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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동은 이데올로기전쟁의 잊지 못할 역사가 깃들여져 있는 곳이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과 이홍희가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하지만 남한 파르티잔의 종말이 이곳에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정순덕(호적은 정순점)은 비결파 집안에서 자란 산골 소녀였다.
정감록을 신봉하던 할아버지에 의해서 지리산으로 들어와 산청군 단성면 소남리에 안주하였으나, 그의 아버지 정주삼이 다시 70리나 떨어진 안내원마을로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정순덕은 정주삼과 진도원의 1남4녀 가운데 둘째딸이다.
16세 되던 해에 3년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입을 덜기 위하여 빈농 성석조와 결혼한다.
그러나 6.25동란 후 공산당에 가입했던 남편은 전세가 역전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고,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던 당시 아군의 협박과 구타에 못이겨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세상물정 모르는 열여섯 새색시는 전쟁이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평온해 질 것이라 믿었지만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으로 남는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에서 5백석의 부농으로 잘 살던 이홍희 집안 역시 비결파 집안이었다.
'정감록'을 믿고 일제말기에 지리산 동부 밤머리재 아래 산청군 삼장면 홍계리로 이사온 1남4녀의 외동아들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5세 때 여순반란사건의 패잔병들이 고향마을로 들어오는 바람에 '인민공화국 소년단'에 입단했다가 군경토벌대가 들이닥치자 그길로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사상을 알리 없었던 꿈많은 소년의 인생 숨바꼭질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열여섯 새색시와 열다섯 소년이 승부 잃은 게임으로 13년의 긴긴 겨울을 보냈던 지리산,
그러나 어찌 그것이 13년뿐이었겠는가?
그들의 선조는 약속되지 않은 미래에 의심도 없이 고향과 친지를 버리고 지리산을 찾아 들었을까?
그들이 태어난 지리산은 학정을 피해 들어왔으니 포근하기는 했을까?
그 넓은 지리산이 제 몸뚱아리 조차 숨길 곳이 없어 숨어 지내야만 했던 모진 세월 속에서도 그들의 신념은 진정한 자주통일이었을까?
겨누었던 총부리는 내재된 원한이었을까? 삶의 몸부림이었을까?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들의 투쟁 궤적 속에 잊혀지지 않는 극명한 사건이 둘이나 있다.

쌍계사 뒤편 골짜기 화전농가에는 조만제, 이판순 부부와 아홉 살짜리 딸이 살고 있었다.
1956년 초여름 이들을 찾아온 3인의 망실공비는 정보제공 협박을 한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가족들이 새벽녘에 그곳을 빠져 나가려다 발각되어 무참히 살해된다.

1962년에는 이은조마저 잃고 고향마을로 숨어 든 2인조가 구들장 밑에 비트를 튼다.
동네에 살고 있던 정위주 형제들을 정보원으로 생필품을 구해 산 목숨을 연명하지만 포상금을 노린 정씨 형제의 변심으로 정위주부부와 뱃속의 아이, 정정수부부가 살해 당한다.

여기서 상기해야하는 사실 하나는 살해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1950년 시작된 한국동란이 1953년 7월 휴전협정을 체결했다는 점과 1955년 5월 지리산 서남지구 전투사령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빨치산 섬멸을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남한 땅에서는 전쟁도 끝나고 빨치산과의 싸움도 끝이 났으니 이제는 이 평화만 잃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쟁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러니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공산주의자를 막는 일이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 공산주의와의 싸움, 민주진영자들의 학살 참상 등을 낱낱이 까발리고, 빈곤과 어수선한 정치상황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반공이 최고였다.
반공이 국시였고, 온 국민을 반공으로 뭉치게 하고, 코흘리게 어린아이들에게 까지 간첩 식별 방법을 교육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망실공비가 저지른 2건의 살인사건은 반공국가에서, 반공으로 무장하고, 공산당이 가장 싫다고 교육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감히 용서를 바라지도 못할 정도의...  


그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던지 정순덕은 23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없는 다리를 부여잡고 부모님 묘소를 찾았지만 고향마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냉기가 얼마나 서늘했으면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가는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해댓겠는가.

"가랑이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 천벌을 받아도 싸.”


아직도 내원의 골짜기는 조용하다.
번듯한 외지건물이 너 댓 채 들어서긴 했지만 너무 적막하여 서늘한 냉기가 골 안에 가득하다.
말없이 죽어간 피아의 넋이 그렇고, 불쌍하게 죽어간 민초들의 한이 그렇고, 이유없이 원수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세파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찾아들었던 이상향의 땅(적어도 그때까지는)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마감짓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화해와 용서마저도 잃어버린 듯 하다.

남과 북, 가족과 친지, 정다운 고향산천과도 멀어져야했던 그들의 삶이 애잔하여 스치는 바람소리는 흐느끼듯 국사봉을 넘어오고, 내원의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는 단말마처럼 애달프다.


- 구름모자 -

  • ?
    moveon 2009.08.20 13:15
    오늘은 그 아픔과 외로움이 더욱 절실해지는 날입니다. 시간을 뛰어 다니다 보는 내원골의 사연들이 더욱절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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