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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25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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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골은 악천후만 아니라면 계곡을 그냥 거슬러 오르면 된다. 산꾼들이나 하다못해 그 숱한 심마니나 고로쇠꾼들이 드나들었던 흔적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산비탈쪽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비탈면의 경사가 만만치않아 돌아나가기도 어렵지만 그 보다는 그 너른 반석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가을 가뭄으로 수량이 평소의 반도 되지않는 오늘같은 날은 그냥 계곡 물소리를 행진곡삼아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된다.

그러다 아담한 폭포를 만나면 미안한 마음으로 바위사면을 돌아가면 되고, 굳이 물길을 건너야 한다면 박자에 맞추어 조금 큰 걸음으로 훌쩍 뛰어넘으면 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반석 위를 덮고 있는 낙엽에게는 한번쯤 다정한 눈길을 주어도 좋다. 비록 생명을 다한 미물이라 하더러도 발아래서 들리는 아우성이 이 가을 이곳에서 만큼은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귀를 쫑긋대고 들어보라. 잘왔다, 반갑다, 고맙다, 니가와서 기쁘다, 오늘 괜찮치 않니? 위쪽엔 더 좋을거야, 세상살기 힘들지? 오늘만큼은 잊어라, 지쳐있으면 쉬어가라, 용기를 잃지마라, 넌 할 수 있다... 나를 달래주고 어루만져주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너 왜왔니, 내려가거라, 너 숨길 곳 없다. 왜 나를 귀찮게하는거야, 오늘 힘들텐데 고생좀 하거라... 이런 예기가 들리지 않으면 당신은 이 계곡을, 아니 지리산을 다닐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셈이다.

  
이 계절에 비린내골을 걷는다면 저 낙엽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갑자기 커다란 소가 하나 발길을 붙든다. 붉은 단풍잎이 바람에 이끌려 수면위에다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위쪽 넓은 여백엔 하늘을 가득 채워 넣고 있다. 와폭에선 하얀 실뱀 한 마리가 미끄러져 내려와 사라진다. 떨어진 낙엽 하나가 어지럽지도 않은지 맴을 돌고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둥그런 그 도화지 속에서는 어느 하나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을 그려내고도 남는 다는 듯 내 걸음걸음마다 책장을 넘기듯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낙엽이 가득쌓인 드넓은 소, 소의 넓이가 짐작이나 되십니까?



이러한 풍광은 이후로도 한참을 이어진다. 다만 이제는 고도를 높여야 한다는 듯 조금씩 경사가 쎄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줄기 빛이 피보다도 붉은 단풍잎 사이를 뚫고 내려온다. 빛을 받은 잎새는 그 색이 더 강열해진다. 노랗건 빨갛건 어느 것이 더 화려하다는 수식어는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

노란 생강잎은 노란해서 예쁘고, 빨간 단풍잎은 빨간해서 예쁘고, 하다못해 바람이 일어 속절없이 떨어지는 산벚나무 잎이라 하더라도 나폴나폴 나부끼는 그 모양 자체가 이쁘고 아름답다.

여기서는 모두가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된다. 뱉어내는 단어가 모두 싯구들이요, 보이는 것 모두가 그림이다. 계곡을 오르면서 마음을 싯고, 거짓나부랭이들의 허튼소리들을 소쇄한 바람에 싯어내면 낙엽들의 응원소리가 들리고 새들의 노래가 응원가로 들린다.





가을의 향연을 즐기면서 오르다보면 후미진 골목을 돌아나가듯 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반석지대 너머로 커다란 폭포 하나가 성큼 다가온다. 그 벽이 너무 곧추서있어 마치 이후로는 길다운 길이 없음을 알리는 듯하다.


이골짜기의 유일한 폭포, 가을 가뭄은 폭포마져도 목마르게 한다.



여기서 계곡은 둘로 갈린다. 좌측은 상부에서 사태지역을 오르게 되고, 우측 상부는 너덜강 지대를 오르게 되지만 두 곳 모두다 벽소령 작전도로를 만나고 나서야 오름길이 끝난다. 비린내폭포에서 1시간정도의 거리다.

(계속)


벽소령도로, 도로의 상채기를 가을이 포근히 덮고 있는 듯 보입니다


벽소령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지리산을 가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습니까?


구름모자

  • ?
    moveon 2008.11.07 23:08
    생명을 다해 계곡에 조락한 가을과 아직 속살 남은 숲길이 묘한 조화를 보여 줘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요 어찌 지리산에 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동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선경 2008.11.12 09:33
    모두가 시인이되고 화가가 되는
    가을향연속에 지리계곡~~바람에 나부끼는 낙엽과
    새들의합창~~천상의 아름다움 그자체입니다~~
  • ?
    울산바위 2008.11.13 08:50
    산행기는 워낙 정평이 나 있었지만 사진도 너무 잘 찍으시네요. 사진도 곁들여지니 더 멋지네요.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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