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암에서 귀를 씻을 것인가?

by 최화수 posted Nov 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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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동천에도 가뭄이 극심하다. 물소리가 요란하기로 유명한 삼신동(三神洞)마저 계곡이 허연 바닥을 드러낸 채 단잠에 빠져 있었다.
11월4일, 지리산 역사문화 답사팀 100여명과 함께 삼신동에 잠시 들렀다. 그런데 화개동천이 너무 조용하다. 우르르쾅쾅 천지개벽이라도 하는 듯한 한여름철의 그 물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조선 명종 13년(1558년) 4월20일, 이곳 삼신동 신흥사를 찾았던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은 화개천의 격류가 바위에 부딪치며 솟구쳤다가 부서지는 모습이 마치 만 섬의 구슬을 다투어 내뿜는 듯하다고 자신의 지리산 기행기 ‘유두류록’에 썼다. 그이의 명문(名文) 가운데 그 대목만을 다시 떠올려 본다.

‘최근 내린 비에 불어난 시냇물이 돌에 부딪혀 솟구쳤다가 부서지니 마치 만 섬 구슬을 다투어 내뿜는 듯하기도 하고,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으르릉거리는 듯하기도 하며, 희뿌옇게 가로지른 은하수에 별들이 떨어지는 듯하기도 하였다.’

지난날 신흥사(또는 신응사) 터에는 왕성초등학교가 자리한다. 그 교문 앞에 높이 25미터, 둘레 6.25미터의 푸조나무 한 그루가 아주 거룩하게 서있다. 경상남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된 보호수이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신흥사로 들어갈 때 꽂아두었던 지팡이에서 싹이 자란 나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최치원 선생은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았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함양 상림’ 등에서도 전해온다.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되어 영생한다는 전설을 뒷받침해주는 얘기이다. 하지만 최치원 선생이 신흥사를 찾았던 시기는 1100년 전인데, 푸조나무의 수령은 500년 정도에 불과하니, 전설이 현실일 수는 없는가 보다.

어쨌든 최치원 선생의 전설을 간직한 푸조나무는 드넓고 두터운 그늘로 좋은 쉼터가 되고 있는데, 자연히 눈앞의 화개동천 세이암(洗耳岩)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최치원 선생은 이곳 삼신동에 ‘三神洞’ 각자(刻字)와 세이암, 푸조나무의 세 가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가운데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세이암이다.

최치원 선생은 통일신라 말기의 타락한 권력과 세상사를 등지고 이곳 지리산 삼신동에 들면서 혼탁한 세상에서 들었던 더러운 말들을 잊기 위해 귀를 씻었다고 한다. 또는 왕이 사람을 보내 국정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자 “나는 안 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귀를 씻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그처럼 귀를 씻고 싶은 충동을 받는 것은 최치원 선생뿐이겠는가.

세이암은 화개천의 물을 건너 반대편 벼랑 쪽에 자리하는 너럭바위다. 여름철에 몇 차례나 그 너럭바위로 건너가고자 했지만, 거센 물길이 가로막아 그 뜻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가뭄으로 하천 바닥이 드러나 발을 물에 담그지도 않고 수월하게 건너갈 수 있다. 어찌 이 기회를 그냥 놓치랴.

그래도 제법 거세게 흐르는 계류를 뜀뛰기로 건너뛰어 너럭바위로 갔다. ‘洗 耳 岩’이란 각자가 오랜 세월 격류에 마모되어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옆으로 각도 조절을 하면 좀 더 선명하게 글자가 드러난다. 산비탈쪽 작은 벼랑바위에도 또 하나의 ‘洗 耳 岩’ 각자가 있다. 하지만 글씨체가 확연히 다르다.

지리산에는 갓끈을 씻은 탁영대, 마음을 씻는 세심탕과 세심정이 있고, 귀를 씻는 세이암이 있다. 마음을 씻는다면 어찌 귀를 못 씻으랴. 천하의 명문장가 최치원도 정치권력의 타락과 세속적 아귀다툼에는 두 손을 들고 자연에 귀의, 지리산 청정수에 귀를 씻었다. 그 1000년 전과 현재를 바삐 오가는 사념으로 한동안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세이암에서 귀를 씻을 것인가? 최치원 선생의 흉내인들 차마 낼 수가 없었다. 귀를 씻는 대신 산길도 없는 세이암 뒤편 벼랑을 타고 올랐다. ‘나바론 요새’처럼 가파른 절벽을 나무들에 의지하여 돌격대처럼 올랐다. 얼마 후에 능선에 닿고 보니 세이정(洗耳亭)이 반갑게 맞아준다. 세이정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새로 만든 목재 데크 로드를 따라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