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산방' '봉명선인' 30년(3)

by 최화수 posted Jul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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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의 ‘봉명산방 봉명선인’ 변규화님에 대한 글은 아마도 필자가 가장 많이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요, 그이로부터 듣게 된 지리산의 신비한 사연 등도 여기저기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글로 담아냈다.

<지리산 365일> 전 4권의 상당 부분이 그렇고, 대하르포 <지리산 1994>. 빛깔 있는 책 <지리산>도 그러하다. 전후 50년 동안의 지리산 역사를 담은 <지리산 반세기>, 산 에세이집 <나의 지리산 사랑과 고뇌>에도 그이의 얘기가 실려 있다. 나는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지리산 통신>이나 <지리산 산책> <지리산 일기>에도 그이의 얘기를 싣고는 했다.

변규화님에 관한 얘기, 또는 그이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많이 썼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그이를 많이 만났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한 그이가 나에게는 숨겨놓고 들려주지 않는 말이 없었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변규화님은 친근하게 지내면서도 필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그이는 국사암의 사천왕수에 얽힌 사하촌 사람들의 이상한 행위를 들려준 바 있다. 필자가 그 이야기를 <지리산 1994>에 썼는데, 그것에 화를 내더라는 것.

나는 그 이야기를 한 지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봉명산방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이는 언제나처럼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이는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는 않았다.
그이는 우리 사이에 언제 서운한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필자에게 또다른 귀에 솔깃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밤이 되면 홀랑 알몸이 되어 이 산중을 거닙니다. 달빛이 숲에 부서져 내리면 더욱 좋지. 거추장스런 옷가지를 벗어던진 알몸, 완전한 자유, 그것은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지요.”

그이는 글자 그대로 ‘봉명선인(鳳鳴仙人)’이 돼 있었다. “산이 쑥쑥 자라나요”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오두막 앞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나무가 자라나는 것을 그렇게 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아침마다 독사와 인사를 나누고는 한다”고도 했다.

지리산 사람들은 대체로 두주불사(斗酒不辭)이다. 하지만 변규화님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담배도 피지 않고, 소식(小食)을 한다. 그래서일까, 그이의 모습은 30년을 하루 같이 변함이 없다.
그이는 ‘지성(知性)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겨한다. 유수의 석학들이 그이를 곧잘 찾아오고는 한다.

2003년 2월부터 필자는 ‘지리산 일기’를 인터넷 카페에 썼는데, 그 해 말까지의 56회 분량이 오용민의 ‘지리산 커뮤니티’(www.ofof.net)에 실려 있다. 그 가운데는 ‘오두막 안쪽의 토담집’이라는 글이 두 편 실려 있다. 바로 변규화님 관련 이야기이다.

변규화님은 당시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오두막 ‘봉명산방’ 뒤편에 또 하나의 토담집을 짓고 있었다. 원래 그곳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이 혼자서 기계장비를 쓰지 않고 집채 같은 그 바위를 옮겨내는 초능력을 발휘했다.
“초능력이 아니라 ‘머리’지요. 머리를 쓰면 안 되는 일이 없거던!”

필자는 이 ‘지리산 일기’에서 그이가 왜 또 오두막 뒤의 토담집을 짓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었다. 기존 오두막도 그이 혼자 살기에는 넓은 공간이 남아돌고, 더구나 산 아래 목압마을에는 그이가 손수 지은 토담 오두막이 또 한 채 있기 때문이었다.

“저 토담집에는 어떤 가구도 집기도 들여놓지 않을 거요. 오직 나 한 몸 명상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그이의 말을 듣고 나는 ‘지리산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봉명산방 뒤의 새 토담집은 변규화님의 마지막 토굴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이만의 순수 자연세계, 변규화님의 지리산 생활을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황토 토담과 자연의 숲, 공기와 물, 그이의 맑은 영혼이 서로 어울려 노니는 공간, 아,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문(門)과 같은 곳이 아닐까!

봉명선인 자신의 손으로 한 뼘 한 뼘 흙을 쌓아 만든 토담집.
구조라면 황토방 하나에 덧문이 달린 것이 전부이다. 방안에는 아무런 가구나 집기도 들여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흙방에는 ‘지리산의 자연’으로 가득 채워지리라.
변규화님의 맑은 영혼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생(永生)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 2003년 무심코 썼던 필자의 ‘지리산 일기’-그 속의 변규화님과 토담집 이야기.
그것이 마치 그이의 운명을 미리 예고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봉명선인은 그 작은 토담집에서 시공을 초월한 영생의 길로 영원히 떠난 것.
하지만 ‘지리산의 자연’으로 그이는 우리들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