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석(男根石)의 수난'(2)

by 최화수 posted Sep 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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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근석(男根石)의 수난' (2)
                                      (2000년 6월25일)

아침산의 남근석은 마을 동구에 있는 것들과는 달리 드러내지 않고 부끄러운 듯이 숲속에 숨어 있어 좋습니다. 어찌 보면 살며시 가린 나뭇잎이 속옷을 걸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때문에 등산객들도 이를 모르고 지나치곤 합니다.

마을 동구 등에 세워진 남근석들은 적나라하게 공개된 모습 일색입니다. 이를테면 전북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와 창덕리의 아주 리얼하게 조각된 남근석은 너무 당당한 모습인데, 지방민속자료로 지정되어 관청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전국 곳곳에 왜 이른 남근석들이 세워져 있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다산(多産)과 풍요를 빌고, 악귀를 쫓기 위해 남근석을 세웠습니다. 우연하게 닮은 바위를 옮겨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남근석은 돌을 정성스레 쪼아 세웠습니다.

창덕리 남근석은 500년 쯤 전 이곳에 살던 한 걸인이 혼인이나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조각했다는 것입니다. 산동리 남근석은 한 여장부가 돌 두 개를 깎아 치마폭에 싸서 나르다가 하나는 무거워 버리고, 하나만 세웠다고 합니다.

한 마을의 남녀노소가 날마다 남근석 앞을 지나치지만, 모두 태연자약합니다. 더구나 정월 대보름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남근석에 금줄을 치고 제를 지냅니다. 아이가 없거나 젖이 부족한 여자는 남근석을 어루만지며 치성을 드립니다.

우리나라의 이 성기신앙은 2천여년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신라의 지석묘와 망주석에서부터 동신제(洞神祭)에 바치는 목제 남근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아니, 선사시대의 언양 반구대 암각화에도 성기를 유별나게 새겨 놓았습니다.

이 성기신앙의 유적들은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을 동구, 바닷가 해신당 등 성신앙 유적지는 120개소에 이릅니다. 이러한 성기 숭배는 우리 민족의 원시신앙이면서 개방된 성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이 됩니다.

성의 개방성은 너무 노골적인 신라 토우들이 뒷받침합니다. 국립박물관 소장 토우 가운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지난 80년대 안압지 발굴에서 실물 크기의 목제 성기 4개가 나와 그 용도를 두고 온갖 억측과 논란을 빚었습니다.

성신앙의 특징은 음양의 조화입니다. 남근석 앞에는 여음(女陰)을 상징하는 짚신짝을, 여음(女根) 앞에는 남근석이나 남근목을 바쳤습니다. 한을 품고 죽은 처녀 영혼은 음신이기에 양물로 달랩니다. 그들의 당집 제물도 바로 남근목입니다.

사람이 일부러 조각한 것이 아닌, 자연적인 남근석이나 여음석에는 반드시 대칭되는 남녀근석(男女根石)이 있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월출산 구정봉의 여음암 맞바라지에 남근석이 서 있습니다. 안양시 삼성산의 남녀근석은 너무나 절묘합니다.

아침산 남근석 주변에도 여음암이나 여근석이 있을 듯합니다. 한번 찾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지만, 나는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남근석 스스로 나뭇잎으로 부끄러움을 감싸고 있다면,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기신앙이 있다고 하여 남근석 여근석을 모두 까발려놓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꾸로 일부러 가려놓은 곳도 있습니다. 지리산의 수려한 구룡계곡 입구,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여궁형 바위(여근곡)가 바로 그 보기입니다.

석녀골로 불리기도 하는 그것은 마을에서 바로 바라보입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 입구에 높이 2~3미터, 길이 15미터의 두툼한 돌담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 그 담 위에 10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두었습니다. 여근곡을 아주 가려놓은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이러한 가림장치를 하게 된 것은 여근곡 바위에서 흐르는 물빛이 보이면 부녀자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보기 민망한 것을 인위적인 시설물로 가려놓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생각됩니다.

아침산의 남근석이 스스로의 존재를 적당히 숨기고 있는 모습도 그래서 한층 더 편안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온통 드러내기 좋아하는 세상, 하지만 은근슬쩍 가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남근석이 가르쳐주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