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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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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부가 떠오른 지리산 종주(2001)

< 산행기에 앞서 >


30대나 할 수 있는 지리산 단독 종주를 50대가 해냈다(우리 사장님 말씀)는 것 이외에는 남달리 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 산행기를 쓰는 뜻은 오로지 지리산 종주에 처음 나서는 이, 특히 나처럼 나이 들어 자신감 없이 나서는 이에게 나의 허덕임을 진솔하게 밝힘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함이다.

여기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떠오르던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한 구절을 옮겨 놓으니 감상하시라.

천지간의 물건에는 각각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이라도 가져서는 아니 되지만 오직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닿으면 빛이 되네, 가져도 금하지 않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는 조물주의 끝없는 갈무리로다.(天地之間 各物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독자 여러분께서도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아니지만 소동파도 알지 못한 지리산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맛보기 위하여 산행을 떠나 보심이 어떠할지!

1. 산행개요

가. 본인의 신체조건
ㅇ 1944년 1월 15일생 (만 57세)
성별 : 남
신장 : 174㎝
체중 : 66㎏


나. 산행기간
ㅇ 8월 4일 23:50 서울역 출발(무궁화호 열차)

ㅇ 8월 5일 05:00 구례구역 도착
06:00 구례버스터미널 출발
06:50 성삼재 도착
07:10 성삼재 출발(산행시작)

ㅇ 8월 7일 05:10 천왕봉 도착
08:50 장터목 대피소 출발
12:40 백무동 도착(산행완료)
13:20 백무동 출발(직행버스)
19:40 서울 동부터미널 도착


다. 장비 및 식사준비 사항
ㅇ 배낭, 2인용 텐트, 가스버너, 1인용 코펠, 침낭, 헤드란탄, 윈드자켓,
매트대용비닐, 구급약, 소금
ㅇ 햇반(비빔밥) 4식, 라면 2개, 참치캔 1개, 약과 20개, 쵸코릿 4개
(제수 : 2㎏상당)
※ 배낭무게 18㎏


라. 수첩 및 약도
수첩은 손바닥 반의 반 정도 크기(지금 쓰는 이 글은 수첩에서 나온 것임)
약도에는 주요 산봉우리, 대피소, 샘 등과 각 구간의 시간거리를 표시

2. 산행의 동기 및 준비사항

가. 산행동기
산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지리산 종주를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나도 나이 58세가 되도록 누차에 걸쳐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보았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종주를 실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이가 더 들면 더욱더 어려워지리라는 이유 외에도 뒤에 다시 기술하겠지만 이태 씨의 소설 "남부군"을 읽고부터 지리산에서 생을 마감한 많은 빨치산들이 우리와 이데오르기를 달리했음에도 너무 너무 불쌍해서 그들을 위해서 위로의 제사라도 지내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오랜 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어떤 일을 꼭 해야겠다고 오래 동안 별러 본 것은 진실로 이 일이 처음이다.

나. 산행준비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좋아하지만 당일산행 경험 밖에 없는 나 혼자서 지리산을 종주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겁도 나고 해서 1주일 정도의 기간이지만 유경험자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에도 들어가 보기도 하면서 가능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려 노력했다.

ㅇ 인터넷 자료조사
- 한국의 산하
등산장비, 산행하기, 안전산행, 배낭 꾸리기 등
- 지리산 국립공원
싸이트 맵, 시설예약서비스, 날씨 등
- 오용민의 지리산
산행기, 게시판 등

ㅇ 산행 선배의 경험담 청취
지리산 산행계획을 누설하자 우리 사장님께서 당신의 경험담을 곁들어 친절하게 조언해 주셨다. 상세하게 설명하시고도 빠뜨린 사항이 있다고 또 설명해주시는 자상함을 보이셨다. 또한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이태우 과장의 도움이 컸다.



3. 산행일기

ㅇ 8월 5일(일) - 첫째날
05 : 00 구례구역 도착
출구에서 역무원에게 구례버스터미널 가는 방법을 물으니 바로 역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고 알려주어 요금 700원을 내고 버스를 탔다.
05 : 20 구례버스터미널 도착
당초 성삼재에서 아침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기사식당에서 5,000원 짜리 재첩국으로 때웠다.

06 : 00 성삼재행 버스로 터미널 출발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길게 줄을 서 있다가 입석으로 탑승(버스요금 2,950원).
도중에 국립공원 입구에서 입장료 2,600원씩을 징수하는데 입석 승객은 전부 내리라고 하고 직원이 올라와 한 사람씩 요금을 징수하는 바람에 등산객들의 빈축을 샀다. 직원이 버스에 동승하고 성삼재까지 가서, 내리는 승객에게서 요금을 받는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그 쪽에도 인원관계 등 사정이 있겠지요. 18㎏짜리 배낭을 지고 지리산을 종주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함께 가슴 벅차 있던 나로서는 상당히 김이 새는 노릇이었다. 차장너머로 보이는 지리산 자락을 이쪽저쪽 잘 보이는 쪽으로 목을 늘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성삼재까지 갔다.

06 : 50 성삼재 도착
18㎏ 무게의 배낭은 사실 내게는 너무 벅차다. 우리 사장께서는 10㎏이하로 줄이라고 하셨지만 이 산에서 산 짐승처럼 굶주리고 헐벗으면서 짧은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 있는데 이걸 못 참는다면 말이 되나하는 심정으로 배낭을 꾸렸었다. 어깨에 꽉 배기는 배낭을 지고 종주에 나서려니 두렵기까지 했다.

07 : 10 성삼재 출발
버스에서 알게된 1940년 생이라는 아저씨와 동행했다. 배낭도 가볍지만 그 분은 잘도 가고 엄마의 손을 잡은 꼬마도 산책하듯 잘도 가는데 나는 땀만 흘릴 뿐 점점 처진다. 전망대 아래 흐르는 물에 이미 푹 젖어버린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수건도 적셨다.

08 : 00 노고단 대피소 도착
대피소에 도착하여 대피소 정문 우측 화단에 배낭을 내려놓으려고 까치발을 서다가(화단 높이가 약간 높은 편임) 장단지에 쥐가 났다. 40년생 아저씨가 비명을 듣고 와서 장단지를 주물러주어 겨우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1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체력을 전부 쓰지 말고 70%만 쓰고 30%는 비축하라. 숨이 턱에 닿도록 하지 말라. 처음엔 서서히 하고 워밍업이 된 후에 스피드를 내라고 하신 우리 사장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준수했는데.... 내 체력으로는 이 정도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하고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40년생 아저씨가 배낭이 내게는 아무래도 무리이니 나누어지고 같이 가 보자고 하는데, 갑자기 오기가 나서 쥐가 나 쉽게 못 떠나겠으니 먼저 가보시라고 쌀쌀맞게 말했다. 그 후 산행 중에 한번도 만나지 못 했는데 산행은 무사히 마치셨는지 염려되고 그 때 무례했음이 지금까지도 후회된다.
계속해서 다리를 주물렀으나 나아지지는 않고 오히려 다리 전체가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야간 열차 안에서 잠을 자보려고 소주까지 한 팩 마셨는데 동석한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셋이 화투치면서 떠드는 바람에 거의 잠을 못잔데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어째든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데 자연의 일부인 지리산이 나를 거절하랴, 고생은 되겠지만 종주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물병 2개를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09 : 00 노고단 대피소 출발
조금만 힘이 들면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하여 다리를 달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았다. 노고단 정상은 하루 4차례 각각 100명씩 공단직원이 인솔 개방하는데 첫 개방은 10:00이란다.
보고도 싶었지만 오늘의 야영 예정지인 연하천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어 정상 관람을 단념했다. 노고단까지는 전에 와봤기 때문에 대강 둘러보고 서둘러 출발했다.

10 : 10 돼지평전 도착
크고 작은 돌로 덮힌 너덜길을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걷자니 힘도 들고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돼지 평전에 도착하니 원추리, 동자꽃, 이름모를 다섯 꽃잎의 보라색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무리무리 피어있어, 이 후에도 자주 그랬지만 피로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책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인데 동자꽃에는 그 이름이 연유된 애닮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설악산 골짜기 조그만 암자에 노스님과 어린 동자승이 살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 아래 마을에 일이 있어서 노스님은 어린 동자승만 혼자 두고 하산하였는데 그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암자로 올라오지 못하고 이듬해 봄에서야 돌아와 보니 동자승은 노스님이 돌아올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얼어죽어 있었다. 그 자리에 동자승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 이듬해 봄 무덤에는 이름 모를 풀이 자라 동자승이 웃는 것 같은 고운 꽃을 피웠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동자승의 한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하여 동자꽃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돼지평전에서 바라보니 노고단이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안내판이 설명해 주듯이 노고단은 원래 마고할미라는 신선을 제사지내던 단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고, 지금은 천은사 부근으로 옮긴 남악사(南嶽祠)도 마고할미를 모시던 사당으로 원래는 여기에 있었다한다. 또한 노고단에는 길상봉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길상(吉祥)은 불교의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만으로도 불교와 도교 내지 민간신앙과의 조화를 엿볼 수 있어 기뻤다.

10 : 50 임걸령 도착

11 : 50 노루목 도착
노루목에서 보아도 노고단은 빤히 보인다. 노고단 정상이, 다른 이름으로 길상봉이 흰 구름에 덮혀 보이지 않다가 조금 후 구름이 벗겨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그 변화의 빠름이 더욱 신기하다.

12 : 30 삼도봉 도착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도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그 정점에 세모뿔 비슷한 동(銅)구조물을 세우고 각 방향마다 3도의 이름을 써 놓았다. 어떤 젊은이가 그 위에 앉아서 "나 지금 3도를 깔고 앉아 사진을 찍는 거야"라고 신이 나서 외친다. 나는 카메라가 없어서 3도를 한꺼번에 깔고 앉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가장 짧은 시간에 3도를 답파했다. 천왕봉은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갑자기 우루루쿵 천둥을 치기 시작한다. 세속적 욕망의 때에 찌든 내가 성스러운 산을 보려고 하니 보여주는 것은 고사하고 천둥소리로 야단치는 것 같았다. 바람까지 부니 아주 시원하다.

13 : 10 화개재 도착
옛날에 뱀사골 쪽 사람들이 화개장을 보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 할아버지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장을 보러 가던 생활의 길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배낭을 메고 등산을 즐기는 여가의 길로 변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지만 버너를 꺼내기 귀찮아 약과 몇 개로 때웠다. 200m 아래 뱀사골 산장이 있다지만 피곤해서 내려가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휴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배낭이 무거운 관계로 나는 수시로 휴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 것이 없으면 5분 이내로 끝내지만 볼거리가 있으면 20분이 넘도록 쉬곤 했다.

14 : 50 토끼봉 도착
천왕봉 쪽에서 들려오던 천둥소리가 멎고 바람조차 불지 않으니 다시 더워진다.
휴식 중에 준비해온 소금을 먹었더니 땀을 많이 흘린 후라 그런지 쥐가 나려는 피로감이 훨씬 덜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분은 소금 준비를 잊지 말도록 당부한다.

16 : 10 총각샘 도착
명선봉 가기 전에 총각샘이 있다고 내가 그린 약도에 명확히 표시되어 있는데 안내판도 없고 물어보아도 아는 이가 없다. 내 약도를 믿고 끈기 있게 물어 결국에는 알아냈다.
관리공단 담당직원께서 산행 중 목말라 고생하는 많은 등산객을 위하여 총각샘 안내표지판을 설치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산삼을 캐던 심마니 노총각이 발견했다하여 총각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물맛이 아주 좋았다. 물병 2개를 가득 채웠다.
샘 위에서 쉬고 있다가 동자꽃의 이름을 알려준 고석조 청년 일행 4명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아가씨 2명이 또 왔다. 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그 청년이 금방 떠온 물을 주면서, 총각샘물이라 처녀들이 먹으면 힘이 난다고 농담을 건넨다.
아가씨 2명이 먼저 출발하고 내가 곧 이어서 출발하고 나중에는 그 청년 일행만 남아 각각 헤어진 것 같지만 연하천 대피소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18 : 00 연하천 대피소 도착, 저녁식사
연하천(煙霞泉)이란 이름이 참 좋았다. 연기연 노을하 샘천이니 우리말로 하면 "노을샘"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샘은 이름처럼 물맛도 좋고 수량도 풍부하지만 대피소는 볼품도 없고 야영도 못하게 했다(아주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대피소가 차면 야영을 허락한다고도 했다).
앞에 쓴 것처럼 고청년 일행과 아가씨 2명을 다시 만났는데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젊은이들의 틈에 끼어 분위기 깨고 싶지도 않고 또 신세지고 싶지도 않아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물을 끓여 햇반을 데워 먹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고청년 일행이 있는 데로 가보니 식사를 끝내고 누른 밥을 끓이고 있어 맛있게 얻어먹고 걸음이 느리니 먼저 간다면서 앞서 출발했다.

18 : 30 연하천에서 1㎞지점 도착 야영
산행 도중에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평촌 거주 젊은 부부일행이 텐트를 치고 쉬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옆에 자리가 있으니 같이 야영을 하자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텐트를 치고 준비해온 제수로 지리산 영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젊은 나이에 산짐승처럼 살다가 죽어간 빨치산들, 이들을 잡으려다가 죽은 토벌군들, 빨치산과 토벌군 사이에서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 등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제사였다. 제수는 밤, 대추, 곶감, 배, 사과, 육포, 술은 팩소주 3개, 제문, 지방, 향도 빼놓지 않고 준비했다. 텐트 안에 제상 대신 비닐을 깔고 과일 껍질을 벗기고 진설을 마치고 보니 20:00경이 되었다.
지방을 세워 놓고 향을 피우고 술잔 셋으로 초헌을 하고 제문을 읽고 아헌 종헌을 마치니 20:30.
음복하고 이웃 평촌 분을 초대해 소주라도 마시려했더니 이미 조용한 것이 낮의 피로 때문에 일찍 잠이 드신 듯 하다. 할 수 없이 혼자서 과일과 술을 먹자니 맛이 있을 리 없다. 소주 두어 잔을 더 마시고 아깝지만 퇴주한 술을 버렸다. 대강 치우고 누워서 시계를 보니 21:00이 다 되었다.
이내 누어 다음날 06:30까지 9시간 반을 내처 잤다.




ㅇ 8월 6일(화) - 둘째날
06 : 40 야영지 출발
실컷 자고 나니 어제 내내 쥐가 나려고 하던 느낌이 싹 가시고 다리에 힘이 생겼다. 하루종일 쥐가 날까봐 조마조마 하던 마음에서 벗어나니 여유로움에서 비롯되는 미소가 나온다

07 : 40 삼각봉 도착
멀리 노고단이 구름 속에 숨었다 드러났다 하고 주변의 산골짜기는 구름으로 덮여 있다. 산행을 하면서 산 위를 덮고 있는 것은 구름이라고 쉽게 알 수 있는데, 산골짜기 아래에서 위까지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은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그 개념은 다음과 같았다.
ㅇ안개 : 수증기가 지면 가까운 지층에서 응결되어 떠 있는 현상.
구름과 비슷하지만 고도가 낮기 때문에 안개라고 하며...
ㅇ구름 : 대기 중에 미세한 물방울 또는 빙정(氷晶)이 모여서 떠있는 것. 보통 지면에 접해 있는 것을 안개, 그 밖의 것을 구름이 라 하여 구별하나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결국 실체는 비슷한데 지면에 접해 낮게 떠 있는 것은 안개, 높게 떠 있는 것은 구름이라고 구분한다는 말이니 해발 1,500m정도에 떠 있는 것은 구름으로 보면 틀림없다..

08 : 50 벽소령 대피소 도착, 아침식사
벽소령(碧宵嶺). 우리말로 하면 "푸른하늘고개"라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지리산인 원응(元應)이라는 분이 멋드러지게 쓴 간판도 붙어있어, 새집에서 풍겨오는 깨끗하기는 하지만 무게가 없다는 느낌을 조금은 지울 수 있어 좋았다.
고청년 팀이 밥을 주고 누른 밥도 끓여주어 실컷 먹었다.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고 했더니 키가 크고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신세랄 게 무엇이 있느냐고 활달하게 말한다.
미안한 마음에 천 원씩 주고 캔 커피 7개를 사다 주었더니 별로 맛있어 하지 않았다.

10 : 00 벽소령 대피소 출발
고청년 팀과 아가씨 팀이 먼저 출발하고 나는 10분 후 10:00 출발했다.

30분쯤 후 휴식 중이던 고청년 팀 일행과 만났다. 고청년은 동자 꽃, 둥굴레 꽃 등 꽃 이름을 가르쳐줬고 나는 분당에 있는 탄천 사랑을 높은 톤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

11 : 50 덕평봉 야영장(선비샘) 도착, 점심식사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거나 준비중이었다. 고청년 팀도 라면 끓일 준비를 하고 있어 내가 준비했던 라면 2개와 참치 캔 1개를 내어놓았다. 라면을 잘 얻어먹고 소주까지 몇 잔 얻어먹었다.
고청년 팀에는 아가씨 2명 외에 전문산악인 같이 보이는 30대 중반 사나이도 새로 끼어 이후 하산까지 죽 동행했다. 전문산악인이 선비샘의 유래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산아래 마을에 지체가 낮아 선비대접을 받은 것이 평생소원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이 돌아가시자 아들들이 상의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라도 소원을 이루시도록 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결국 우물 위에 무덤을 쓰면 물을 마시는 이들이, 설사 지체 높은 양반이라 하더라도 엎드려 먹을 테니 허리를 굽히는 모양이 되어 선비의 대접을 받는 것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우물 위에 무덤을 썼다. 사람들이 그 연유를 듣고부터 선비샘이라 불렀다는 측은한 이야기다.
고청년 팀에게는 계속해서 많은 신세를 졌고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석조, 유동학, 나승표, 신종환 네 청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혼자 먹을 것만 겨우 가지고 왔는데, 이 분들은 쌀이고 김치고 라면이고 할 것 없이 몇 명이 더 먹더라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을 무겁게 지고 다니면서 나누어주니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일인가!
아울러 친절하고도 예의바르게 대해준 류명희, 김지선 두 아가씨에게도 감사드린다.

13 : 00 선비샘 출발

14 : 10 칠선봉 도착
칠선봉에서 건너다보니 영신봉부터 제석봉까지 줄줄이 이어저 있고 천왕봉만은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제석봉 아래에는 오늘의 목표지점인 장터목대피소가 목가적으로 보인다.

14 : 40 칠선봉 출발
10여분을 가니 우측에 아름다운 경관이 전개되어 있어 잠시 휴식.
양옆의 급경사면에는 기암괴석이 서있고 겹겹이 두껍게 펼쳐진 산자락들과 그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이 정말로 장엄하고 그 계곡으로 불러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여 공해에 찌든 내 가슴을 씻어준다.
산행 중에 숫한 고사목을 보았다. 이미 잔가지를 잃고 굵은 가지만으로 팔을 벌린 듯 서있는 구상나무 고사목, 고사한지 얼마 안된 나무의 거죽에 핀 푸른이끼가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내게 전해주고 있었다.

16 : 10 영신봉 도착

16 : 30 세석대피소 도착
해발 1500m이상에 펼쳐진 30만평 넓이의 세석평전. 고원에 펼쳐진 드 넓은 평전이 한 때 빨치산의 군사훈련장이었고 봄철이면 철쭉이 흐드려지게 핀다고 하지만 (지리산 10경에는 "세석철쭉"이 포함되어있다) 지금 철쭉은 제철이 아니고 넓디넓은 평전에는 철제 울타리를 둘러치고 생태계를 복원 중이었다.
새로 심은 주목은 15년쯤 된 듯 앞으로 15년만 더 지나면 제법 멋지리라. 촛대봉 쪽 상단부에는 늪 비슷한 것이 조성되어 수북수북 국수풀이 자라고 있는데 이 고산지대에 늪이 조성된다면 이 산이 얼마나 풍성하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17 : 10 세석출발
20여분 후 촛대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석평전 아래에서부터 구름이 몰려와 평전과 대피소를 덮더니 어느새 대피소는커녕 바로 앞에 있는 바위조차 안보일 지경이 되었다.
높은 산은 기후가 빠르게 변화한다고 하지만 그 변화의 빠름은 순간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신봉 첫 봉우리에서 좌측을 보니 살아있는 가문비나무와 고사한 가문비나무가 팔을 벌리고 서있는데 백무동 쪽 바람을 맞아 나무줄기도 비스듬하고 가지도 나뭇잎도 바람 맞는 쪽은 성기고 반대 쪽은 무성하다.
더구나 드물게 보이는 소나무는 가문비나무보다 약해서 그런지 한 쪽에는 가지와 잎이 거의 없었다.

19: 20 연하봉 도착
연하봉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정말 아름다웠다. 높은 구름이 지평선과 평행하고 곧게 그은 가로금 위에만 깊게 두리우고 있는데 태양이 그 속에 있다가 그 금 아래로 조금씩 그 얼굴을 내밀면서 붉게 물들어 간다.
온전하게 둥근 얼굴을 이룬 것도 잠시 뿐, 아래쪽에 주황색으로 물든 구름이 어느새 위 금과 평행선을 그어놓았는지 태양의 둥근 얼굴이 아래서부터 조금씩 금 아래 구름 속으로 사라져간다. 태양이 보이지 않아도 그 구름아래에서 비추고 있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름 빛이 쉬지않고 계속 변하는데 나의 표현력이 부족하여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으니 환상적이더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앞에서 소동파의 적벽부 한 구절을 베겨 놓은바 있지만 조물주가 인간에게 무진장으로 제공하는 것이 어찌 동파거사가 언급한 강상의 청풍과 산간의 명월뿐이겠는가. 연하봉에서 본 낙조, 칠선봉에서 본 장엄한 산자락과 계곡, 비장한 아름다움까지 풍기던 고사목군,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이름 모를 꽃과 풀들. 그 자체의 소유자가 국가든 사인이든 그 것이 우주에 펼쳐 주는 아름다움이나 장엄함은 보고 느끼는 사람의 것이 아니겠는가?

19 : 40 장터목 대피소 도착, 저녁식사
야영을 하지 않고 대피소에서 자고 싶었으나 자리가 없다고 한다. 연하봉에서 낙조를 보다가 늦어서 어둑컴컴 해졌지만 야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야영지는 장터목을 약간 못간 지점. 아가씨들은 대피소에 잠자리를 마련했고 고청년 팀과 나는 더듬더듬 텐트 둘을 쳤다.
21:00경에 저녁식사. 점심처럼 고청년 팀에게 신세를 졌다. 22:00경 텐트로 돌아와 내일을 위하여 약간의 준비를 하고 23:00 취침. 내일아침 천왕봉 일출시각이 05:10이라니 기상은 03:00, 출발은 03:50 이전이어야 한다는데 적시 기상에 대한 보장이 있을 리 없다. 예비 배터리가 있는 친구가 핸드폰에 얼람을 맞춰놓고 자기로 했다.




ㅇ 8월 7일(수) - 셋째날
02 : 40 기상
03:00에 기상할 수 있도록 맞춰놓은 얼람이 울지리 않았는데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얼람이 울리기 전에 잠이 깼다. 텐트를 걷고 배낭을 정리해서 대피소 조리실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03 : 50 장터목 출발(천왕봉행)
구름이 두껍게 끼고 바람도 몹씨 부는 가운데 배낭없이 맨 몸으로 출발. 바람이 차다고 하여 윈드자켓에 긴 바지를 입고 후래쉬에 의지하여 앞 사람의 뒤끔치만 보고 걸었다. 맨 몸이지만 경사가 심하여 얼마 오르지 않아 땀이 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후래쉬 불이 불꽃놀이하는 것 같다고 하기에 뒤돌아보니, 짙게 낀 구름(짙은 안개를 연상하시라. 다만 앞에서 자세하게 언급했듯이 안개 아닌 구름임을 명심하시라) 너머로 구불구불 이어진 둥불(구름이 짙게 끼어 후래쉬불이 등불같이 보였다)의 행렬이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풍겼다.

04 : 50 통천문 통과

05 : 10 천왕봉 정상도착
일출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어렵사리 도착한 우리의 천황봉 정상은 실망스럽게도 물방울을 머금은 먹구름에 휩싸여 있어, 지리산십경 중 제일경이라는 천황일출은 볼 생각도 못했다. 혹시나 하고 더 기다려봤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정상에 둥글넙적한 비석이 서 있는데 동쪽 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서쪽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각각 두 줄로 힘찬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이 천왕봉 같이, 우리 한국인의 기상이 굳세고 활발하게 영원하도록 약동하기를 기원했다.
구름이 너무 짙어서 잘 나올 지 모르는데도 어찌나 열심히 사진들을 찍어 대는지 우리는 비석을 배경으로 하고는 못 찍고 그 옆에 있는 바위에서만 찍었다. 원래 사진찍히기가 싫었지만 권유에 못 이겨 포즈를 잡았는데 인터넷에 올릴 사진이라면서 고청년 팀 4명,아가씨 2명, 전문산악인 아저씨 1명까지 모두 모여 함께 찍었다.
우리 팀이 내려가고 발 디딜 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적대던 정상이 한 숨 돌릴 만큼 여유가 생기자, 이 장엄한 우주를 위하여 그 중심의 하나인 이 천왕봉 정상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1배씩 합장 배례한 후 하산을 시작했다.

06 : 00 천왕봉 출발(하산)
정상에서 얼마 내려오지 않아서 좌측에 고사목 군을 만났다.
바위틈에서 생존하기 어려워 그랬는지 고사목만 있을 뿐 산 나무는 없었다. 나무가 죽으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처음에는 가죽만 볏겨지고 이어서 가는 가지가 떨어져 나가고 굵은 가지마저 떨어져나가고 종당에는 등치마저 쓸어져 썩어가리라 생각하면서 고사목을 바라보니 그 훤칠함 속에 비장함이 서려있는 듯 했다.
중간쯤에는 천왕봉을 지키는 수문장 같은 바위가 있어 이름이 없다면 수문장 바위라고 명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석봉에는 제석단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보고 싶었으나 생태 복원을 위해 쳐놓은 목책 때문에 오른쪽에 있는 비석 같고 단 같은 것이 제석단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길 위에 서 있는 나무에서는 구름이 흐르면서 잎에 맺혀놓은 물방울이 바람이 부니 비처럼 떨어진다.

07 : 00 장터목 도착

08 : 00 아침식사
또 고청년 팀에게 신세를 졌다. 식사 중에 호의주의보가 발령됐으니 속히 하산하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이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08 : 50 장터목 출발(백무동행)
소나기를 맞으면서 윈드자켓만 입고 출발했다. 출발한지 20여분이 지나자, 등산화는 물이 스며 질척거리고 윈드자켓도 비가 새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수첩도, 옷도 모두 젖어 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이 배낭무게로 쩔쩔매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10 : 50 참샘 도착
세수하고 물병 2개 채우고 잠시 휴식

11 : 40 하동바위 도착
옷은 젖고 몸도 피곤하여 쳐다보지도 않고 백무동까지 1.8㎞라는 안내판만 보고 통과. 나중에 왜 그 이름이 하동바위일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피곤하더라도 보고 올 걸하고 후회.

12 : 40 백무동 도착
비로 노백이 하고(충청도 사투리인데 본뜻은 잘 모름) 백무동에 도착.
그때의 내 모양은 비맞은 개 꼴 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결코 낫지는 않았으리라.
그 꼴로 터미널까지 가서 마지막 1장 남았다는 서울행 버스표를 샀다 (버스요금 22,000원). 차시간까지 비를 맞으면서 머리도 감고 바지도 입은 채 무릅 아래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 양말도 빨았다.
시간이 없어 고청년 팀 일행과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심정으로 양말을 빨고 있는데 고 청년이 갑자기 나타났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데 고 청년은 내 형편을 보고는 인사고 뭐고 나중에 서울서 다시 만나 하자면서 차를 타라고 한다. 후일을 기약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13 : 20 백무동 출발
점심도 못 먹었지만 건빵 1봉지와 소주 1병을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건빵을 안주 삼아 소주 1병을 비우고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19 : 40 서울동부터미널 도착

21 : 00 분당 도착


4. 산행기를 끝내면서

가. 참으로 좋은 사람이 많더라는 이야기
고청년 팀은 전북이 고향인 동향 청년들인데 어찌 그리 친절한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지리산이 문수보살과 관계 깊은 산이라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이 분들을 만나고 나서, 나 보다 못 한 사람이 없음을 깊히 깨달았다. 산에서 만나 따뜻한 격려와 염려의 말씀을 주신 분들과 진심어린 조언을 주신 우리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나. 낙수(落穗) 2제
ㅇ. 지리산에는 청설모가 없다.
내가 이 번에 선택한 코스는 "성삼재-노고단-천왕봉-하동바위-백무동"이었으니 그 밖에는 안 가봐서 모르지만 적어도 이 코스에는 외래종 청설모는 없고 토종인 다람쥐만 산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첫째로 다람쥐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청설모는 그림자도 못 보았고,
둘째로 청설모는 소나무나 참나무의 새순을 잘라내고 거기서 나오는 수액을 빨아먹기 때문에, 그가 사는 곳에는 잘려 떨어진 소나무 등의 새순이 널려 있는데 그런 것도 보지 못했다는데 있다.
나는 외래종인 청설모가 지리산에 침입하지 못하는 것은 이 산이 민족의 성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ㅇ. 지리산 종주에 모기향이 웬 말
산행을 준비하던 중 모기향도 필요한 지 누군가에게 물어 봤더니 산중모기는 도시모기와 달라 한 번 물리면 큰 일 나니 꼭 준비해야 한단다. 그래서 10롤 짜리 한 갑을 샀는데 모두 가져가기는 무겁다고 2일분으로 4롤만 꺼내어 부러지지 않도록 잘 포장해 가지고 갔더니 모기향은 아무 쓸 데 없었다.
산 아래는 삼복더위다, 열대야다 야단이었지만 산 위는 침랑 없이는 잘 수 없을 만큼 추웠으니 모기인들 어찌 견딜 것인가.



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건의
윤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라고.(2권에서는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된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로 정확히 해석하였음).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안다는 것이 일견 모순인 듯 하지만 알면 아는 만큼 더 잘 보게되고 더 잘 보면 잘 보는 만큼 더 많이 알게되니 서로 상승작용을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리라.
샘이나 산봉우리에 그 명칭이나 위치 등을 잘 안내해주어 모르는 이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함은 물론이고 그 이름의 유래나 역사적 사건을 기술해줌으로써 산행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지리산을 아끼는 마음을 키웠으면 한다.

라.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보잘 것 없고 지리하기 그지 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지리산이 깨끗하고 온전하게 보전되도록 다같이 노력하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아울러 이 글이 길게 되었음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양해드리고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의도를 10분의 1도 달성하지 못하였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 첨부 >

제 문

한국동란을 전후하여 이 지리산에서 생을 마감한 영령들게 고합니다. 여수순천 반란사건을 일으켰던 반란군과 남로당원으로 구성된 빨치산, 이들을 토벌하던 국군과 경찰, 빨치산과 토벌군 사이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산간마을 주민들까지 이 산자락에서 돌아가신 모든 영령들께 외람되나마 삼가 고합니다.

영령들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반세기가 흘렀습니다만 십오륙년 전 이 태씨가 쓴 "남부군"이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영령들의 아픔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부터 젊은 나이에 서럽게 죽어간 영령들을 위해서 작으나마 진심어린 위로의 제사를 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오래 동안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서야 과일 몇 알 높고 제사랍시고 모시는 저의 불민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생각해보면 일제의 긴 압제 속에 살아오다가 광복을 맞이하고 보니 우리 나라를 멋지게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의지는 강한 반면, 그 방법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방향을 잡지 못하여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특히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혼란스러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와중에서 권력에 눈이 어두운 선동 정치인들에 의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친미세력과 친소세력,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선량한 민중들은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회색분자로 낙인찍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금에 이르러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어떤 선택이든 그것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더 잘살기 위한 것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의 선택이었어야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야 할 것임에도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수단일 수밖에 없는 이데오르기를 위하여 같은 민족 같은 핏줄끼리 총칼을 마주하고 싸우고 소중한 젊은 목숨까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옛날 일을 되뇌어 본을 무슨 소용이 있으오리만 젊으나 젊은나이에 이 산에서 생을 마감한 여러 영령들의 고통스러웠던 투쟁과 허무했던 종말이 너무도 안타까워서입니다.

엄동설한에 신발은 물론 감발 마저 없어서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겪은 추위와 배고픔, 기약도 없이 이 산을 헤매면서 느꼈을 바닥없는 절망감, 닦아오는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거나 안타까워 해줄 사람도 없으리라는 뼈저린 고독감등 영령들이 겪었을 말로 다 해아릴 수 없는 깊고 깊은 고통에 대하여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령들이시여.

이 지리산에서 겪으신 모든 아픔과 한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씻어버리시고 모두 모두 극락세계에서 큰복을 받으소서.

넓고 넓은 우주를 마음껏 날아다니시다가 가끔 가끔 이 지리산에도 오셔서 편안히 쉬다가 가시옵소서.

우리조국 우리민족이 살기 좋은 나라, 분열과 반목이 없는 나라, 평화로운 나라가 되도록 보살펴도 주시옵소서.

표현이 부족하고 차림이 빈약하여 죄송스럽기 그지없으나 이상으로 위로의 말씀에 대신하고 박주 한잔이나마 정성껏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2001. 8. 5.
우계명이 삼가올립니다.

  • ?
    쉬나니 2001.09.25 14:35
    멋진 산행 축하드립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지리산 주능 전체가 야영금지구간이고 선비샘은 취사금지구역이라는 점이네요.
  • ?
    목산회 2002.02.24 20:32
    지리산 종주를 생각하고있는 60대 후반의 지각생 산사람이 구경 잘하고 갑니다
  • ?
    오해봉 2002.09.14 01:08
    50대 후반의 어려운 지리산 종주 성공. 젊은 나이에 숨져간 국군 전투경찰, 산간주민 그리고 빨치산 영혼까지 챙겨 주신 정성에....
  • ?
    정우진 2002.11.25 21:32
    멋진산행, 좋은 글, 유익하게 잘 읽었읍니다. 우계명 선생님 내내 건강하고 행복 하세요.
  • ?
    해성 2004.12.19 21:03
    우선 선생님의 산행완주를 축하드리며..
    잔잔한듯 세심한 설명과 곁들여진 산행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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