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는 '도깨비 방망이'?(1)

by 최화수 posted Feb 09,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는 19일이 우수(雨水), 다음달 5일이 경칩(驚蟄)이니 벌써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리산에서 우수 경칩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로쇠 수액이다. 지리산의 봄은 얼음 깨지는 소리가 아니라 고로쇠나무들이 수액을 끌어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제부터 지리산 자락 마을마다 고로쇠 수액 채취 열기가 봄을 앞질러 올 터이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의 활엽수로 키가 20m까지 자라며 5월에 연한 황록색의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 전역에 고루 분포한 이 나무의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해 잘 갈라지지 않아 판목으로 쓰인다.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우수와 경칩을 전후하여 채취하는데, '만병통치약' 또는 '신비의 약수'라며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고로쇠 약수가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긴 겨울잠을 깨우는 것이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시기에는 지리산 골짜기마다 수액을 마시러 온 사람들로 파시를 이룬다. 사람들은 이 수액을 되도록이면 많이 마시려고 구들짱을 쩔쩔 끓게 달군 방을 얻어 민박을 하면서 닭, 염소고기 등을 포식한다.
지리산 농가들은 고로쇠 수액을 파는 데다, 민박료를 받고 음식까지 팔게 되어 일거삼득인 셈이다.
지리산 주민들에게 최대의 수익을 올려주는 것이 바로 이 고로쇠 수액이다. 마을 단위로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지리산 주민들에게 고로쇠나무는 '도깨비 방망이'일까? "돈 나와라 뚝딱" 하니 돈이 쏟아지는 것이나 같다. 다른 곳과 달리 지리산에선 특별히 그렇다.
고로쇠나무는 산에서 저절로 자란다. 나무 둥치에 칼자국이나 구멍을 뚫어 먼저 수액을 받는 사람이 임자다.
요즘은 드릴로 구멍을 내어 코르크마개와 PVC 파이프로 연결하여 집수정으로 대량 채취한다.
심지어 그 파이프를 집까지 연결, 수돗물 받듯이 거둬들이는 이들도 있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염산이온, 황산이온, 마그네슘, 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의 40배에 이른다. 성분 대부분이 이온화 돼 있어 체내 흡수가 빠르다.
흔히들 '만병통치약'으로 일컫고 있지만, 산후통 고혈압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피부병과 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당이 질척이도록 많이 마셔야 효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토양 성분이 좋은 청정한 심산유곡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잘 정제된 천연 수액이니, 그것만으로도 영험한 약수라 할 만하다.

고로쇠는 뼈에 좋다는 골리수(骨利水)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있지만, 신라의 도선국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광양 백운산에서 도를 닦던 그이가 이른 봄이 되어 수도를 끝내고 일어서려고 하니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다 그 가지를 부러뜨렸고, 나무의 상처에서 떨어지는 수액을 마시고 무릎을 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골리수라는 이름이 생겨났는데, 이를 사람들이 고로쇠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고로쇠 수액의 효능을 자랑하는 얘기 가운데 아주 걸작이 있다.
"지리산골(마천 등구마을)에 살던 변강쇠가 옹녀의 진한 사랑 공세에 시달려 초죽음 상태에 이르렀는데, 고로쇠 수액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것이다.
일부러 웃자고 하는 소리이리라. 사실 고로쇠 수액이 특정 질환에 효능이 있다는 것은 민간속설에 불과하다.
'만병통치약'은커녕 당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는 오히려 해롭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고로쇠나무는 날이 갈수록 도깨비 방망이의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로쇠 수액을 이용한 각종 식음료가 개발되어 엄청난 값에 팔리는가 하면, 고로쇠 수액이 많은 사람들을 지리산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고로쇠가 지리산의 봄맞이를 위해 도깨비 방망이의 선심을 한바탕 베풀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무둥치에 칼자국을 내거나 구멍을 뚫어 그 수액을 사람들이 뺏어먹어도 좋은 일인 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