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2056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매년 초파일이 되면 지리산 삼정봉에 등산객들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를 잇는 일일 등산 코스도 아주 좋고, 초파일을 맞아 유서 깊고 한적한 사암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특히 부산, 진주, 창원지역 일부 산악회와 함양군청 산악회(?) 등은 초파일에 연례행사처럼 이곳을 찾는다. 또 전주, 대전, 대구, 광주 등지에서 개인적으로 이들 사암을 찾는 이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등산객들은 대체로 마천 벽소령 입구 마을인 양정부락에서 영원사로 먼저 올라 삼정봉을 거쳐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를 들러보고 견성골을 따라 마천면 군자리 도마부락으로 하산한다.
이 가운데 영원사 뒤편 능선에서 삼정봉과 상무주암, 문수암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지리산 주능선의 조망은 물론,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 산행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전주, 대구, 부산 등지에서 일일산행 하기에 좋은 코스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영원사~상무주암~문수암을 따라가는 순서대로 산행을 했다.
그런데 십수 년 쯤 전 어느날부터는 도마부락에서 견성골을 따라 문수암~상무주~삼정봉에 올랐다가 다시 견성골로 되돌아온다.
문수암 도봉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그보다 양정부락~영원사에 산판도로가 개설된 뒤로 정나미가 떨어진 때문이다.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영원사로 오르던 지난 시절이 좋았다.

도마부락~견성골도 논두렁 밭두렁을 깔아뭉개고 산판도로가 개설된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견성골 입구, 독립가옥이 있는 곳에서 일찌감치 끝난다. 또 삼불사 갈림길까지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그런대로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다.
삼불사 갈림길에서 문수암까지는 그야말로 깨끗하고 적요한 오솔길만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 오솔길로 올랐다가 다시 이 오솔길로 내려오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삼정봉 사암들에 도로 개설이란 꿈도 꿀 수 없었다. 영원사 한 곳을 빼면 불사를 벌이는 모습도 전혀 눈에 띄지가 않았다.
가난하고 차분하고 적요하기만 한 사암의 고즈넉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하지만 양정부락 쪽의 영원사까지 산판도로가 뚫리고, 도마부락과 가까운 삼불사가 갈림길까지 도로 개설을 시도하는 바람에 양쪽의 산자락은 옛모습을 잃고 말았다.
다만 오직 초연할 뿐인 곳이 문수암이다.

문수암 뜰에 서면 맞은편 금대산 금대암이 바로 건너다보인다. 그 높은 암자까지 가파른 비탈을 시종 S자 굴곡을 그리며 파헤쳐놓은 도로가 흉칙한 모습으로 눈을 어지럽힌다.
어디 그 금대암 뿐이랴. 높낮이나 비탈의 각도를 가리지 않고 사암 마당까지 차도(車道)를 개설해 놓은 곳들이 너무나 많다.
짚신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그 터를 잡은 옛 고승들이 통곡할는 지도 모를 일이다.

부산 범어사를 빛낸 인물로 동산 큰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이는 6.25전란 직후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 선방의 선승들이 끼니를 굶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던 분이다.
그이는 신도가 태워준 택시를 타고 범어사까지 오른 스님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걸어서 올라도 불법을 익히는 것에 부족할 터인데, 어찌 신도가 차편을 제공한다 하여 감히 편안하게 앉아서 산문까지 올 수 있느냐며 호통을 쳤던 것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봄철에 오대산을 찾았다.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에 닿았다. 절 입구 숲에는 보라색 풀꽃들이 뒤덮다시피 하고 있어 잠깐 넋을 빼앗겼다.
그 때 느닷없이 덤프트럭 세 대가 잇달아 질주하면서 태산같은 먼지를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원사는 요란한 불사를 한창 벌이고 있었다.
더욱 놀랄 일은 중대사자암에 어떻게 옮겨왔는지 대형 크레인차가 버티고 있고,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고 있었다.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쫓기듯이 올라가보니 그곳에도 천막을 쳐놓고 불사 헌금을 받고 있었다.
<설악산> 책을 쓰던 때 봉정암을 찾았던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수렴동, 구곡담계곡을 거쳐 봉정암 입구로 들어서는데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전기톱소리가 들렸고,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그로테스크했다.
오세암도 지난날의 그 모습이 아니다. 주변 지형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당우들이 잇달아 들어섰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갑자기 지리산 삼정봉 문수암이 떠올랐다. 언제나 시공(時空)을 초월, 고요한 마음의 평온만이 자리하는 문수암이다.
다만 바로 건너다보이는 금대암 차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 도로를 쳐다보며 도봉스님은 크게 탄식한 적이 있다. 사찰과 암자들이 어째서 자동차 도로를 닦고, 요란하게 불사를 벌이기만 하는가?!
필자가 아직 불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가 거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 ?
    산천 2008.01.17 16:14
    공감이 가는 현 시대의 참 중요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산, 사찰의 진정한 의미가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김현거사 2008.01.17 21:14
    중들이 마음 공부는 않고 깊은 산 속에다 차길만 닦는 모습은 문제지요?차 타고 갈 절도 있어야 되겠으나,다 그래 놓으면 수도는 어디서 합니까?민초들 사는 동네는 길 내려면 무척 어려운데,허가는 왜 나오는지?
  • ?
    오 해 봉 2008.01.18 11:04
    여산선생님 따라서 영원사 에서부터 상원사와 봉정암까지
    언제든지 좋아하는곳을 돌아봤습니다,
    작년부터는 10000원씩 받으며 하룻밤자고 3끼를 먹여주는
    고마운 봉정암도 있지만 버스타고 성삼재를 향해 지나가는데도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로 내라는 천은사도 있지요,
    천은사 기왓장한개도 못보며 지나가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좋아하지만 천은사는 참 그러네요,
    작년 가을에보니 봉정암 그험한산속에 헬기로 실어왔을
    꽤큰 포클레인이 공사를 하고있드군요.
  • ?
    東窓 2008.01.19 16:26
    실용이 모든 허물을 덮어버리는 가치 전도의 시대 흐름을
    수도처 조차도 비껴가지 못하고서 편함 만을 추구하나 봅니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 조용한 마음의 평온만이 자리하는 문수암"
    이 더욱 돋보이는군요.

  1. No Image

    최상의 기호품 덕산 곶감(1)

    "시천 마천 큰애기 곶감깎기로 다 나간다"는 지리산 민요의 그 시천(矢川)과 마천(馬川)은 일찍부터 곶감으로 유명하다. 지리산 농가들이 늦가을부터 곶감을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함양군 마천면과 산청군 시천면 일대는 집집마...
    Date2007.10.22 By최화수 Reply2 Views1924
    Read More
  2. No Image

    '정순덕 마을' 정씨 할머니

    정순덕이 태어나고 13년 동안 빨치산 활동을 하다 총을 맞고 사로잡힌 안내원 부락. 수십년 동안 귀틀집들이 죽은 듯이 자리했는데, 지금은 고래등처럼 큰 양옥이 들어서 있다. 지리산 어느 마을이든 건축허가를 받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탓할 수 없다. ...
    Date2007.10.12 By최화수 Reply5 Views1810
    Read More
  3. No Image

    '정순덕 고향' 안내원마을

    내원사 앞에서 장당골과 내원골의 두 계곡물이 합쳐진다. 사찰 바른쪽이 장당골이고, 왼편이 내원골이다. 장당골은 아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지만, 내원골은 이른바 '황금능선'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는다. 내원골에도 광산 개발을 위한 산판도로...
    Date2007.10.03 By최화수 Reply3 Views1988
    Read More
  4. No Image

    섬진강 기적-오영희 출판회

    다음은 지난 2002년 10월21일자 Daum 칼럼 '최화수의 지리산 통신'에 올렸던 글입니다. 섬호정님의 <섬진강 소견> 출판기념회가 섬진강변 두레네집에서 열렸었지요. 섬호정 선생님과 여러분에게 그리운 마음을 전하면서 추석 인사를 대신하여 그 때의 글을 다...
    Date2007.09.23 By최화수 Reply7 Views1765
    Read More
  5. No Image

    석주관 어찌 그냥 지나치랴!

    왕시루봉 능선이 흘러내린 그 지맥이 섬진강 청류에 잠겨들며 잠시 휴식하는 곳! 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무성한 숲이 쏟아져 내릴 듯하니, 섬진강 하류에서 거슬러 오르다보면 최고의 협곡을 이루는 곳이다. 섬진강 양안을 줄나룻배라도 오고갈 듯 하지만, 그...
    Date2007.09.07 By최화수 Reply2 Views1526
    Read More
  6. No Image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2)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를 뒤늦게 찾아본 필자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 사찰을 드나들거나 지나친 것이 도대체 몇 번이었던가. 하지만 필자는 ×눈에 ×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엉뚱한 것에만 시선을 주었을 뿐이었다. 연곡사는 필자에게 지리산을 어...
    Date2007.08.29 By최화수 Reply4 Views1956
    Read More
  7. No Image

    연곡사의 부도와 순절비(1)

    ['다음 칼럼' 재록입니다] 필자의 대학 선배 박아무개님은 학교에 나오는 것보다 전국을 떠도는 날이 많았고, 등교를 해도 강의실보다 술집에 있을 때가 더 많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이는 필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는 나타나 부조할 돈이 없다며 그 대신 ...
    Date2007.08.27 By최화수 Reply0 Views1637
    Read More
  8. No Image

    [납량 6] 종녀촌의 '성축제'

    [납량 6] 종녀촌의 '성(性)축제' 2002년 08월 02일 오래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란 라디오 방송 프로가 있었다. 용이 못 된 이무기며, 사람으로 변신한 백여우, 뱀과 까치의 싸움하며 으시시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전설따라...'보다 더 뇌리에 깊이 ...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2102
    Read More
  9. No Image

    [납량 5] 곤두선 머리카락...

    [납량 5] 곤두선 머리카락... 2002년 07월 31일 꼭 10년 전 가을철이었다. 부산의 산악인 이광전 님은 내원골로 올라 이른바 '황금능선'을 따라 단독산행을 했다. 지독한 산죽과 잡목을 헤치고 써래봉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올라서느라 땀을 한 바탕 흘린 그이...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1746
    Read More
  10. No Image

    [납량 4] 목기막의 불청객들

    [납량 4] 목기막의 불청객들 2002년 07월 28일 지리산 골짜기 속의 골짜기로 '절터골'이 있다.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이현상(李鉉相)이 미스터리의 죽음을 맞이했던 '빗점골 합수내 흐른바위'가 이 절터골의 시작이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가는 군사작...
    Date2007.08.17 By최화수 Reply1 Views197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