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산방' '봉명선인' 30년(1)

by 최화수 posted Jun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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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세상을 向해서는 / 도무지 / 아무런 재주도 재능도 없고 / 게으르다 / 그러면서 / 또 /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 다만 내일이 오늘이 / 된다는 것과 / 오늘 이 순간까지 /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 고마움 / 그것이 / 큰 행복감으로 남아 / 깊은 산 / 한 자락에 / 초막을 엮어 / 삶을 / 즐기며 살아간다.’

불일폭포 불일평전의 오두막 봉명산방(鳳鳴山房)에 시 한편이 걸려 있다.
‘내 삶의 의미’-오두막 주인 변규화님의 시 작품이다.
지리산과 같은 자연인으로 나무처럼 풀처럼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고마움, 그것이 큰 행복으로 남아 깊은 산 한 자락에 초막을 엮어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변규화 선생.
그이가 불일폭포 앞의 이 오두막집에 정착한 것은 1978년 10월1일이었다.
올해 가을, 10월1일이 그의 ‘봉명산방’ 정착 30돌이 되는 날이다.
“30돌을 조촐하나마 잔치자리를 마련하여 뜻깊게 맞고 싶네요. 잔칫날 꼭 와야 합니다.”
지난해 가을 봉명산방을 찾은 필자에게 ‘봉명산방 30돌 잔치’에 미리 초대를 했다.

어느 사이 30년인가!?
30년이란 말에 필자 가슴이 더 쿵하고 내려앉았다.
벌써 30년,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세월이 흘러간 것이로구나~~~~!
필자는 그이가 이 오두막에 정착한 2년 후 겨울, 폭설이 내린 이른 아침 처음으로 만났다.
그이의 봉명산방 정착 30년은 내가 그이를 만난 지 28년째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이 있다.
그이는 처음 만났던 그 날이나, 30년이 흐른 지금이나 그 모습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얼굴도 그대로, 수염도 그대로, 나이도 그대로, 성품도 그대로이다.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이는 신선일까? 변하지 않고 사는 그것이 불가사의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너무 변했다.
아니, 나는 도대체 30년 세월, 그 많은 날과 날들에 과연 무엇을 했다는 것일까?
나는 불일평전 오두막을 처음 방문했던 그 날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렸다.
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던 눈길을 헤치고 불일폭포로 오르던 그 때의 일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그 해 겨울, 그날도 나는 토요일 오후에 배낭을 메고 혼자 집을 나섰다. 그때는 내가 만 10년 동안 다녔던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국제신문이 하루아침에 폐간이 되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부산일보로 옮겨 일하게 된 바로 직후였다.
당시 나는 주말마다 배낭을 메고 어디든지 먼 곳으로 떠나가 혼자 헤매고 오는 버릇이 생겼다. 그 시절엔 정말 어쩌면 춥기도 그렇게 춥고, 바람도 그렇게 사납게 몰아치고, 하늘마저 음산한 날이 그처럼 많았는지 모르겠다.’-필자의 졸저 <나의 지리산 사랑과 고뇌>에 봉명산방 변규화님을 처음 만났던 얘기가 실려 있다.

토요일 저녁 쌍계별장에서 묵은 나는 이른 새벽 불일폭포로 오르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아, 밤 사이 폭설이 내려 온 천하가 아주 환상적인 설국(雪國)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그 눈밭을 헤치고 짐승들의 발자국이 안내하는대로 불일폭포로 올랐다.
온통 하얀 눈세계, 오두막 뜨락 돌 탁자에서 나는 변규화님과 처음으로 마주앉았다.
그이가 손수 끓여내온 갈근차를 들며 따뜻한 얘기들을 꿈결처럼 나누었다.

그날로부터 어언 28년이라니!
그이의 봉명산방 오두막 30년은 나에게 더 큰 충격으로 가슴을 때렸다.
“최 선생, 30돌 잔치에 최 선생이 빠지면 안 되니까 꼭 와야 합니다!”
그이와 나 사이에는 참 많고 많은 사연이 있다.
“물론이지요. 만사 젖혀두고 그 날은 꼭 오리다!”
지난해 가을 나는 그이에게 그렇게 약속했다.

변규화 선생이 30주년 입주 잔치를 1년 전부터 예고하는 것도 뜻밖이었다.
어떻게 하면 뜻깊게 밤을 새울 것인지 하고 필자에게 묻기까지 했다.
그이가 그 일에 정성을 쏟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올해 10월1일 봉명산방 입주 30년이 되는 날은 그이의 7순 잔칫날을 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웬 날벼락이랴!
6월12일, 잔칫날을 겨우 3개월 남겨놓고 그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