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는 '도깨비 방망이'(?)(3)

by 최화수 posted Feb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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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점골 상단, 이른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숨진 현장이라는 곳에서 골짜기는 절터골과 산태골로 나뉜다.
절터골이나 산태골은 지도상으로는 등산로가 나있지 않다. 필자는 십년 쯤 전에 한 월간 산악전문잡지의 특집기사 관계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는데, 의신마을 청년들의 길 안내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데 다시 몇 해가 흐른 뒤, 지난 2002년 이번에는 절터골과 산태골 사이 능선을 따라 주능선으로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길이 전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10년 전의 절터골. 산태골이나 2002년의 그 사이 능선도 놀라울 만큼 반들반들 길이 잘 나 있었다.
길만 잘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종 전깃줄처럼 길을 따라 이어진 파이프라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로쇠 수액을 받는 파이프라인이었다.
반들반들한 길도 고로쇠 수액 때문에 주민들이 계속 드나든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빗점골 상단뿐이랴.
단천골이며 대성골 등등 지리산 골짜기 어디인들 고로쇠 수액 채취하지 않는 곳이 과연 있기나 하는지 의문이다.
지리산 그 깊고 험한 곳까지 이어진 고로쇠 수액 채취 시설물(?)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고로쇠 채취 현장이 보여주는 지리산 주민들의 ‘치열한 삶’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개방등산로니 입산통제니 어쩌구 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나무의 수액은 사람이나 동물의 혈액과 같을 것이다.
모진 겨울철을 겨우 넘기고 봄맞이 채비를 하려는 고로쇠나무에 상처자국을 내어 그 수액을 받아내면 나무가 성장하는데 지장은 없는 것일까?
산림청 등 관계기관이 조사한 바로는 큰 지장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날 나무 둥치에 V자 형태로 도끼나 칼자국을 내어 울퉁불퉁하게 그 상채기를 남긴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드릴로 구멍을 뚫어 흉칙한 모양의 상처자국은 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액 채취가 나무의 생장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현행 산림법에는 가슴 높이의 지름 30㎝ 이상인 나무는 2개, 10㎝ 이상인 나무는 1개밖에 구멍을 뚫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몇 해 전 거제환경운동연합이 현장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3~4배 이상 초과한 수액 채취 구멍을 뚫은 것으로 드러났다.
산림청이 수액을 채취한 구멍에 포르말린 등 살균제 소독을 의무화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거제환경운동연합이 4년 동안 고로쇠나무 군락지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나무가 고사 직전에 있었다"고 밝혔다.

고로쇠 수액 채취로 지리산 주민들이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이 수액 채취가 지리산 주민들의 치열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도 주목이 되고도 남는다.
어디 그뿐이랴, 수요 없는 곳에 공급이 없다고 했다. 지리산을 찾아 이 수액을 마시며 뿌듯한 기분을 누리는 이들에게도 고로쇠는 복음과도 같이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수액 채취로 나무에게 폐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