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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조회 수 215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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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제목이  범상치 않다.
지리산 관리주체가 벌과금을 물려가며
들어가지 말라고 한 길을 몰래 들어갔으니 ‘몰래 산꾼’이요 ,
그렇다고 불법이 상습적이지는 않으니
‘초보’라고 불러도 무방치 않을 것이다.
오랜동안 불같이 염원하던 종주길에 나선 날은
비바람이 요란한 5월의 어느날이다.

새로 개통된지 얼마 안 되는 고속도로,
구례화엄사 나들목을 나설 때부터 산행 친구와 나를 비바람이 맞이한다.
천은사 초입에 접근하며 구수한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성삼재 횡단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잔뜩 비를 머금은 구름은 산구릉 골골이 차올라 조망을 아예 없애버린다.

-성삼재,
12시50분,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강풍이 몰아가는 노고단 고개를 향하여 출발한다. 
2박이 될지 3박이 될지 모르는 산꾼과
그 등에 지워진 70리터급 배낭은 판쵸우의로 감싸주었다.
단숨인 듯 올라가니
노고단산장에는 비를 피하며 삼삼오오 점심이나 요기들을 하고있지만
종주길에 나선 산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고단 고개,
바람이 세찬 고개에서 보는 노고단은
비바람에 갇혀 시야에 안 들어온다.
관리요원 하나가 우장을 한 체
비바람 속 종주길에 나선 우리를 염려하며 소요시간에 대하여 조언한다.
저 멀리에 있을 상상봉-천왕봉을 예상하며
시골아낙의 가르마처럼 좁으장하나 족적이 훤한 산길을 내려선다.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 지리 마루금을 함께 걷는 길이 마음 든든하다.

-돼지령,
장쾌한 능선길에 서니 좌우의 조망이 그립다 .
그러나 아직 빗줄기는 간간이 내리고 바람이 그치지 않으니 언감생심.
막 피어나는 연두빛 신록의 관목들만이 아름답다.
사철 풍우에 시달려 옆으로옆으로 많이 퍼진 아담하고 풍성한 철쭉그루는
이제 희미한 연둣빛 꽃을 반 너머 달고 서 있다.
그 옛날 이 고개에 흔하던 산돼지들이
풀뿌리며 먹거리를 찾아 파헤치던 시절을 생각해본다.
아직 바람은 살아있으나 구름짬으로 간간이 조망이 트여
반야봉이 앞에 우뚝하고
뒤돌아보는 눈에는 노고단정상과 종석대,
그리고 서북릉의 연봉들이 다가서 보인다.

 




-임걸령,
평일인데다 비바람 치는 늦은 오후시간이라서  
산길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임걸령 산길을 걸으며 임꺽정을 생각한다.
연관이 있을 리가  없지만 임씨 성을 가진 걸출한 인물을 생각하다 보면
얼른 그를 생각한다.
물론 허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의적과 이곳 임걸령과는 관계는 없겠지,
임걸령삼거리를 지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서면 피아골,
가을 단풍철에 여럿이 어울려 다니던 날들을 기억해낸다.
임걸령 샘에서 식수를 채우고 판쵸우의도 벗고  잠시 쉰다.
비로소 들리는 두런거리는 산꾼의 소리가 반가우나
마주치고보니 비호감이 묻어나는 인사들이다.
서둘러 노루목을 바라보며 발길을 재촉한다.

 




-노루목,
삼거리다.
종주길에 반야봉을 들릴것이냐 생략할것이냐 판단을 요하는 곳.
비온 뒤의 조망도 시원치않고 늦은 걸음인 우리가
일몰 전에  연하천산장에 당도하려면
반야봉은 이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쳐 걷는다.

-삼도봉,
드넓은 품으로 3개 도  5개 시군을 포용하는 지리산 능선중,  
표고 1,500미터를 넘나드는 준령에
전남북과 경상도의 경계로 절묘하게 나뉘어 만나는 곳이다,
저 아래 골짜기에는 하늘에서 쏟아부어 채워놓은 듯한
희고 고운 운해가 깔려있다.
비온 뒤 부는 바람결에 간간이 보이는 저 운해들은
얼마나 많은 산꾼들이 눈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아름다워했을까.
아직 바람은  남아있어
바위끝의 신록들이 어지러이 움직인다.
이제 화개재로 내려선다.
목재덱크에 설치한 500여개의 계단,
그 편리함도 좋지만  무거워진 몸과 등에 진 짐이
일정한 보폭에 걸리는 하체 관절에 더욱 압박을  가한다.

-화개재,
지금은 폐쇄된 뱀사골대피소 위 능선에 있는 삼거리인 화개재는
산꾼들의 발길에 어지간히 시달린 고갯마루이다.
생태복원을 위해 애를 쓴 인공시설물에 걸터앉아
간식을 하며 쉰다.
멋있는 조망은 아니지만
뱀사골코스에서 주능선과 만나는 지점으로써
후손들에게는
아름다운 화개재로 남기를 기대한다.

 




-토끼봉,
화개재로부터 치고 오르는 산길은 매우 가파르다.
동행하는 친구가
한여름에 무던히도 애를 먹은 기억이 남아있는
‘악명의 산길’이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은 연두색깔 신록이 아름답고
발 아래에는
무더리무더리 피어있는 얼레지가 연보랏빛 꽃을 달고 반겨주는 산길이다.
신록으로 울창해져가는 숲의 짬으로 서쪽을 바라보니
석양으로 치닫는 늦은 햇빛에
반야봉이 우람하게 내려다 보고있는 곳,
그 중간에 불그스레한 지붕을 이고앉은 묘향대가 보인다.
꾼들의 산행기로만 알던,
나홀로 스님이 수행정진한다는 그 곳이다.
몰래산꾼들이 감춰놓고 야금거리면서 즐기는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우리는
감동의 눈으로 보고 또 본다.

-명선봉,
이제는 석양의 기운이 한결 더 짙다.
토끼봉을 지난 우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능선을 치고 앞으로앞으로  나간다.
무릎아래로 얼레지꽃이 밭을 이루고
푸르른 현호색이 아름다움을 다투는 속에
어김없이 내려앉는 석양빛은 봉우리를 가리고
골짜기와 산길에는 몽환적인 煙霞를 뿌려놓는다.

-연하천산장,
연하속에 발길을 서둘러 명선봉을 돌아 19시에
지리산 산장 중에
이름이 제일 아름다운 연하천산장에 도착한다.
공식 명칭은 ‘대피소’라고 하지만
나는 ‘산장’이라는 명칭이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일찌감치 도착하여 여장을 푼 단체학생들이 있어서 산장은 만원이고
젊은이들의 소란 속에 산장은 아직 낮빛이 남아있다.
대피소 예약이 안 된 우리는
예약취소로 비는 자리가 나기를 기대하며
우선 저녁을 준비한다.
산장앞 나무식탁에 자리잡고  
판쵸우의를 이용하여 저녁나절 싸늘한 바람을 막는다.
버너의 불빛이 주위를 밝히고
버너위에는 밥도 끓고 국도 끓어 맛있는 성찬이 준비된다.
텃밭에서 뜯어간
상치,씀바귀,돌미나리,곰취 등 쌈채소로 쌈을 싼다.
아울러서 작년에 담근 모과주와 매실주를 반주삼아
볼태기 오목거리며 먹는 맛이 그만이다.
낮에 불어제끼던 비바람이 그친 하늘엔  
시원한 바람결 사이로 북두칠성이 요원하고  
은하계 수많은 별들은 산장마당에 쏟아진다.
산장의 소란도 잠잠해질 무렵,
우리는 예약자의 취소가 있어서
취침소등이 되기 전에 다행히 좁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찍 드러누운 산꾼은 벌써 코골이가 요란하고
발냄새 땀냄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침상에
물에 절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 몸을 뉘인다.
정적뿐인 산장마당에는 아직도 스치는 바람소리만 요란하다.

-이틀째-일출
침상머리의 조그만 창에 새벽 여명이 스민다.
지난밤,
피곤한 몸으로 정신없이 한잠을 시들고 난 이후
시간은 다소 괴로웠다.
요란한 코곯이, 밤중에 군것질하며 부스럭거리고
동료끼리 하는 흰소리 말소리 등등.
공중도덕심이 결여된 몇몇 산꾼들의  한심한 작태도 목도했다.
그러나 밤은 가고 새날은 또 밝는다.
조용히 자리를  접고 일어나 산장마당으로 나선다.
05시10분경에,
뜻하지 않게 연하천산장에서 맑고 힘찬 일출을 감상한다.
멀리 천왕봉 방향,
亞高山帶 식물群이 우줄대는 산능에
대지의 어둠을 열어제끼며 태양이 솟아오른다.
일출은 어디서나 일어나는 극히 평범한 천문이지만
산행중에 맞이하는 데는
그 특별함이 더 하다.
07시, 참치찌개로 조반을 든든히 먹고 햇살이 퍼진  산장을 떠난다.
지리 7개 사암을 품고 북으로 뻗은 영원령, 삼정산이 갈리는 삼각고지도 지나고
운해와 신록이 한결 푸르른 형제봉도 지난다.

 



 



 




-벽소령산장,
연하천을 출발한 지 두시간만에 벽소령산장에 도착한다.
햇빛이 화창한 아침,
남으로 보이는 곳은 빗점골과 의신을 거쳐 흐르는 화개동천이고  
북으로는 광대골의 음정을 지나 마천에 이르는 골짜기,
세석에서 간밤을 보낸 산꾼들도 제각기 발길을 내딛는다.
지리십경 중 벽소명월을 머릿속으로 가늠하며
우리도 細石平原을 향해 출발한다.
친구가 제일 멋있는 구간이라며 즐거이 산행하는 그 능선길이다.
덕평봉 옆 선비샘의 유래도 읽어보며  
화창한 햇빛아래 오른 편 남쪽으로 펼쳐지는 산줄기도 조망한다.
작은 세개골과 큰 세개골이 합해져 대성골에 이르는
부챗살같은 골짜기
그리고 겹겹의 산마루-陵波.
칠선봉을 지나며 한결 가까워진 천왕봉을 조망하며
발 아래 펼쳐지는 얼레지 군락과 현호색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의 자태에 눈길을 준다.

 



 



 



 




-세석산장,
영신봉을 지나며 남부능선의 장쾌한 흐름을 본다.
능선을 따라 저멀리 삼신봉을 경계로
좌우에 자리잡은 청학동과 쌍계사를 눈으로 나마 가늠한다.
숨을 몰아쉬며 잠시 내달으니
남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지에  널려있는 잔돌(細石)이 자연스럽고
자그마한 구상나무군과 관목이 푸르게  깔린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잔돌고원-細石平田이다.
세석철쭉의 아름다운 만개는 어디로 가고
가지마다 몇 개 안 되는 봉오리는
아직 반도 아니되게 피고있다.
그 색깔 또한 물에 바랜 듯 옅은 분홍색이고 개체수 또한 적으니
고목이 되어 노년기에 접어든  ‘세석철쭉’의 현상인가.
이제 지리산 철쭉제는 바래봉에 그 역할을 넘기고
서러운 노년의  세석철쭉은 관심에서 사라지는가.
그 가운데 검은 구관조처럼 아담하게 자리잡은
세석산장이 있다.
때가 지나 허기진 배는 라면을 끓이고 식은 밥을 말아서 채우고
덱크에 기대선다.
촛대봉 능선을 넘고 거림골에서 불어오는 상승기류에 몸을 맡긴다.
나른한 휴식을 취한다.  
한신계곡을 거쳐 백무동에 이르는
북으로 난길에 눈길을 주며 촛대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청학연못,
촛대봉에 올라서서 세찬 남풍을 맞이하다
그 아래  로프로 둘러쳐진 금지선을 넘어선다 .
우리가 ‘몰래산꾼’이 되는 첫발은
청학연못을 답사하기 위해 촛대봉의 남쪽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되었다.
기암이 우뚝한 암릉지대에서
무거운 배낭을 벗어놓은 우리는
시골처녀 머릿결같은 고산잡초와
산마늘이 간간이 박힌 길을 따라 내려간다.
친구는 여지껏 보지못하던 세석고원의 진면목이 드러나 보인다고 감동설이다.

청학연못,
희미한 산길을 따라
선답자들의 답사후기를 머리에 두고 길을 찾았지만
얼굴을 할퀴는 잡목더미와 우거진 숲속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다시 돌아나와
경사진 너럭바위와 ‘깨진바위’를 깃점으로  다시 찾아나선 우리는
드디어 연못의 들머리에 진입한다.
저멀리 반야봉을 배경으로 경사바위 아래 연못이 있다.
세석고원의 물이 연두색 신록사이로 흘러들어
소리없이 숨어있는 연못은 적막하다.
주위의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신비롭고,
자그마하지만 잔잔한 물은 하늘도 담아낼 듯 의연하다.
경사진 바위를 돌아서 연못 아래쪽을 살펴보니
오래전 세석고원 아래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쌓아올린 인공의 흔적도 역력하다.

 



 



 



 




-연하봉,
청학연못을 답사하고 다시 촛대봉에 오르다가
암릉에 벗어놓은 배낭을 회수하여
서둘러 장터목산장으로 향한다.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에 오르는 산마루의 개활지에는
강풍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자생하는 식생을 살피건데 사시사철 부는 바람이 아닌가 싶다.
이윽고 이름도 아름다운 煙霞峰에 다다르니
삼삼오오 모여있는 산꾼들을 조우한다.

 



 



 




-장터목산장,
해가 잰 걸음으로 서산에 기울어 우리도 걸음을 빨리한다.
그 옛날 남과 북의 物産이 모여
물물교환의 장터가 섰던 잘록한 산허리 -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몰래산꾼이 되어
긴장속에 청학연못을 찾아 헤매기도 하였고
종주 이틀째 무거운 배낭에 눌린 몸이 피곤하다.
산장에 예약을 하지않은 우리는
빈자리가 나기만을 기대하며
더욱 차거워진 바람을 막기에 맞춤한 곳을 찾아
산꾼들의 소란속에서 저녁을 짓는다.
산장 저 아래에 위치한 식수는
용출양이 충분치 못하여 水栓 끝에서 질금거린다.
설익은 밥도 좋다.
무겁게 짊어지고 간 훈제오리를 굽고
와인을 반주로 하여 든든하게 저녁을 먹는다.
찬바람이 요란한 가운데 처마밑에서 비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다행이 숙소배정이 되어 취침소등 전에 자리를 찾아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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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일출,
03시 기상하여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배낭을 챙겨 나온다.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끓여 아침 요기를 하고
제석봉길로 올라서니
이미 일출을 보려는 산꾼들의 헤드렌턴 불빛으로
여기저기  야행성 동물의 眼光처럼  빛난다.
아직 남은 하현달빛을 받아
괴기스러이 서있는 제석봉 고사목을 흘려보며
우리는 어느덧 통천문을 지나고 있다.
정상을 향한 마지막 바윗길,  심한 강풍이 불어온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은신하기 맞춤한 바위마다 의지하고 앉아 일출을 기다린다.
그러나 三代積德이 부족해서인지
동녘에는 구름이 드리워져
멋진 일출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어느덧 구름 뒷편에 솟아오른 태양빛에 사위가  밝아지자
정상석은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심하게 부대낀다.




-중봉,하봉능선,
정상에서 간단한 기념사진으로 만족하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중봉 주변에는 세석고원에도 없던
진달래 꽃이 한창 피어나 그 빛을 자랑한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산꾼들에게 또 다른 이미지로 닥아선다는 말이 있는데
동감이다.
중봉을 내려서 하봉과 써리봉으로 갈리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몰래산꾼’이 된다.
하봉과 두류봉을 거치는 태극종주길,  
동부능선을 타고 달려 왕등재를 거쳐 밤머리재까지 갈 요량이었다.
하봉능선과 두류능선,
여지껏 보지못한 능선의 아름다움과 우리만의 호젓함,
고목으로 스러져 가는 철쭉,
그리고 주목과 구상나무가 어울려 있는 등
특이한 植生들이 맞아주는 아기자기한 능선길,
우리는 산행에 얽힌
산꾼들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험의지등을 얘기하며
길을 걷는다.
저멀리 오른편 능선 아래에는 치밭목산장의 지붕도 눈에 들어온다.
두류봉을 지나 쑥밭재 안부에 가까워지자
산죽이 더욱 울창하여 산행에 큰 장애를 준다.
근래에 이르러 未踏의 산길에는
오로지 바람소리와 꾀꼬리, 뻐꾸기등
아름다운 새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03시반경에 장터목에서 먹은 아침요기는 이미 고갈되어
시장하기 짝이 없는데 아직 갈길이 멀다.
1,300고지를 치고올라 11시경에 비로소 점심을 데워먹는다.

 



 



 



 




-오봉리 하산,
멀리 써리봉이 흘러내린 곳에 보이는
무재치기 폭포의 모습도 눈대중으로 건너다 보며
오른쪽으로 차고나간다.
이윽고 새재를 지나 외고개를 향해 가는 몰래산꾼은
울창한 산죽과 불분명한 산길속에서
앞에 보이는 능선과 봉우리만  넘으면 새재가 나오려니 생각하며
속고 속으며 넘기를 몇차례인지...,
앞으로 앞으로 치고나가다가
‘깜쪽같이 길을 잃고 만다.’
거기가 어디쯤인지 지금도 잘 모른다.
안부을 만나 직선으로 치고나가야 할 지점에서 망설이다가
좌로 내려서는 길의  나무에 달린,  
지금까지 보아오던  표지기를 따라 내려섰다.
이젠 머지않아 새재에 당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나는
큰 착오를 일으킨 것,
휴대한 물은 한 병도 못 남았고
산중의 해는 중천에서 서녘으로 기우는데
우리는 잘 못 들어선 길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뒷머리에 스멀스멀.....
다시 길을 찾아 새재를 지나고 외고개를 거쳐  
왕등재  900고지 연봉을 탄다는 것은
이 시간에는 무리다.
‘몰래산꾼’들은 최단거리 하산을 결정한다.
홍수가 난 골짜기와 잡목과 산죽이 어우러진 길을 따라
서로 격려하고 구령도 붙여가며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만난다.
이곳이 윗새재가 아닌가 추정하면서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다가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오봉리’라고 한다.

‘엥, 오봉리라고요?!’

능선 안부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길은
정북방향에 있는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골짜기인 것이다.
지리산 허풍도사로 불리는
‘성 아무개 선생’이 추천한
‘연인과 함께 숨어살기 좋은 곳’ 중에 하나인 오봉리,
결국 동부능선 밤머릿재까지의 산행은 포기했지만
사라져가는 옛길을 따라가다
이렇게 ‘깜쪽같이 길을 잃어’
생전 보지못한 금서면 오봉리골짜기를 보았으니
이 또한 덤이요,
양민학살추모관도 지나고 공개바위로 들어가는 들머리도 알아두었으니
이 또한 산행중에 우연이 얻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 ?
    슬기난 2011.06.10 07:42
    초보산꾼이라 하셨지만 지리능선 하나하나 짚어가며
    걸으신 종줏길이 막강 내공이 엿보입니다.
    인파에 밀려 요즘은 종주 생각도 잘안하지만 청솔지기님의
    수필같은 산행기 읽노라니 슬그머니 호연지기가 발동합니다^^*

    새봉 급경사 내려서서 잣나무 심어진 곳이 새재이고 좀더
    진행해서 나오는 전망트인 외고개,,그리고 좀더 진행하여
    오봉리방면으로 좌회전 한곳에서 우측으로 비스듬히 진행하면
    왕등재습지인데 아쉽게 계획한대로 진행을 못하셨군요!

    오랜만에 접하는 종주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 ?
    청솔지기 2011.06.16 20:41
    슬기난님의 조언 - '우측으로 비스듬히....' 부분이
    기억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
    선경 2011.06.17 08:22
    무릎아래로 얼레지꽃이 밭을 이루고
    푸르른 현호색의 아름다움과 석양빛이 내리우는 그지리산길의
    청솔지기님의 행복한 산행기에 빠져듭니다
    풍경도 자상하게 많이 보여주셔서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 ?
    허허바다 2011.06.18 11:03
    이젠 종주기를 읽으면 왜인지 아련한 느낌이 밀려듭니다.
    지나가 버린 청춘처럼요...
  • ?
    정진도 2011.06.19 13:19
    오랫만에 지리산 산행기 읽으니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한4년 제대, 취업, 적응 등으로 헤메었습니다.
    연하천 벽소령 세석 등 너무나 그립습니다 !
  • ?
    김종광 2011.06.29 17:15
    가슴이 터질것 같은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걸었던 산길을 생각하면서 반가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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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 지리산 묘향대 6 이게아닌데 2010.05.16 3426
1083 바래봉 연서 4 카오스 2010.05.16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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