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석문'과 '석문광장'(4)

by 최화수 posted Apr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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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광장의 백운장과 지리산여관, 쌍계사와 바짝 가까이 자리한 쌍계별장과 청운장은 쌍계사의 또다른 사랑방과 같았다.
백운장은 구월순 여사, 쌍계별장의 윤석천 내외 분 등 이들 숙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치 친척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뿐인가, 근래 사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리고 화개동천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쌍계사 국사암에 머물면서 남긴 수많은 에피소드도 백운장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도올과 불일오두막 변규화 옹이 나눈 대화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심오한 것이기도 했다.
또 국사암에서 어떻게 전국 규모의 국악 축제를 열었는지, 어째서 국악인 박범훈 선생이 불일평전 변규화 옹과 각별한 사이인지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쌍계별장은 이미 문을 닫고 원래의 도원암(桃園庵)으로 돌아갔고, 쌍계사 턱밑의 청운장도 석문광장 뒤편 새 상가부지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청운장은 내년 안에 마을로 옮기는 것을 마무리할 모양이다.
흐르는 세월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오늘이다.  

석문광장에는 백운장과 지리산여관, 그리고 찻집과 기념품 가게, 식당 등이 오순도순 자리하고 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였다. 모두가 한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그래서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함께 슬퍼했다.
80년대 당시 지리산여관의 초등학생이던 하나양은 참으로 예쁘고 부지런하고 착한 어린이였다. 석문광장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꼭 기쁘고 행복한 일만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데 모든 정성을 다 바치지만, 그것을 제대로 알아줄 아이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자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가슴을 찢어놓기도 하는 법이다.

백운장 구월순 여사는 드넓은 뜰에 수많은 화초를 기르는가 하면, 따로 난실(蘭室)을 마련하여 난 향기가 그윽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누군가가 난실에 침범하여 해꼬지를 해놓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이는 난실 속의 모든 난을 산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욕심이 사람을 망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쌍계사 사하촌 마을 뒷산에는 주민들이 농장을 열고 고사리, 취나물 등을 가꾸고 있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이 농장의 고사리와 산나물을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아예 작심을 하고 큰 배낭에다 연장까지 들고 다닌다는 것.
산에서 그저 얻는 것이 남이 애써 가꾼 산나물이나 농산물이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산자락에 얽혀 있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사진 위는 멀지않아 마을로 내려와야 하는 쌍계사 입구의 청운장. 아래는 화초가 많은 백운장의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