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산행기>지리산산행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연재11>
제3장 마음보다 먼저 길들여지는 몸
제2절 먼 길 찾아온 스님의 제언, 하루 정도 입을 닫아보라
 

위태 마을에 도착했다. 굳이 벽송사를 들를 필요가 없다고 충고하셨던
양재삼 선배의 고향 마을이다. 대부분의 경우 재를 넘어서면 탁 트인 평
지에 양지바른 언덕 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평지는 경작하고 언
덕에 모여 산다. 거의 예외가 없다. 또 시선을 확 사로잡는 범상치 않은
집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소위 귀농한 사람들의 전원주택이다. 그런
데 대부분 토박이들이 운영하는 민박에서 들은 그들에 대한 평가는 그
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한결같은 지적은 지역 주민들과의 조화(調和)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가 들렀던 어느 민박집은 드물게 외지인이 이주
해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는 처음 그 마을로 이주했을 때 텃세가 심
해 마음고생이 아주 심했다고 하니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 싶다.
 

“이제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한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요?”
“맞은편 언덕이 보입니까? 크게 쓰여 있는데요.”
고개를 들어 휘 한 바퀴 돌리니 저 멀리 보인다. 민박! 멀다. 족히
3~400 m는 되지 싶은데 이 정도 거리에서 확실하게 읽을 수 있으면 도
대체 저 글자는 얼마나 큰가?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니 대형 컨테이너
한 개에 한 글자씩 쓰여 있었다. 그런데 저 곳까지 걸어가면 내일은?

 

“둘레길에서 벗어납니까?”
“아니오. 바로 집 앞이 길입니다.” 아싸! 이제 빨간 화살표를 따라 걷는
일은 대한민국 동급 최강이지만 그래도 아직 더 걷는 부담은 싫다. 어제
머물렀던 집도 구간 종점에서 1km는 더 걸어갔다. 그 집도 노선에서 겨
우 30여 m 정도 벗어나 있어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마쳤다고 생각한 이
후에 더 걷는 것은 참 부담스럽다. 원초적인 심리이지 싶다. 이 민박은
성심원이나 탑동 민박처럼 바로 노선상에 있으니 그런 점에서 입지 조
건은 최고다. 가탄을 출발해 송정 종점에서 경로를 벗어나 근 1km 이상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어야 했던 그 민박은 최악이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다시 고갯마루를 반쯤 올라 도착하니 범상치 않은 덩치와 인
상의 흰 진돗개가 우리를 맞는다. 모습은 거의 동네 조폭 수준이다. 얼
굴 이곳저곳 흉터가 많다. 개를 싫어하지 않는데 이런 인상은 처음이다.
이후 이 녀석과 어떤 인연으로 묶일지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여하
튼 인상에 비해 태도는 아주 공손하다. 처음 만나서부터 다음 날 헤어질
때까지 만 24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짖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추적추적 비는 그치지 않고, 젖은 신발이 문제다. 특히 L의 신발은 거의
방수가 되지 않는 신발이라 화목(火木)보일러 옆자리에 곱게 모셔 말리
기로 했다. 방은 두 개. 고르라는데 큰 방은 메주냄새가 아주 심하다. 결
국 넓이보다는 향기를 선택하고 재빨리 세탁기를 돌린다. 젖은 옷은 부
담이 크다. 아직 기온이 그리 높지 않지만 밀폐된 배낭에 젖은 옷가지를
넣고 다니면 쉽게 부패(?)하기 때문이다. 가건물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
로 씻고 나니 몸은 금세 데워지고 아주 뽀송뽀송한 것이 상쾌하다. 그런
데 한 가지 어색한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변기가 아니다.
소위 쪼그려 쏴! 다리에 웬만큼 근육은 붙었으나 여전히 쪼그려 앉아 일
을 보는 것은 힘들다. 마지막 날 실상사 해우소에서 잔여물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잠깐 들렀던 것을 제외하고는 유일했다. 누군가 그랬다. 지
금 이 나라는 짚이나 호박잎을 사용했던 세대부터 비데를 사용하는 세
대까지 공존한다고. 인류 역사상 이런 속도로 변화한 민족은 없었다고.
그래서 세대차가 크고 또 어쩌면 한순간 호박잎으로 돌아갈 위험도 내
포하고 있다고.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날 저녁 두 번째 위문단이 방문했다. 강원도 산사를 지키는 스님! 고
교 5년 후배 지휴 법타(之休 法陀) 스님이다.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만나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지금의 이 백수 생활이 결정되었
던 1월 말 스님이 책임을 맡고 있는 강릉의 사찰에서 이틀 밤을 머물며
인근의 눈 덮인 칠성산도 오르고 귀로에는 태백산도 들렀다. 나로서는
어쩌면 지금 이 여행의 연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내 처지가 계속
신경이 쓰였는지 자주 근황을 묻길래 이번 여행을 알렸고 일정이 맞으
면 하루라도 같이 걷고 싶다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남해를 거쳐 김해
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 공양이라도 같이 하겠단다. 미리 운은 떼 두었
지만 두 친구는 상당히 의아해한다. 아무리 고등학교 후배라지만 스님
이 그것도 강원도 강릉에서 경남 하동까지 와서 밥을 사겠다고! 중생제
도(衆生濟度)가 출가자의 첫 번째 임무이긴 하지만 이 먼 길을 달려오게
하는 건 분명 민폐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스님의 제안.
“하루 정도는 입을 닫아보십시오. 아마 3천배보다 조금 더 힘들지도 모
릅니다.”
지난 1월 산사를 찾았을 때 동행이 있었는데 고교 1년 후배 김현겸이다.
스님과도 구면이고 고교 시절 불교 학생회를 다닌 경력이 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 산도 거의 다람쥐처럼 타는 친구다. 그때 산사 방문 목적
중 하나가 3천배였다. 둘째 날 아침 호기롭게 법당으로 가 좌복을 펼치
고 시작했는데 나는 108배 2번에 포기하고 말았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
려고 잠깐 좌선에 들었으나 영 마음마저 산란해 법당을 떠났는데 이 친
구는 거뜬히 1000배를 하고 나타났었다. 이번 여행 준비 과정도 이 후
배의 도움이 컸지만 끝내 합류하지 못해 아주 유감스럽다. 세 명 모두
흔쾌히 그 제안을 수용, 마칠 때까지 번갈아 가며 하루쯤 입을 닫았다.
어차피 이 길은 자기를 돌아보러 나선 길이었으니. 나를 돌아보는 일에
도 도반(道伴)이나 선현(先賢)들의 충고는 큰 보탬이 된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D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한 정통파 스님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스님들은 근무처가 대부분 산에 있으니 승과(僧科) 교양
필수 과목으로 등산이 있지 않느냐고. 그래서 실은 동행한다면 발걸음
을 따라잡기 힘들겠다고 속으로는 걱정도 했었다. 그랬더니 큰 사찰에
서는 산불을 끄러 뛰어다닐 수 있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축구나 족구를
자주 한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달마야 놀자’라는 영화에서 본 조폭과
스님들의 축구 시합 장면이 떠올랐다. 웬만한 팀에게 지지는 않는단다.
영화에서도 스님팀이 이겼지 싶다.

https://www.facebook.com/baggsu/posts/1903785106516042

  • ?
    청솔지기 2017.01.16 09:55
    둘레길 걸음을 따라가며 의미깊게 묘사된 글,
    잘 읽고있습니다.
    사진도 첨부하시면 더욱 읽는 재미가 클거 같습니다.

  1. 지리산 산행기, 느낌글, 답사글을 올려주세요.

    Date2002.05.22 By운영자 Reply0 Views10004
    read more
  2. 지리 주능을 바라보며...

    Date2021.12.18 By청솔지기 Reply3 Views2960 file
    Read More
  3. 노고단

    Date2020.08.06 By청솔지기 Reply3 Views3121 file
    Read More
  4. 연인산 - 지리산

    Date2019.11.29 By오해봉 Reply4 Views4559 file
    Read More
  5. 지리산 능선 찾기 산행 - 초암능선

    Date2018.11.13 By슬기난 Reply5 Views4073 file
    Read More
  6. 구룡계곡

    Date2018.08.30 By청솔지기 Reply1 Views3186 file
    Read More
  7. 한신계곡

    Date2018.05.27 By청솔지기 Reply2 Views2543 file
    Read More
  8. 천왕봉

    Date2018.02.02 By오해봉 Reply2 Views4117 file
    Read More
  9. 지리산둘레길 걷기 ( 제10구간 ) (위태마을~하동호수 ) (11.2km/3시간 20분 )

    Date2017.07.03 By청솔지기 Reply0 Views2770
    Read More
  10.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9절_마지막2

    Date2017.03.31 By나그네 Reply0 Views2191
    Read More
  11.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8절_마지막

    Date2017.03.21 By나그네 Reply1 Views2071
    Read More
  12.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7절

    Date2017.03.13 By나그네 Reply0 Views2000
    Read More
  13.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종주기)_제3장 제6절

    Date2017.03.03 By나그네 Reply0 Views1952
    Read More
  14.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종주기)_제3장 제5절

    Date2017.02.16 By나그네 Reply0 Views1845
    Read More
  15.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4절

    Date2017.02.10 By나그네 Reply0 Views1814
    Read More
  16.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3절

    Date2017.02.06 By나그네 Reply0 Views1869
    Read More
  17.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1절

    Date2017.01.19 By나그네 Reply0 Views1841
    Read More
  18.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3장 제2절

    Date2017.01.15 By나그네 Reply1 Views1848 file
    Read More
  19.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 _ 백수5계명

    Date2016.12.31 By나그네 Reply0 Views1856
    Read More
  20.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2장 제6절

    Date2016.12.22 By나그네 Reply0 Views1949
    Read More
  21. 백수라서 다행이다(둘레길 종주기)_제2장 제5절

    Date2016.12.13 By나그네 Reply2 Views1888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9 Next
/ 5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