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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마음보다 먼저 길들여지는 몸

제6절 필사의 방책,1g과의 전쟁

 

오늘은 제대로 된 만찬이 대기 중이다. 진해에서 근무하던 6년 동안 이

런저런 일로 안면이 굳은 용원 시장에서 난전 - 난전인 것은 분명하지

만 고정식 가게를 포함하여 시장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

니 결코 영세하다는 뜻은 아니다 - 을 하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와 연락

이 닿았고 그는 힘든 일 하는데 방법이 있으면 해산물을 좀 보내겠다 했

다. 혹시라도 민박을 미리 여유 있게 정해 두면 택배로 보내겠다고. 마

침 여행 전날 L에게 마산에서 함양까지 차량 편을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부도를 낸 친구 최인주가 위문 차 오겠다니 그 편에 보내라 부탁했다.

 

오늘 잠자리는 인주의 외숙부께서 운영하시는 펜션이다. 청학동 아래

묵계라는 마을에 있는데 종착지 삼화실에서 차로 20여 km 떨어진 곳이

다. 작년 5월 초 연휴 때 그 펜션 바로 아래 하천 모래밭에서 오늘 방문

할 최인주, 진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첫날 발대식 참가자 유순필, 그

리고 동행 중인 L과 함께 텐트를 치고 하루 야영을 한 적이 있다. 창원에

서 차를 몰고 온 친구가 종점인 삼화실로 일행을 태우러 왔다. 만나는

순간 닷새 동안 거지 생활을 한 우리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웬 개들

이냐고. 여차여차 하다니 안 믿는다. 그래, 나라도 믿기는 어렵겠다만

사실이다. 여행자 셋, 위문 온 친구, 개 동지 세 마리. 도합 일곱이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진다. 계속 걱정이다. 저 녀석들이 잘 돌아갈지. 안내

소 근무자도 걱정 말라고는 했다. 보통 여행자가 버스를 타고 떠나면 바

로 돌아간다고.

 

좁은 길을 조금 지나 왕복 4차선 국도에 들어서니 차가 속도를 낸다. 순

간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없는 차

멀미다. 지난 닷새 동안 평균 시속 3~4km에 적응한 신경회로가 갑자

기 10배나 빠른 40~50km를 접하니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나는 그렇

게 대도시 현대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렇게 긴

시간을 아무 것도 타지 않고 지낸 적이 있을까? 군훈련소 생활 3~4개

월 이후 거의 30 여 년만이다. 하지만 원래 길짐승인 인간이 느린 속도

에 적응하는 과정은 별문제 없이 아주 빨리 끝났음에 반해 빠른 속도로

의 재적응은 이렇게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인간은 인간 본래의 모습,

원래 그 환경이 더 편한 모양이다. 수백만 년 살아온, 축적된 DNA가 그

렇게 기억하고 있다.

 

새조개: 이른 봄에서부터 4월 중순까지 먹을 수 있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풍미로 패류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보통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샤부샤부로 먹는다. 금년은 유난히 잡히지 않아

단가가 아주 비싸다 했다. 마리당 2천원

미더덕: 멍게랑 맛이 아주 비슷하지만 향이 훨씬 강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창원 진동면에서만

키울 수 있다. 비슷한 맛이 나는 다른 생김새의 오만둥이와는 비교가 안되고 통상 4월초가

절정이다. 보통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데 싱싱한 것을 생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키조개: 곡류의 뉘를 골라내는 도구로 쓰이는 키를 닮아서 붙은 이름인데 관자가 아주 크고

탄탄한 식감이 가리비에 뒤지지 않는다. 역시 샤부샤부로 먹거나 구워 먹는다.

 

그리고 해삼, 멍게, 굴과 자연산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 이상이 얼굴 없

는 후원자가 보내온 위문품 목록인데 순례자 3명, 창원에서 온 친구 부

부 그리고 내일 우리에게 한우를 대접할 진주에서 온 유순필. 이렇게 6

명이 도저히 다 먹을 자신이 없어 상당량을 펜션의 주인이신 인주의 외

숙모님께 덜어 드렸다. 해조류는 박스를 열지도 못했으니 무엇이 얼마

나 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여기에 인주가 준비한 통상 이시가리라 불리

는 최고급 어종 돌도다리와 참숭어회.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여행 5일째인 토요일을 만근(滿勤)하고 늦도록 소주 병을 넘어뜨린 고

등학교 동기 다섯은 밤새 코골기 경연 대회를 열었다.

 

그날 우리는 아주 특별한 작업을 했다. 이름하여 1g 줄이기. 이런 장기

도보 여행은 처음이고 또 환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으니 무엇을 챙

겨야 할지 아주 난감한 문제였다. 백두산맥을 혼자 걸었던 남난희는 칫

솔 자루도 잘랐다 하지 않던가? J와 나는 무료한(?) 저녁 시간을 해결하

기 위해 책도 한 권씩 준비했다. L은 처음부터 이 대목을 아주 가소롭게

생각했던 현자(賢者)다. 비누는 가장 열악한 환경인 성심원 게스트하우

스에도 있었다. 여하튼 빨래는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여벌 옷은 하나씩

만 남겼다. 기타 개인용 물컵에 화장품, 따뜻한 커피를 마시겠다고 호사

스런 욕심에 준비한 보온병, 심지어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 스펀지 야

외 방석, 우산, 돋보기 그리고 인스턴트 스틱 커피 5개까지. 생명을 유

지하는데 불필요한 것은 모두 담아서 집으로 보냈다. 받아 보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1983년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후 집으로 돌려 보

낸 물건들을 받아 보신 나의 어머니께서는 마치 전사자 유물이라도 받

으신 듯 그렇게 우셨다는데. - 훈련소에서는 입고 왔던 옷은 물론 신발,

속옷 심지어 일정 금액을 공제한 돈까지 사회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집

으로 싸서 보낸다. 내가 입대했을 1983년에는 종이에 대충 말아 끈으로

묶어 보냈는데 2013년 입대했던 내 아들은 그나마 반듯한 상자에 담아

보내 왔다. 그래도 배낭의 무게는 13kg. 여행을 마친 후 세계적인 아웃

도어 용품 한국 지사장을 역임한 선배 왈, “그런 장기 여행용 배낭이 따

로 있어. 아주 가볍고 튼튼한.”

 

가까운 산을 걷는 데는 배낭의 무게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거꾸로 별

로 챙겨 갈 것도 없다. 극단적으로 물통 하나면 족하다. 기간이 길어지

면 사정은 달라진다. 필요한 것들이 아주 많다. 기간에 비례한다. 그런

데 배낭이 무거우면 고생 역시 비례해서 커진다. 먼 길을 가기 어렵다.

역설이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어갔던 셰릴 스트레이드가 쓴

와일드(Wild)라는 책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사실상 첫 기착지인

케네디 메도우즈에서 쌍안경, 휴대용 톱, 사진기용 플래시, 겨드랑이

방취제, 일회용 면도기 그리고 콘돔 12개 중 11개를 버리는 장면이 나온

다. 먼 길을 가려면 짐을 줄여라. 무게를 줄여라. 그것마저 버려라. 옛

선인들은 눈썹을 두고 간다 하지 않았던가!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멀리 간다면, 환경이 나빠진다면 버려

라, 줄여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원

시적 환경에서 기댈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능력 뿐. 그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버려라. 장거리 도보 여행이 주는 교훈이다. 심지

어 체중도 줄이고 감정의 찌꺼기도 기꺼이 줄여라. 나는 이 길을 걷는

동안 이런 것들을 걷어 내고 싶었다. 무게를 줄이고 싶었다. 인생의 무

게를. 그래서 다시 일어설 때는 전보다는 조금 적은 힘으로도 벌떡 일어

설 수 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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