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길을 따라 잃어버린 마음 찾아 - 마지막

by 구름모자 posted Jul 05, 2006 Views 3872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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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내봉은 다시 고열암 사거리로 되돌아 나와 능선을 올라야 한다. 안락문(또는 통락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 후 능선을 밟아 나가면 첫 번째 만나는 좌측 봉우리가 최근 신비한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공개바위(공기바위) 능선이 갈리는 지점이고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상내봉에 닿는다.

상내봉에서는 우측은 벽송사능선(일명 빨치산능선)을 경유해서 벽송사로 내려서는 길과 능선 중간쯤에서 송대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벽송사가 한국동란시 빨치산 야전병원이었던 관계로 함양군에서 빨치산루트를 관광자원화 하고자 만든 표지판이 중간중간 서있다.

상래봉에서 좌측은 사립재를 거쳐 새봉, 즉 동부능선에 이르는 지능으로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여기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상내봉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우선 유두류록의 기록을 보자.

“고열암에 다다르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의론대(議論臺)가 서쪽 봉우리에 있었다. 유극기 등이 뒤에 처져있어 나 혼자 삼반석(三盤石)에 올랐다.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모두 발 아래 있었다.”

여기서 봉우리이름이 두 개가 나오는데 향로봉과 미타봉이다. 의론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봉우리를 이르는 말인데 문제는 이 봉우리가 두 개의 각각 독립된 봉우리냐 아니면 한 봉우리를 동의어로 썼느냐 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봉우리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산의 명칭이 붙는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흔하게 산의 형상을 보고 붙여진 이름과 그 산의 전설, 역사적인 인물의 기거 또는 방문, 종교적인 관점, 그리고 풍수학적 의미 등이 있다.

여기서 미타봉은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미타불이란 뜻의 미타봉이라고 하기도하고,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이어서 와불봉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송대마을 골짜기 안쪽을 견불동이라 부르고, 현재 그 골짜기엔 견불사가 들어서있다.

그런데 문제는 향로봉이라 칭할만한 봉우리 찾기이다. 일설에는 산의 모양이 향로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하나 내 미천한 산이력으로는 이 산 부근에서 그런 모양의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에 향로라는 명칭은 혜안으로 점철된 관념적 의미가 아닌가 한다. 굳이 정의하자면 외형적형상은 없으되 다른 형상과 연관되어 내면적형상과의 교감관계로 이름 지어진 연상현상처럼 실존의 모습이 아닌 관념적 모습의 명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연관되어지는 것이 향로와 부처였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면 분명 상호 관련이 있고, 그 명칭 또한 동행한 승려들이 설명하던 봉우리였을 것이니 두 봉우리의 형상이 각각 따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현제 부르고 있는 ‘상내봉’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오래전부터 불리어왔던 원명일까 아니면 잊혀졌다 새로이 명칭이 붙은 봉우리일까?

그러나 이것은 원명인 향로봉이 마을사람들에게 구전되면서 향로봉>상노봉>상내봉으로 구개음화과정을 거쳐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기록이 이 모든 상황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 놓는다.

“발 아래 있었다”

직역하면 의론대에서 바라보았으니 그보다는 낮은 해발에 있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고도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도상에서 어림잡아보아도 미타봉이나 상내봉(현제 부르고 있는)이 의론대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적어도 확실한 하나 미타봉의 위치가 또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래 있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림의 조종으로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서 관조하는 입장에서 기록한 시적표현은 아닐까? 시각적 현상이 아닌 관념적인 현상 같은...

근거도 없이 풀어낸 글이니 결론을 내릴만큼의 자료는 되지 못할 터이지만 내 생각으론 현재의 상내봉을 예전처럼 상내봉 또는 향로봉으로, 벽송능선상 바위봉우리를 미타봉 또는 와불봉으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공개바위 능선길부터 살펴보자.

고열암사거리에서 좌측능선을 올라서면 상래봉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좌측으로 솟은 낮은 봉우리가 보인다. 공개바위로 가는 무명봉이다. 이 능선을 타고 나아가면 오봉마을 뒤편에서 올라오는 지능과 만나는 지점이 베틀재이고,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마당재이다.

두 곳 모두 한쟁이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잡목으로 인한 고생은 감수해야한다. 내림길 중간에서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계곡을 그냥차고 내려가면 원시성 짙은 계류를 따라 운암마을 앞 한쟁이골 교량으로 내려서게 되고, 우측 사면을 따르게 되면 한쟁이골에서 약3~4백미터 아래 조성해 놓은 묘지 앞 길로 나온다.

공개바위는 마당재에서 전면의 봉우리를 좌측으로 돌아 다시 능선에 붙은 다음 산죽밭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30여미터 아래에 있다. 최근 동네분들께서 시야를 방해하던 나무들을 제거해 기세좋은 모양세로 허공을 행해 오묘한 층을 쌓고 있다. 화림사쪽 하산은 그곳에서 바로 내려설 수도 있다.

능선으로 하산하는 방법은 첫째는 능선을 잡고 나아가면 임도를를 만나는데 이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길과 두 번째로 그곳에서 다시 능선을 잡고 고령토채취장까지 나아가 능선 끝머리, 즉 가현마을과 오봉마을이 갈리는 도로로 내려서는 길,

다음이 공개바위가 있는 지점에서 5분여가면 헬리포트가 나오는데 그 부근에서 좌측 지능을 잡아 꽃봉산가는 길로 내려설 수 있다.
이 길은 처음엔 나뭇가지들이 성가시게 하지만 꽃봉산을 만나면 길도 확연해지고 간간이 표지기도 붙어있다. 꽃봉산에서는 좌측 지능을 쫒아 운서리로 내려서는 방법과 우측 지능을 쫒아 동강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상내봉에서는 동쪽방향 사립재로 내려선 다음 좌측 오봉마을로 내려서거나 우측 허공다리골로 내려서도 되고, 직진하여 새봉을 올라 동부주능을 잡은 다음 하봉이나 새재로 갈 수도 있다. 또한 서쪽방향으로는 벽송사능선을 타고 가다 송대마을로 내려서도 되고, 시간이 남으면 벽송사까지 능선을 이어갈 수도 있다.

오래동안 잊혀진 길들이 지리를 좋아하는 선답자들의 노고로 사통팔달하듯 길이 열려 있으니 당분간 이곳도 사람소리가 제법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람모이는 곳에서 행해지는 악습들이 이 곳에서 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우 찾아낸 잊혀진 길에서 마음마져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이곳을 답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잊혀진 역사도 이 땅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의 역사이다. 그곳에서 사람이 살았든, 쌈질이 있었든, 절간이 있었든, 도적떼가 살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가장 큰 의미는 그 역사를 되짚어 새로운 이정을 쫓아 나가는 길이다.

그것을 애써 덮으려하지 말자. 그곳을 애써 막으려하지 말자. 후에 부끄러운 우리가 되기 전에... 왜냐하면 그곳도 우리가 살아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선답자에게 진솔한 예의를 갖춘다.


- 구름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