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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흔아홉 골짜기를 찾아다니면서 제대로 된 이름 한 자라도 알고 들어간다는 것은 학교 다닐 때 예습을 하고 수업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이 곳을 처음 찾았을 때가 솔봉골이라는 이름을 알았을 때였고, 그 후 구전으로 흘려들은 지명이 평대골, 판둑골, 판독골이었다. 솔봉골은 정상부 솔봉에서 연유하였을 터였고, ‘평’이나 ‘판’ 같은 단어는 골짜기에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터가 있다는 의미이다.



도투마리골이라는 이름을 알았을 때는 이미 세 번의 골짜기를 더듬은 후였다. 그 해 피아골의 혼잡한 단풍객을 피하여 금주폭포 상부의 이른 단풍이라도 보고 오려고 찾았던 때가 초가을 이었다. 당시 가을 가뭄이 심해서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가을 잎사귀가 고사하여 조락한 낙엽들이 계곡 암반을 뒤덮었고, 물소리마저 애잔하여 쓸쓸함이 한층 더했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이 골짝을 서둘러 다시 찾게 된 동기는 순전히 “도투마리”라는 이름에 끌려서 였다. 지리산의 골짜기 이름중 이처럼 한국적이고 정감 나는 이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을 듯한, 그래서 한동안은 그 생각 속에 푹 빠져 있을 듯한 묘한 감정이 일었던 것이다.



내가 산을 오르는 동기부여 중 느낌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저 지리산 곁가지에 기댄 어느 지계곡 하나 오르는 마음과 뇌리에 새겨진 이름 하나가 부추기는 산행은 시작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 후로 세 번을 더 찾았는데도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물론 나의 게으른 탓도 있었지만, 네 번째 산행에서 제목을 정해 놓은 지 삼년이 지났는데도 머릿속에서 제목만이 맴돌뿐 어딘지 가슴이 휑해서 글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현상이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눈으로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내 감정의 껍데기를 깨뜨릴 만한 뭔가가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홉 번 주변을 맴 돌았다.



  

도투마리골은 직전마을 버스종점 앞에서 피아골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간 우측 지계곡이다(산수식당). 초입은 콘크리트 포장도로지만 곧 산길이 시작된다. 계곡을 그냥 걸어도 되지만 마을 식수원이어서 우측으로 양호하게 이어진 산길을 따르는 게 좋다. 계곡은 생각보다 유순하고 운치가 있어 숲을 걸으면서도 청량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평이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화전터를 지나면 삼일암터 갈림길이 나오고 머지않아 계곡에 너른 반석을 만나는데 예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본격적인 도투마리골 선경이 시작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일만한 작은 폭포와 담이 반갑게 맞이하고, 금류동암 터가 있는 판정골 합수부를 만나면 전면에 커다란 폭포 하나가 앞을 막는다. 바로 금주폭포다. 최근 우담愚潭 정시한선생의 산중일기(1686년)를 근거로 한 주변 일곱 암자 터를 찾으면서 금류폭포, 금류동폭포라고도 불리는 지리산 지계곡에서 몇 안되는 이름있는 폭포이다.









금주폭포,  허공을 가르는 힘찬 비상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처음 이 골짜기를 들어왔던 이유가 이 폭포가 있다는 것이었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이 폭포 주변의 풍광 때문이었다. 어느 솜씨 좋은 화공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절벽과 폭포가 조화를 이루어 뒷 배경은 어떠한 상상력으로 꿰맞춰도 어울릴만한 경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터만 덩그러이 놓여 있는 금류동암의 풍경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시 한 수 절로 읊어지는 그런 곳이다. 우담선생이 그 많은 암자중 이곳에서 약 3개월(윤4월19일-7월12일)을 이곳에 머문 이유가 상상이 된다.



지리산에 든 우담선생은 아침식사 후 칠불암에서 출발해 금강대, 오향대를 지나 저녁 무렵 금류동암에 도착하여 첫 대면한 금주폭포에 대한 느낌이 어느 정도 가슴에 와 닿았는지 그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윤 4월19일. 흐리다가 밤에 비가 내렸다.(중략)

골짜기가 깊고 폭포수가 세차게 흐르니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암자가 정교하고 유벽한 것이 심하여 왕래하는 유람객과 승려가 드물었다. 실로 바라던 곳이어서 그대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계획을 세웠다.

  



윤 4월26일 아침에 비가 내릴 듯하였다. 흐리고 가끔 맑았다.(중략)

날이 갈수록 마음이 더욱 차분해지고 기운도 날이 갈수록 더욱 편해졌다. 거처하는 곳이 조용해서 오른쪽에는 폭포를 구경할만한 반석이 있고 왼쪽에는 도류(道流)를 말할만한 사찰이 있고 또 일과로 삼을 일이 있으니, 여기에서 몇 년 동안 머물면서 날마다 이렇게 한다면 사물밖에 해맑은 복이라 할 수 있겠으며, 혼탁한 마음을 말끔히 씻어 버리는 소망이 있을 것인데, 하늘이 과연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지 모르겠다.」

  



당파싸움에 관직을 벋어 던지고 세상을 유람하던 그가 바라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늘이 그 소원을 이루어줄 곳으로 생각했던 신세계가 바로 그곳이었다.



금주폭포를 지나면 계곡은 너른 반석과 아기자기한 폭포, 소와 담이 연이어 있어 유유자적 신선놀음이라도 하며 걷고 싶은 길이 이어진다. 이런 길(사실은 계곡)은 이 계곡의 실질적인 마지막 폭포격인 협곡 우측 바위사면을 지나 신선대골 합수부를 만나면 끝이 난다.







실질적인 마지막 폭포격인 무명폭. 우측 사면으로 올라선다





우측 신선대골은 초반에만 너덜겅의 경사가 조금 있을 뿐 짧은 계곡이어서 곧 물이 마르고 불무장등 능선과 만나는데 불무장등 오르기 전 급경사가 막 시작되는 지점이다. 도투마리골 본류라 할 수 있는 좌측골은 얼마간 조그만 폭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리 길지 않고 솔봉이 보이는 지점부터 너덜겅이 시작된다. 위치상으로는 불무장등과 솔봉 안부 헬리포트로 바로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지만 선답자가 그랬듯이 잡목이 뒤엉켜 직접 올라서지는 못한다. 그나마 있는 인적은 너덜겅을 따라 우측으로 빙 돌아 불무장등 바로 옆으로 올라서게 되어있다.



불무장등에서는 삼도봉 방향으로 해서 지리주능에 붙을 수도 있고, 불무장등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판정골로 해서 금주폭포로 내려오거나, 통꼭봉 우회길(목통골 칠부능선)을 따라 당재로 내려설 수 있다. 솔봉 방향으로는 무착대에서 구계포계곡으로 해서 피아골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고, 전망좋은 능선길을 따라 직전마을로 원점 회귀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도투마리골이란 지명을 알았을 때 그 어원이 궁금했었다. 도투마리란 베를 짤 때 날실을 감는 틀을 말한다. 그 모양이 장구모양의 판대기로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쪽이 넓어 잘록이 부분에 날실을 감아놓는 기구이다. 그런 모양을 상상하며 이 계곡을 바라보면 도무지 그 의미를 알아 낼 방도가 없다.



어느 기록엔 불무장등 아래 도투마리골에 베틀마을이 있었다는 내용이 보이기도 하지만 오기로 보인다. 가능해 보이지도 않지만 베틀은 고사하고 주재료인 모시나 삼, 면화를 심을만한 터도 없다. 물론 지명이라는 것이 지형의 형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 필요에 의하여 작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토속적인 명칭의 대부분은 민초들의 삶의 형태나 방편, 전설, 유명인의 거처, 풍수상지세, 심지어 그 산 속에 심어져있는 유실수나 괴목 등에서도 자연스레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도투마리란 관념이 아닌 형상을 가지고 있는 물건의 일종이어서 눈으로 보이는 무언가와 연관되어 만들어진 지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형도를 들여다보면서 번뜩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도투마리골을 잉태하는 정상부가 불무장등과 솔봉으로 두 봉우리를 씨줄로 연결하고 있고, 그 능선 잘록이(현 헬리포트가 있는 표고막터)에서 도투마리골이 날줄로 직전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비대칭이긴 하지만 내 눈엔 불무장등과 솔봉, 그리고 두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이 우연치고는 현실감이 너무 생생한 영락없는 도투마리 형상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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