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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이 누운 듯 봉황이 나는 듯(화개동천)


마음 둘 곳 없어 어느 날 훌쩍 지리산에 들었다면 삼신동에 들어볼 일이다. 그곳엔 고은의 채취와 휴정의 숨결이 있다.
당나라에서 급제를 했던 불세출의 석학 최치원이 고국 신라를 돌아와 난세를 바로잡고자 개혁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역모를 받게 된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 했던 고은은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청산맹약시(靑山盟約詩)를 남기고 세속을 등지게 된다.


僧呼幕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는 말씀하지 마시오
山好何事更出山(산호하사갱출산) 산이 좋다면 무슨 일로 다시 산을 나오십니까
試看他日吾蹤跡(시간타일오종적) 훗날 내 자취 한번 보시구려
一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갱불환) 한 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니


그가 찾아나선 이상향은 멀리도 가까이도 있지 않았다. 그가 발을 멈춘 곳이 바로 지리산 삼신동이었다.
칠불사가 있는 연동골과 신흥사가 있던 의신계곡이 만나는 지점 바위에 “삼신동三神洞“이라는 각자를 새기고 속세와 인연을 끊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하여 귀를 싯는다(洗耳岩).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학동의 전설이 스며있는 삼신동을 찾는 경우인데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찰이 쌍계싸·불일암·칠불사이다.
전체적인 분류로 보면 청학동의 전설과 쌍계사가 있는 삼신동, 즉 화개동천을 찾는 유람이 2/3 이상을 훌쩍 넘고 있다.

휴정의 청허당집에 보면 신흥사를 들어오는 골짜기에 대여섯 집의 마을 하나가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화개동천 상류부는 세속의 사람들이 살기에는 부적당한 듯 보인다.

의신사의 기록이 1463년(세조 9년)에 청파靑坡 이륙李陸[1438~1498]이 쓴「유지리산록遊智理山錄」이 처음이고, 남효온[1454~1492]의「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와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양대박梁大樸[1543~1592]의「두류산기행록頭流山紀行錄」,유몽인柳夢寅[1559~1623]의「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까지는 나와 있으나, 송광연이 1680년(숙종 6년)에 적은 「두류록頭流錄」에 의신사 옛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걸보면 그전에 이미 폐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의신에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격은 후 생활이 피폐해지면서 정치·사회적인 혼란을 피해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이다.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미루어 이상향이라는 청학동의 이미지가 한몫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 유행했던 도참사상과 정감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아름아름 찾아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선학포란(仙鶴抱卵)’의 명당이리고 믿고 있다.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청학동은 고려후기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나타나는데 우리 선조들이 생각하는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理想鄕의 원형이다.
예로부터 천석泉石이 아름답고 청학(사실은 태평성대에 온다는 상상의 새)이 서식하는 승경지로 사회적 환경이 혼란한 시기에 지식인들의 은거와 민초들의 피난처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미지의 시간과 꾸며진 공간에 대해 심리적 허상과 심미적인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삼신동이란 개념이 조금 다르다. 최치원이 이곳에 들면서 새긴 삼신동의 의미는 ‘신선들이 살만한 아름다운 곳’을 일컬었으니 인간세계에 존재하는 현세의 길지이다. 그의 뜻대로 푸조나무가 아직 살아있으니 홀연히 사라져 아직도 지리산 어느 선세계에서 우리를 바라다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려있는 최치원이 화개동을 노래한 “호중별유천”의 일부이다.

東國花開洞(동방화개동) 동방의 나라 화개동은
壺中別有天(호중별유천) 항아리 속 별천지라네
仙人推玉枕(선인퇴옥침) 선인이 옥침혈1)을 밀어내니
身世欻千年(신세훌천년) 몸과 세상이 문득 천년이 지났네


청착동과 삼신동은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상세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리산에 이상향이 있다는 것은 남쪽이라는 비교적 따뜻하다는 특성과 전체적으로 육산이어서 깊고 포근하며, 숲이 짙고 울창하여 숨어 지낼만한 곳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정감록의 십승지 역시 북쪽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현세를 살면서 내세를 꿈꾸는 현실적인 처세가 깃들어 있음이다.


(※ 신흥, 의신, 영신 세 절이 있어 삼신동이라 했다는 예기는 후세의 일이니 여기선 우선 덮어두자, 푸조나무의 나이도...)


1) 옥침이란 머리의 한 중요한 혈자리인데 도가에서는 소주천의 마지막 관문으로 본다고 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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