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時空)을 초월한 '문수암'

by 최화수 posted Jan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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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초파일이 되면 지리산 삼정봉에 등산객들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를 잇는 일일 등산 코스도 아주 좋고, 초파일을 맞아 유서 깊고 한적한 사암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특히 부산, 진주, 창원지역 일부 산악회와 함양군청 산악회(?) 등은 초파일에 연례행사처럼 이곳을 찾는다. 또 전주, 대전, 대구, 광주 등지에서 개인적으로 이들 사암을 찾는 이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등산객들은 대체로 마천 벽소령 입구 마을인 양정부락에서 영원사로 먼저 올라 삼정봉을 거쳐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를 들러보고 견성골을 따라 마천면 군자리 도마부락으로 하산한다.
이 가운데 영원사 뒤편 능선에서 삼정봉과 상무주암, 문수암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지리산 주능선의 조망은 물론,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 산행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전주, 대구, 부산 등지에서 일일산행 하기에 좋은 코스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을 따라가는 순서대로 산행을 했다.
그런데 십수 년 쯤 전 어느날부터는 도마부락에서 견성골을 따라 문수암~상무주~삼정봉에 올랐다가 다시 견성골로 되돌아온다.
문수암 도봉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보다 양정부락~영원사에 산판도로가 개설된 뒤로 정나미가 떨어진 때문이다.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영원사로 오르던 지난 시절이 좋았다.

도마부락~견성골도 논두렁 밭두렁을 깔아뭉개고 산판도로가 개설된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견성골 입구, 독립가옥이 있는 곳에서 일찌감치 끝난다. 또 삼불사 갈림길까지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그런대로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다.
삼불사 갈림길에서 문수암까지는 그야말로 깨끗하고 적요한 오솔길만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 오솔길로 올랐다가 다시 이 오솔길로 내려오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삼정봉 사암들에 도로 개설이란 꿈도 꿀 수 없었다. 영원사 한 곳을 빼면 불사를 벌이는 모습도 전혀 눈에 띄지가 않았다.
가난하고 차분하고 적요하기만 한 사암의 고즈넉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하지만 양정부락 쪽의 영원사까지 산판도로가 뚫리고, 도마부락과 가까운 삼불사가 갈림길까지 도로 개설을 시도하는 바람에 양쪽의 산자락은 옛모습을 잃고 말았다.
다만 오직 초연할 뿐인 곳이 문수암이다.

문수암 뜰에 서면 맞은편 금대산 금대암이 바로 건너다보인다. 그 높은 암자까지 가파른 비탈을 시종 S자 굴곡을 그리며 파헤쳐놓은 도로가 흉칙한 모습으로 눈을 어지럽힌다.
어디 그 금대암 뿐이랴. 높낮이나 비탈의 각도를 가리지 않고 사암 마당까지 차도(車道)를 개설해 놓은 곳들이 너무나 많다.
짚신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그 터를 잡은 옛 고승들이 통곡할는 지도 모를 일이다.

부산 범어사를 빛낸 인물로 동산 큰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이는 6.25전란 직후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 선방의 선승들이 끼니를 굶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던 분이다.
그이는 신도가 태워준 택시를 타고 범어사까지 오른 스님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도 불법을 익히는 것에 부족할 터인데, 어찌 신도가 차편을 제공한다 하여 감히 편안하게 앉아서 산문까지 올 수 있느냐며 호통을 쳤던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봄철에 오대산을 찾았다.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에 닿았다. 절 입구 숲에는 보라색 풀꽃들이 뒤덮다시피 하고 있어 잠깐 넋을 빼앗겼다.
그 때 느닷없이 덤프트럭 세 대가 잇달아 질주하면서 태산같은 먼지를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원사는 요란한 불사를 한창 벌이고 있었다.
더욱 놀랄 일은 중대사자암에 어떻게 옮겨왔는지 대형 크레인차가 버티고 있고,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고 있었다.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쫓기듯이 올라가보니 그곳에도 천막을 쳐놓고 불사 헌금을 받고 있었다.
<설악산> 책을 쓰던 때 봉정암을 찾았던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수렴동, 구곡담계곡을 거쳐 봉정암 입구로 들어서는데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전기톱소리가 들렸고,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그로테스크했다.
오세암도 지난날의 그 모습이 아니다. 주변 지형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당우들이 잇달아 들어섰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갑자기 지리산 삼정봉 문수암이 떠올랐다. 언제나 시공(時空)을 초월, 고요한 마음의 평온만이 자리하는 문수암이다.
다만 바로 건너다보이는 금대암 차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 도로를 쳐다보며 도봉스님은 크게 탄식한 적이 있다. 사찰과 암자들이 어째서 자동차 도로를 닦고, 요란하게 불사를 벌이기만 하는가?!
필자가 아직 불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가 거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