸령에서 10분쯤 가면 나온다는 피아골갈림길이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요. 이정표가 있기는 한데 노고단에서 임걸령 가는 길에는 보이지만, 임걸령에서 노고단 가는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각도로 되어 있고 길도 지도에는 좌회전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유턴하는 느낌이였어요.
처음으로 길을 못 찾은 경우였어요. 피아골대피소로 가는 길은 길이 무너지기도 하고, 공사하느라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날도 흐려서 을씨년스러웠어요. 정상에서 느낀 분위기하고 사뭇 달랐지요. 신랑하고 가는 데도 조금 무섭더라구요. 바스락하는 소리가 나면 혹시 멧돼지나 곰이 아닐까 하면서. 슬슬 다리도 아파왔구요. 돌을 짚고 가는 하산길이라서 힘들었어요.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터덜터덜 내려가는데 대피소가 나오니까 정말 반가왔어요. 야 이맛이구나. 대피소를 만나는 기분이. 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6시 반. 적어주신 시간보다 30분 늦었지만 이만하면 잘 온 거지요?
씻고 저녁을 지어 먹다보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어요. 해가 안 나서 요즘은 피아골대피소에 불이 없대요. 촛불을 켜 놓고 바깥에 앉아서 대피소에 찾아온 손님들과 두런두런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었어요.
밤새 계곡 물 소리가 콸콸콸 나고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정말 빛 한줄기 없는 칠흙같은 밤을 보냈어요. 대피소에서 빌려주신 담요가 두꺼워서 따뜻하게 잘 수 있었어요.
아침에는 계곡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도 인상 깊었어요. 함태식 할아버님과 같이 사진도 찍고 산장에서 일을 돕는 분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했어요. 가을에 다시 오라고 하시는구요.
피아골계곡도 물색이 다양하고 바위와 웅덩이 모양이 갖가지인 정말 아름다운 곳이였어요. 찻길이 나오기 까지는 그래도 길이 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곡사에 내려오니 날이 개기 시작하더군요. 꿈결같은 지리산 여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구례읍에 가서 말씀해주신 방법으로 기차표를 사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짜주신 일정이 너무나 정확하고 또 저희에게 잘 맞았어요. 회사에 돌아와서 지리산 자랑을 했더니 저희가 갔던 길대로 가겠다는 사람도 생겼구요. 저희도 가을에 다시 한번 지리산에 오를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값진 여행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