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길과 민박집과 자동차들

by 최화수 posted Dec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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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2일, 왕등재 아래 자리한 외곡마을을 찾았다. 15, 16년 전 <지리산 365일>을 쓸 때 여러 차례 찾았던 마을이다. 겹겹의 산자락에 묻혀 있어 고요하고 아늑한, 아주 독특한 공간이기도 하다. 뜸부기를 키우던 농가도 있었다.

외곡마을은 대원사계곡(유평계곡) 도로가 그 진입로가 된다. 매표소~대원사~유평마을~삼거리(마을)에 이르러 새재로 오르는 길을 버리고 유평계곡에 걸린 다리를 건너 좁다란 산자락을 비집고 들어선다. 곧 새 세계가 얼굴을 내민다.

삼거리(마을)에서 보면 온통 산 밖에는 없을 듯한데, 다리를 건너 1킬로미터 가량 들어가면 항아리 주둥이를 빠져나간 것처럼 드넓은 분지가 환히 열린다. 외고개에 이르기까지 분지가 광활하여 면양시범단지 추진까지 논의됐던 곳이다.

그보다 외곡마을은 왕등재 습지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으로 특별한 인상을 안겨준다. 또한 옛날 어떤 왕(구형왕이란 설도 있음)이 이 일대에 토성을 쌓고 피난을 했다는 전설도 따르고 있다. 왕등재로 오르다보면 그 흔적이 남아있다.

대원사계곡은 ‘외곡 피난도성’과 관련한 이름들이 꽤나 많다. 말과 소를 사육했다고 하여 ‘망생이골’로 불린다는 것들이 그러하다. 왕등재 습지를 비롯하여 골짜기 이름, 토성의 흔적 등은 졸저 <지리산 365일>에 구체적으로 씌어있다.

12월12일 외곡마을을 찾아간 것은 옛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외고개 너머 오봉마을에서 외곡마을로 넘나들던 때 분지 전체에 그득한 적요한 분위기, 습지식물의 모습 등이 문득 그립게 생각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곡마을에서 외고개로 가는 길은 입구가 굳게 차단돼 있었다. 반달곰 서식지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하며, 위반하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지난 시절에는 거침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곤 했는데...!

그런데 이 날의 대원사계곡은 사람은 없고 자동차만 있었다. 오전 11시 대원사 매표소를 출발하여 외곡마을까지 걸어갔다. 대원사, 유평마을, 삼거리(마을), 그리고 외곡마을에 닿아서도 사람 구경을 못 했다.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후 3시 다시 매표소에 닿기까지 4시간 동안 걸어가는 사람은 필자 혼자뿐이었다. 각종 자동차만 심심찮게 소음과 매연을 뿜으며 내달리고는 했다. 대원사계곡도 이렇게 적막감에 쌓일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그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깊은 산속에 웬 민박집이 그리도 많은지?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어지럽다. 유평마을 21, 삼거리 5, 외곡마을 5, 중땀 5, 새재마을 12가구,,.민박집 간판과 자동차의 질주가 걷는 사람을 몰아낸 대원사계곡 길...아주 이상한 한나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