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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지명이 종녀촌이었다.

피아골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피稷, 단풍, 그리고 종녀촌 즉 씨받이 마을이었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이지만 시대가 만들어낸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고려조 불교의 폐해를 익히 알고 있던 이성계는 고려의 잔재를 털어내고 조기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억불숭유 정책을 택했고,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한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대접 받던 유교 조선의 가부장 체제에서 가문의 대를 이어야하는 남아선호사상은 모든 여성에게 아들을 낳아야하는 의무가 지워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에게 성별을 선택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생산능력이 없는 여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성공적인 수태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의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으니 논리의 모순치고는 너무도 불합리한 부조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체 높은 양반 집안에서 며느리를 쫓아내는 것도 가문의 수치로 여겼던지라 또 다른 모순의 상쇄 논리로 등장한 것이 씨받이였다.

  



씨받이 기록은 많은 내용들이 구전과 설화로 내려오다 기록으로 이기되었지만 부조리의 역사였기에 음성적으로 이루어진 탓인지 종류별로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씨받이 대가로는 어느 기록은 벼 10가마 정도라 하고, 어느 기록은 벼 스무 섬 정도라 한다. 다만 아들을 낳았을 경우 옷감이나 논밭을 받는 경우와 3년간 다섯 섬씩 입마개 쌀, 다시 3년간 석 섬씩 쫓음쌀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딸을 낳았을 경우 처분이 혹독해 약속했던 대가가 반으로 줄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는 그 집안의 종으로 바쳐지는가 하면, 다시 종녀촌으로 데려와 종녀로 대물림 되기도 하였다. 또한 종녀촌에 몸담지 않았던 여성들은 무당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신들의 영역 책임을 힘없는 세계의 무지렁이 인간이 졌던 것이다.



씨받이 여성에 대한 자격은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는 가난한 과부나 천한 신분의 젊은 처녀들이었지만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관상과 신체를 갖추어야하고, 집안에 남아가 많아야 하며, 간질이나 돌연사 등 가족력이 없는 장수 집안이어야 했다.



합방도 구체적인데 합방 길일은 월경과 오행이 맞는 날을 택하였다. 즉 월경이 그치는 날부터 28∼29시가 지난 날 흰 면포로 월경피를 받아 그 색이 금빛일 때 잉태의 적기라 생각했으며, 반면 선홍빛일 경우에는 ‘미정(未精)’, 청담빛일 경우에는 ‘태과(太過)’라 하여 피했다.

택일이 정해지면 여인은 소복재계하고 삼신에게 빈 다음 신방에 든다. 이때 본부인의 정성이 중요하다고 여겨 합방의 장지문 밖에 지켜 앉아 기도하거나, 씨받이 삼계(三戒)를 감시하기도 하였다. 삼계란 씨받이 여인은 얼굴에 명주 수건을 덮어야 하고, 합궁 도중에 남편과 말을 섞어서는 않되며, 교태를 부리거나 숨소리를 거칠게 내도 않되었다. 한편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교시에 피부가 보랏빛을 띠고, 입술이 진홍색에서 자주색으로 변하면서 입술이 굳어지는 여인은 곱절의 보수를 받기도 하였다.



수태가 되면 여인은 별당이나 산지기 집에서 열달 동안 유폐생활을 하기도하고, 비밀리에 합방한 경우에는 남에게 들키지 않고 본인의 자식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본처와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한다.

  



그런데 피아골 종녀촌은 여느 씨받이 설화와는 상당히 다른 “성신어머니와 시동”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씨받이 후 애초에 정한 댓가를 받지 못하거나 보자기에 싸서 버려지는 불합리한 행태들에 대하여 그들만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직업적 성격의 대리모 역할까지는 비슷하다.

그런데 그 들만의 공간에서 무한한 생산능력을 기원한다는 기원제를 여는 대목이 나온다. 거대한 성신상과 남근을 새긴 제단에서 성신어머니는 시동들과 육체적 향연을 즐긴다. 동시대 남성에 비해 자유롭지 못했던, 아니 어찌 보면 금기시 되었다 싶은 여성 성 편력의 전설은 가히 충격적이다. 종녀들에게는 인내와 체념을 강요하며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동들과 불태웠던 성의 축제, 내 자신의 완성이 아닌 남을 위한 생산의 기원은 잔인하리만치 고통스런 축제였을 것이다. 마치 아마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인국에서 새로운 전사를 얻기 위한 생산의 성 축제가 연상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종녀란 시대가 만들어낸 가부장제의 부조리와 사회적 규범의 겹쳐지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일종의 함정이며, 합리적 모순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돌파구였다.



현실에서는 실제 어미가 누구였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그렇게 역사가 기억하고 있는 한 아이는 한 집안의 대를 이을 건전한 남아로 환영받고 사회가 만든 제도의 적자로 등재되었다. 스스로 조합한 제도의 함정에 기꺼이 함몰됨으로서 그 제도는 더욱 확고해진다. 그 뿐이랴 스스로 감내하지 못할 불가능의 영역을 신의 능력을 빌리지 않고도 정도에서 벗어난 사회적 일탈의 방식을 포섭하여 제도권에 삽입시킨다. 지혜라 말하기엔 불합리하지만 제도가 만들어놓은 사회적병폐의 허상을 삶의 영역 안에서 존재케한 무가치의 반란이다.



  

내 머릿속 혼란의 주범이었던 이 종녀촌이 그 긴 여정에도 씨앗을 뿌리지 않고 움켜쥐고 있던 어느날 불무장등을 하산하다가 판정골로 들어서면서 나를 놓아주었다. 입구로 치자면 금류동암에서 나눠지는 조그만 지계곡에 불과하여 사람하나 지나갈 만한 산길이 전부일 것 같던 골짜기를 차고 올라서면 어느 순간에 옴팡진 터가 나타나고 사람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세월의 흔적 앞에 물길에 휩쓸렸거나 허물어진 석축들 사이로 제법 너른 터가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다. 흔적을 보아도 절터는 아닌 듯하고, 터의 규모로만 보면 주식만 조달할 방법이 있다면 이웃할 사촌이라도 같이 호구지책 할 수 있는 터였다. 지형적으로도 불무장능에서 양 가지가 흘러내려 금류동암 앞에서 모아 감싸고 있고, 그 중심부 배꼽 아랫부분에 인가 터가 형성되어 있어 음양으로 따지자면 음수동에 해당하는 지형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종녀촌이 떠오른 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산행 취향과 황망했던 그 날의 분위기였지만, 좌우가 막혀 음습한 듯하면서도, 전면은 시야가 트여 골이 훤하게 내려다보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끝이 너무 가까워 시선이 오래 머물지도 못하는... 집도 아니고 절도 아닌 이름 없는 흔적 위에 또 다른 흔적으로 자리 잡은 영혼들이 혹여 골을 타고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빌려 한숨울 쉬고 있지나 않은지, 애닯게 흐르는 저 개울물 소리를 핑계 삼아 나에게 하소연이나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아골의 ‘피’는 ‘피’稷 가 아니라 ‘피’血아니었을까?



무지렁이 삶을 살았어도 인륜이란 애초부터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구겨진 삶도 억울한데 애초부터 끊어야 했던 부조리의 삶이 내게는 왜 애초부터 멍에로 씌워졌는지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로 살았던 사람들.그들에게도 피血는 흐르고 있었다. 인간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지 못했어도 인간의 피는 흐르고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참고자료 : 두산백과

                    마음을 깨우는 대화(윤종헌)

                    지리산 산책(최화수)

  

  

※ 본 글은 본인의 느낌을 근거로 작성된 산행기로 역사적 고증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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