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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네 번째 실직,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제2절 설명이 필요하면 설명해 줘도 모른다, 이 길의 의미를---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전체 일정 동행자는 3명, 주말 단기 합류는 별도로 생각하기로

하고 희망자를 찾아 나섰다. 모두 7~8명의 고교 동기들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 시간이 자유로워 15일 정도를 만들 수 있고

* 평상시 등산 등 꾸준한 운동으로 기본 체력이 되면서

* 성격이 모나지 않아 조화를 깨뜨리지 않을 그런 사람을 골라서,

 

두 번 묻지 않았다. 구구하게 설명하거나 권유하지도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도 이런 글귀가 있지 않던가. “설명이 필요하면 설명해

줘도 모른다” 2~3일 떠나는 등산, 야영이 아니니 간절하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이유 없이 몸만 따라 나서 봤자 서로에게 짐만 될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도모할 때 지켜 온 원칙인

“둘만 되면 실행한다.”를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지키려 했다. 다행히 지난

여름 지리산 종주 팀의 멤버 중 L이 제안 즉시 결심해 기본 조건은 일찍

충족되었다. 또 27년 동안 광고대행 한 업종에서만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연말 자리를 떠난 J가 길을 떠나기 일주일 전쯤 마음을 굳혀

결국 3명의 팀이 만들어 졌다. J와는 거의 이런 육체 활동을 같이 해 본 적이

없지만 워낙 신중하고 무난한 성격이라 별 걱정 없었다. 세 명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방 하나면 되니 이상적이고 편이 나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니 혹 갈등이 생겨도 큰 사단이 날 공산은 낮다. 또 필수 공용화기

(火器)를 나누어 지고 다니기에도 딱 적당하다. 소위 규모의 경제가

갖추어 지는 셈이다.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

인터넷부터 뒤졌다. 그런데 ‘사단법인 숲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다른 경험자들의 블로그 등을 살펴봤지만 1년이면 50회 이상 산을 다니는

10년 등산 경력자인 나조차 도대체 이 길의 구체적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 그냥 편안히 지리산 주변을 ‘둘러’가

는 길은 아니다. 돌이켜 보니 구체적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둘레길’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선입견이었다.

 

일단

* 전체 기간은 2주 내외

* 초반에는 적응하기 위해 천천히

* 숙박은 민박

* 가급적 식사는 사먹는다.

정도의 원칙만 정하고 상세 일정과 준비물 확인부터 시작했다. 「숲길」이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 올라 있는 각 구간별 거리, 특성(지형, 등고),

소요 시간, 경유지 등을 바탕으로 일정을 짜는데 확인 차 몇 군데 민박에

전화를 하니 두 곳 중 한 곳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공식적으로는 2월 말까지 둘레길 운영 중지 기간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초등 시절 2년 정도를 면 소재지에서, 중등 시절

3년은 읍 소재지에서 살았지만 이미 서울 생활 34년. 둘레길이 지나가

는 시골 지역의 환경을 이제는 잘 알지 못한다. 둘레길 지원센터에 전화해

물으니 민박이 아니면 밥을 사 먹기도 어려울 거란다.

어설펐던 일정은 다 무너뜨리고 하나하나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거리, 시간, 지형 등을 감안해 첫 이틀은 잠자리까지 다 확인해 두었다.

이때부터 짊어지게 된 잠자리와 식사 장소를 물색하는 임무는 마지막 순

간까지 이 여행을 제안한 나에게 부여된 원죄였다.

 

3월 8일(일, D-2)

모교 재경 총동창회 산악반의 시산제. 서울에서부터 동행할 J와 함께

참석해 남한산성 길을 걸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꼭 성공하게 해

달라고, 무사히, 낙오자 없이. 함께 참석했던 동기생 10여 명 중 고마운

친구 이용준과 황현철은 당분간 시원치 않을 먹을거리를 걱정하며 영양

보충을 권했다. 가락 시장에서 생선회로 든든히 단백질을 비축하면서

여행자 둘은 전의를 다졌고 후원자 둘은 장도 무사고를 기원해 주었다.

이후 직접 찾아 와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해 주신 친구, 후배

그리고 전화로 SNS로 격려해 준 많은 선후배, 지인들의 응원은 이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3월 9일(월, D-1)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2명, 마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1명이니 당일

아침에 모여 출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하루 전에 모여 이런저런

상의도 하고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 아침출발도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베이스 캠프는 함양.

굳이 함양을 출발점이자 베이스캠프로 삼은 이유는 절친한 동기 박종원 원장이

이곳에서 15년 째 개업의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이후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들른다. 지난 여름 두 번째 지리산 종주를 마치자 마자 찾아

갔던 곳 역시 이 친구의 병원이었다. 오늘도 이 친구랑 여행자들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진주에 있는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고교 동기 유순필도 여행 중 비상용으로 쓸 코펠을 들고 합류하기로 했다.

 

서울 날씨가 심상치 않다. 봄 날씨가 변덕이 심하기는 하지만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오늘도 별로 재미없는 첫 경험을 한다. 240일 동안

최대 일 43,000원인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

서초 고용 센터 담당자는 오리엔테이션에서 혜택을 받기 위한 절차와

요건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한마디로 ‘그냥 주는 돈이 아니다.’‘

스스로 성실히 구직 노력을 해야 하고 또 그 노력을 증명해야 한다.’

등등. 여지껏 한 번도 이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두 번은 사장이라서 또

한 번은 공무원이라서. 여하튼 이 보릿고개에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지

만 기분은 영 아니다. 마치 백수 증명서라도 발급받는 기분이다. 교육장

한 쪽 구석에 배낭을 세워 놓고 등산복 차림으로 구직 노력 운운하는

이야기 듣는 것도 그렇고 옆에 앉은 아들뻘 쯤 되어 보이는 녀석의

거들먹거리는 자세도 영 눈에 거슬린다. 강의를 마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햄버거로 대충 점심을 떼운다. 잠시 후

J가 도착했다. 약간 상기된 얼굴. 배낭을 들어 보니 만만치 않다. 13시

15분발 시외버스를 타고 거창을 거쳐 함양으로 향한다.

세 번째 백수생활을 하던 2007년 여름 같은 곳을 같은 방법으로 간 적이 있다.

어느 중앙일간지의 편집국장을 끝으로 지리산 근처로 낙향해서 당시 3년째

살고 있던 9년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 여행을 마치는 3월 22일

15일 만에 만나 보는 화려한 집 밥으로 축하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둘은 말이 없다. 아마 이 여행의 의미를 나름 되새기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리라. 늘 그러 했듯 나는 버릇처럼 몇 자를 끌쩍여 본다. 고교 동기

산악 모임 밴드에.

 

이 모임이 산모임이니만큼 신고한다.

지금 나는 J와 함께 거창을 거쳐 함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담고 있다.

함양에서 전체 일정을 같이 할 L과 지역에서 이번 시도를 지원해 줄

박종원, 유순필과 함께 오늘 밤 오붓한 시간을 가진 후 내일부터 다소

별난 시도를 해 볼까 한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 한 바퀴 휘 돌거다.

이름하여 지리산 둘레길. 최소 240km에서 최대 280km.

13~4일 예상한다. 함양에서 시작해 산청, 하동, 구례, 남원으로 간다.

새는 하늘의 길을 알고, 고기는 물속의 길을 알고, 짐승은 땅의 길을

안다고 했는데, 나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지 알고 싶다.

인생 후반기는 여지껏과 다른 생각으로 살고 싶다.

완전한 내가 아니라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치기 어린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만용이랄 수도 있다만 비록 50대지만

아직 이 정도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은 허용될 수준 아닌가?

또 이 정도 핑계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싶다.

길바닥에서 뭔가 하나 주우면 친구들과 나누어 가질 것을 약속한다.

희랍인 조르바를 쓴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더 바랄 게 아무것도 없다, 두려울 것도 없다, 나는 자유다.

무사귀환을 빌어 주면 고맙겠다. 친구가 좋다.

 

오랜만에 타 보는 시외버스의 정취도 나쁘지 않다. 함양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박 원장의 병원에 들러 두 친구 인사시키고 – 동기 졸업생이

6백 명이 넘고 박종원은 대학부터 줄곧 지방에서, J는 대학부터 줄곧

서울에서 활동했으니 둘은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박종원은

이과, J는 문과라 1학년 때가 아니면 같은 반이었을 기회도 없다.

그래서 둘은 잘 모른다.

 

마산과 진주에서 오는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함양 땅이 처음인 J를 데리고 함양의 명물 상림(上林)으로 나선다.

이땅 최초의 인공조림지. 여러 번 들렀지만 벌거벗은 상림은 처음이다.

일자리가 없는 지금 내 상황에서 2013년 여름, 몸 담고 있던 회사의

복지재단이 후원했던 양육 시설 학생 여름캠프의 해단식 장소로 사용했던

상림공원 입구에 있는 복지회관 뒤뜰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반갑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때 저 곳에 줄지어 서 있던 20여 대의 캠핑카

는 장관이었는데… 25년 넘는 조직생활을 통해 가장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STX복지재단!

 

오늘의 메뉴는 지리산 흑돼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 단백질이다.

격려성 유혹이 많다. ‘내일 춥단다. 늦잠 자고 오후에 출발해라,

굳이 가야 맛이냐 그냥 돌아 서라, 늘그막에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뭐냐’등등.

노래방까지 들렀다가 50대 초반 고등학교 동기 5명이 여관방에 드니 난리도 아

니다. 무슨 수학여행 온 것도 아니고. 술잔을 잘 놓지 못하는 L은

다음날 아침에도 숙취로 고생이 심했다. 여하튼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베이스캠프를 지켜야 하는 박 원장과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합의했다. ‘신체에 문제가 생기면 하시라도 전화해라, 바로 왕진(往診) 간다.

한 번쯤은 격려 방문을 하겠다. 마지막 날 뒤풀이는 참석하겠다.’

 

이 책은 유명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입니다.  
사진이 포함된 원고는 페이스 북 '백수라서 다행이다(
https://www.facebook.com/baggsu/)' 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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