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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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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鳳鳴山房(봉명산방)'이란 판액이 걸려 있는 불일오두막 앞 모습이다. '봉명산방'이란 이름은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에 와서 직접 명명했다.
사진 아래는 봉명산방 오두막 앞의 휴게소 모습.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3년 8월, 필자는 봉명산방 뜨락의 돌탁자에 변규화 옹과 마주앉아 오두막 뒤에 새로 짓고 있는 토담집 얘기를 나누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지리산 일기’에 썼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그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있다. 그이는 그 때 이미 생사의 문을 초월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필자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그렇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렇지 아니한다.
  
["이 토담집에는 어떤 가구도 집기도 들여놓지 않을 거요. 오직 나 한 몸 들어와서 명상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그렇다. 새로 짓는 이 토담집은 변규화 옹의 마지막 토굴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이만의 순수 자연의 세계!
변규화 옹이 지리산 생활 30수년, 아니 자신의 한평생 전부를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명의 도구도, 문화의 이기(利器)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황토 토담과 자연의 숲, 공기와 물, 그이의 맑은 영혼이 서로 어울려 노니는 공간, 아,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문(門)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필자가 이곳에 그날의 두 번째 일기를 여기에 계속 옯겨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음은 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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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막집 안쪽의 토담집(2)
                                (2003년 8월29일)

"나는 밤이 되면 홀랑 알몸이 되어 이 산중을 거닙니다. 달빛이 숲에 부서져 내리면 더욱 좋지. 거추장스런 옷가지를 벗어던진 알몸, 완전한 자유, 그것은 자연과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지요!"

변규화 옹은 달빛이 너무 밝아 혼자 있는 자신을 '못살게 굴 때'는 옷을 홀랑 벗어던진다고 한다.
완전한 알몸이 되어 불일평전을 거닌단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숲속 자연의 삶인가.

"자연과 어울리다 보니 독사와 마주쳐도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 그런 감정이 앞서니까 두려움도 미움도 없어지더라구요."

그이는 만인이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던 부인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간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 불일평전 오두막을 지키고 있다.
'불일평전 2세'로 아버지에 이어 이곳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하나뿐인 아들, 그 아들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떠나간 뒤에도 그이는 변함없이 이 불일 오두막을 지켜오고 있다.

무엇이 그이를 이처럼 불일평전에 붙들어 두게 하는 것일까?
지리산의 자연이다.
그이는 불일오두막에 정착하기 이전에 불일폭포 상류인 상불(上佛)에서 토굴생활을 했고, 스님이 되어 탈속을 하기도 했었다. 그 또한 자연에의 귀의였다.

변규화 옹은 불일 오두막을 25년째 지켜오고 있다. 그 사이 불일폭포가 내려다보이는 불일암(佛日庵) 스님은 화재 소동을 일으키고 사라졌지만, 그이만은 도대체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른 산중사람들처럼 술고래가 되거나 담배를 피거나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봉명선인(鳳鳴仙人)'이다.

변규화 옹은 그 옛날 토굴생활을 할 때 득도를 했거나, 그와 유사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을 나는 벌써 십수년 전 <지리산 365일>(전 4권, 신문연재 225회)을 쓸 때 알 수 있었고, '예언자' 등의 얘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왜 또 꺼집어내는가? 지금 불일평전 오두막 뒤편에 또 하나의 토담집을 짓고 있는 진정한 뜻을 이해하려면 변규화 옹의 지난 내력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때문이다.

"이 토담집에는 어떤 가구도 집기도 들여놓지 않을 거요. 오직 나 한 몸 들어와서 명상도 하고 시간도 보내고…."

그렇다. 새로 짓는 이 토담집은 변규화 옹의 마지막 토굴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이만의 순수 자연의 세계!
변규화 옹이 지리산 생활 30수년, 아니 자신의 한평생 전부를 결산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어떤 문명의 도구도, 문화의 이기(利器)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황토 토담과 자연의 숲, 공기와 물, 그이의 맑은 영혼이 서로 어울려 노니는 공간, 아, 얼마나 맑고 깨끗하고 신성한 곳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현세와 내세를 넘나드는 문(門)과 같은 곳이 아닐까!

불일오두막 안쪽의 토담집, 변규화 옹이 그 큰 바위를 혼자 힘으로 치워내고 손수 한뼘한뼘 토담을 쌓아 거의 마무리를 했다.
구조라면 황토방 하나에 덧문이 달린 것이 전부이다.
더구나 방안에는 아무런 가구나 집기도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은 흙방에는 '지리산의 자연'으로 가득 채워지리라.
그 무엇보다 변규화 옹의 맑은 영혼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생(永生)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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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거사 2008.05.20 06:55
    청년시절 아무도 없는 남해 송정의 호수에서 발가벗고 목욕한 기억 납니다.훈훈한 바람과 물결은 비단처럼 부드럽고,달빛에 반짝이던 이슬...
  • ?
    야생마 2008.05.23 15:50
    그런 의미에서 토담집을 애써 지으셨군요.
    문명을 단절하고 황토와 자연의 순수와의 교감으로
    영혼을 맑게 하고 그렇게 마지막을 지리산의 자연속에서
    환생을 꿈꾸셨던 것이군요. 그것도 참 멋지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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