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시대' 이제 막 내리나?(1)

by 최화수 posted Feb 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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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변(永生不變), 불사영생(不死永生)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물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된다. 뽕나무밭을 푸른 바다로 바꿔놓는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능곡지변(陵谷之變), 언덕과 골짜기를 서로 바꿔놓기도 한다.
고안심곡(高岸深谷), 높은 언덕이 무너져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는 것이 세월과 자연의 이치이다.
하물며 사람이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신선전(神仙傳)’의 ‘마고 선녀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녀 마고가 하루는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했다.
“제가 신선님을 모신 지가 어느 새 뽕나무밭이 세 번이나 푸른 바다로 변하였습니다. 이번에 봉래(蓬萊)에 갔더니 바다가 다시 얕아져 이전의 반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또 육지가 되려는 것일까요?”

유정지(劉廷芝)의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에도 같은 읊조림이 나온다.
‘낙양성 동쪽에 피는 복숭아꽃 오얏꽃
날아오고 날아가며 누구의 집에 지는고
낙양의 어린 소녀 제 얼굴이 아까운지
어린 소녀가 길게 한숨짓는 모습을 보니
올해에 꽃이 지면 얼굴은 더욱 늙으리라
내년에 피는 꽃은 또 누가 보려는가
뽕나무밭도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 그대로다.‘

지리산도 ‘마고 선녀’나 ‘대비백두옹’ 읊조림과 다를 것이 없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고, 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뀌는가?
도로가 나고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외형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거미줄처럼 생겨난 등산로가 지리산을 알몸으로 파헤쳐놓은 것에서도 아니다.
지리산의 신화(神話)시대가 종언을 고하려 하는 때문이다.
지리산 신화의 주인공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의 신비(神秘)와 외경(畏敬)
지리산의 권위(權威)와 상징(象徵)
지리산의 순수(純粹)와 열정(熱情)
지리산의 신화시대가 그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신화시대를 열어왔던 지리산 터줏대감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 둘 무대 뒤편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불일폭포 오두막 ‘봉명산방(鳳鳴山房)’의 변규화(본명 변성배)님이 30년을 하루같이 지켜온 불일평전을 떠나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지리산 종주 챔피언’ 이광전님이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필자에게 알려주었다.
지난해 11월12일, 변규화님이 잠자던 봉명산방 토담 방에 참나무 가스가 스며든 것이다.
진주 경상대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불일 오두막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상태가 악화되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변규화님은 이달 초 다시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의 한 병원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여름 이후 불일오두막을 찾지 못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일에 쫓겨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설상가상으로 추석을 앞두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뜻밖의 담석으로 고통이 따랐다.
담도의 돌을 제거하느라 필자는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4박5일,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았다.
상전벽해 그대로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내시경에 의한 시술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지만, 나로선 병원 신세를 진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더구나 퇴원하자마자 필자에게 지리산에서의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아 안겨졌다.
신흥동 법화선원 법공스님이 큰 수술을 받은 뒤 투병중이며, 불일폭포 봉명산방 변규화님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를 ‘지리산의 신화시대’로 끌어들였던 화개동천(花開洞天), 그 곳에서 들려온 비보가 필자에게는 마치 지리산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