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은 차, 한나절은 시..."

by 최화수 posted Jul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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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법공 스님, 아래는 벽사 김필곤 시인 부부. 지난 7월 5일 화개동천 섬등에서 열린 법공스님의 시조집 <세이암에 꽃이 피면> 출판기념회 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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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차 한 잔
밤에는 잠 한 숨
푸른 산과 흰 구름
함께 무생사(無生死)를 말하세.

지리산 화개동천에 첫 발걸음을 했다가 신흥사 스님에 의해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 득도한 서산대사가 이 골짜기의 차를 마시며 지은 시의 일부이다.

화개동천은 40~50리 골짜기는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 차밭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와 그것을 이곳에 심게 했다는 것이 차 전래 정사(正史)이다.
한편 수로왕의 7왕자가 외숙인 보옥선사를 따라 운상원에서 수도할 때 심은 차의 유종(遺種)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화개차라는 설화도 있다.

신선이 살만한 땅이라는 화개동천에서 ‘낮에는 차 한 잔, 밤에는 잠 한 숨’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시인이 아닐 수 없겠다.
실제로 현재의 화개동천에는 남다른 경지의 다인(茶人)이자 시조시인으로 일가를 이룬 이가 세 분 있다. 벽사 김필곤, 법공 스님, 그리고 강기주 시인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시대의 서산대사나 지금의 이 시조시인들이나 호중별유천지(壺中別有天地) 화개동천의 삶과 노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듯하다.
읊고 있는 시의 내용부터 비슷하다.
‘달빛초당(茶仙草堂)’ 오두막의 벽사 김필곤 시인은 자신의 하루 하루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나절은 시를 쓰고
한나절은 차를 따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김 시인은 오두막 뒤편 ‘문덕산 구폭동’을 차의 성지로 가꾸고 있고, 차를 직접 만들고 있다.
김 시인은 차전문 계간지 <茶心> 편집주간과 동다문화연구소장, 부산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역저 <新東茶頌>을 펴냈고, <달빛차 끓이면서> 등의 시조집을 펴냈다.
  
법공 스님도 입산하기 이전에는 부산에서 차 전문잡지와 불교신문 제작과 보급에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법공 스님은 부산의 중심가 광복동에 전통차 전문찻집 <차마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화개동천 모암마을에서 ‘끽다거 찻집’을 열고 있는 강기주 시인은 계간지 <하동차문화>를 십수년째 줄기차게 펴내고 있다.
강 시인은 매년 6월 첫째 주말 화개동천에서 <하동차문화 한마음 축제>를 열어오고 있기도 하다.

세 분의 시조시인이 서로 닮은꼴이다.
걸어온 길이나 나아가는 길 또한 그러하다.
화개동천 맑은 물이 흘러흘러 무엇을 노래할까?
그것은 세 분의 시조 속에 은은한 차향기가 되어 되살아날 것이다.
화개동천은 차의 성지이자 시조의 성지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벽사 김필곤 시인은 우리에게 지리산으로 오라고 말한다.
지리산으로 와서 껍질 좀 훌훌 벗고 가란다.
김 시인의 ‘지리산가’의 한 대목은 이러하다.
    
오라, 지리산으로 오라
어중이 떠중이들 다 지리산으로 오라
다 지리산으로 와서
껍질 좀 훌훌 벗고 가거라
청학동 폭포를 맞고
마음의 때 좀 벗고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