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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한 치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길의 텃세
제5절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산길의 중력

 

3월 12일(목, 3일 차) 성심원 - 운리
「숲길」 홈페이지에는 지리산 둘레길 22개 구간을 난이도에 따라 상, 중,
하로 구분하고 있다. 몇 개 구간은 동과 서, 방향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경우까지 있다. 그만큼 세심하게 평가했다는 뜻인데. 각 구간의 표고 차
나 등고, 거리, 소요 시간만을 기준으로 상상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구간도 있지만 다녀 보면 왜 그 등급을 부여했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된
다. 그러니 존중하시라. 절대 무시하지 마시라. 그런데 마음 같아서는 3
단계가 아니라 국립공원 탐방로처럼 5단계 정도로 세분한다면 좋겠다.
지나온 수철 - 성심원구간의 난이도가 「하」이고 그 이전 두 구간은 난이
도 「중」이니 오늘은 처음 경험하는 난이도 「상」구간이다. 13km, 예상 소
요 시간 5시간, 표고 차 700m, 등고는 1,004m이다. 산술적으로 평균
속도 2.5km/h면 이건 그리 난이도가 높은 등산 코스가 아니다. 그래서
어제 숙소 근무자에게 그 거만을 떨었던 거다. 허나 실상은 분명히 「상」
이었고 5단계로 분류하더라도 최고 등급에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수
치상 아니 기억을 더듬어도 이후 걷게 되는 대축 - 원부춘 - 가탄 – 송
정 구간, 특히 형제봉을 넘어가는 대축 - 원부춘 구간도 못지 않게 힘들
었지만 비단 이 구간에 대한 인상이 강한 것은 처음 경험하는 아니 예상
을 벗어나는 의외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근무자가 신신당부한 대로 아침 식사 시간을 정확히 지켜 식사를 한 후
지원센터 근무자의 손을 빌려 출발 사진을 찍고 나선다. - 우리의 루틴
(routine)은 출발 사진, 도착 사진, 도착지 마을에 들어서면 민박집에
전화하기 정도였다. 전 일정 중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찍은 사진은 이 사
진을 포함하여 몇 장 되지 않는다. 대부분 셀카봉을 이용하거나 그것도
힘든 경우에는 번갈아 가며 찍었다. - 곰곰이 생각하니 근무자가 아침
식사 시간을 꼭 지키라고 그렇게 당부한 이유는 아마 이곳의 주인들인
한센병 환자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외부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괴로운 현실이다.

 

행장을 챙겨 아마 이 곳에서 숨을 거두신 분들을 위한 장소로 보이는 화
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모습의 납골묘를 지나 성심원 정문 방향으로 향
하는데 외부에서 일을 하러 오신 듯한 인부 한 분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
는다. 산청 방향으로 둘레길 걷는다 하니 돌아가라 하신다. 그때까지만
해도 둘레길의 루트가 성심원을 가로지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
했다. 고정관념! 이런 모습은 몇몇 곳, 특히 마지막 금계로 들어서는 구
간에서 농장주가 길을 막아 아주 먼 길을 우회해야 하는 것과 좋은 대조
를 보인다. 멀리 타인의 나라에 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스페인 신부
님의 마음 씀씀이에 비하면 누구든 내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도 좋다는
아량 정도는 배워 좀 더 너그러운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바로 뒷
산으로 간다. 이름하여 웅석산(熊石山)! 완만한 언덕길을 한 시간 남짓
걷다가 콸콸 흐르는 개울을 건너는 순간 행복은 끝났다. 826m 고지를
통과해야 한다. 하도 경사가 심해 잠시 쉴 때는 배낭의 무게 때문에 뒤
로 넘어질까 봐 산등성이 쪽으로 돌아서서 허리를 펴야 할 정도였다. J
가 중얼거린다.

 

“네 발로 걷는 짐승이 부럽네.”– 그렇지 오프로드(off road)는 4륜 구
동으로 가야지! 지네는 직벽도 오른다.

 

1년에 50회 이상 산을 가고,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산은 모두 섭렵했고
본격적으로 산을 다닌 지 10년이 넘지만 이런 길은 처음이다. 중산리에
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구간이 얼추 이 수준인데 그
래 봤자 고작 100m를 넘지 않는다. 보통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산등성
이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을 보고 대충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하는데
도대체 이 산은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은 항상 머리 위에만 있었다.

 

이 산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몇몇 지역 등산 마니아들의 한결같은
반응,
“미쳤다. 그 산을 돌아간 것이 아니라 넘어 갔다고? 둘레길이 아니야!”
지리산 둘레길은 ‘둘러 보면서 가는 길’이 아니다.

 

전체 기록을 위해 사용한 앱은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꼼꼼히 남긴다. 수
일 동안 앱의 화면을 그대로 밴드나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동행들의 책
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조작도 거짓말도 못하고 난리 났다.”
고도선, 총 소요 시간, 거리, 휴식 시간, 경유지 지도까지 다 드러나는데
데이터는 절대 조작할 수 없다. 이 앱의 기능 중 하나는 전체 구간을
500m부터 1km, 2km, 5km까지로 나누어 각 구간의 소요 시간과 평균
속도, 경사도를 나누어 보여주는 데 구간의 기록 중 2km지점에서
3km지점 사이의 경사도(이동 거리 대비 고도 상승분, 즉 1km를 걸어
고도가 500m 높아지면 500/1,000=50퍼센트이다.)는 물경 59%, 각도
로 환산하면 30도가 조금 넘는다. 이 정도면 인간이 보조장치 없이 오를
수 있는 거의 한계치다.

 

그런데 이 구간에 대한 홈페이지의 표현은 “이 구간은 웅석봉 턱밑인
800m고지까지 올라가야 하는 다소 힘든 오르막과…”정도다. 공식적으
로 제안한다. 당신 언제 나랑 같이 한 번 걸어 올라갑시다. 그러고도 이
‘다소 힘든’이라는 표현 바꿀 생각이 없으면 평생 형으로 모시겠소. 혹시
독자들 대전통영간 고속 도로를 달릴 기회가 있으면 상행 기준 단성 IC
를 지나 좌측 언덕바지에 있는 수 개의 흰 건물이 보이는 성심원과 그 뒤
에 맞붙어 있는 이 산, 웅석산을 한 번씩 꼭 쳐다봐 주시라! 그리고 2015
년 3월 초 50대 초반의 세 남자가 저 산을 죽을 고생을 하며 올랐다는 사
실을 기억해 달라. 다녀와서 이 산에 대해 조사해 보니 “산세가 하도 가
팔라 곰이 떨어져 죽었다 해서…”라는 설명이 있다. 곰은 분명 네 발 짐
승이다.

 

죽을 고생을 하고 겨우 정상부에 오르니 황망하다. 급경사를 마다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보상은 뭐니 뭐니 해도 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탁
트인 조망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이 웅석산 정상(엄밀하게 이야기하면 833m 높이의 헬기장이지만)이
건네는 선물은 고작 막힌 시야와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 이 구간 못지
않게 힘들었던 하동 형제봉 구간을 비롯해 수 개의 등성이가 모두 비슷
하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올라 거의 절명할 순간에 등성이에 도달하면
아주 잘 포장된 임도가 마치 화장이 다 지워진 삐에로처럼 버티고 서 있
다. 참 황망하기 짝이 없다.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자들은
이런 구간을 일러 PUD(Pointless Up and Down)라 한단다. 우리 말로
하면 ‘쓸데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 정도?

 

https://www.facebook.com/baggsu/posts/1883509415210278에 접속하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
    청솔지기 2016.12.13 18:13
    쉽게 생각하고 그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
    저도 고생 좀 했습니다.
  • profile
    나그네 2016.12.14 08:46
    현재까지 만난 최고수준이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내려오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특히 조금이라도 바닥이 언 겨울이면 걸어 내려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싶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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