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10리 벚꽃 터널'?

by 최화수 posted Mar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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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자리한 화개장터는 영호남을 이어주는 가교였다. 길은 육로와 수로로 연결이 되고, 장터를 끼고 섬진강 나루터가 있다...남해의 해산물과 지리산 토산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구례길에서 횡이짐장수들과 섬진강 하류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해물장수, 그리고 지리산 산간 주민들이 이 장터에 다 모였다.'(필자의 졸저 <지리산 반세기>)

'각설이패가 설치면 장은 파장이 되어갔다...화개장에 남사당패 각설이패 문둥이패가 모여들게 된 것도 이곳에 인심 후한 남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슬프게 살다 갔지만, 그때 불렀던 장타령의 파편들은 아직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화개골은 귀족문화와 함께 각설이 타령 등 밑바닥 문화 등을 함께 지켜온 곳인지도 모른다.'(김경렬 지음 <다큐멘터리 지리산>)

전국 곳곳에 수많은 장터가 있지만,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의 화개장터 만큼 많은 사연이 묻혀 있는 곳도 드물다. 지리산 화개동천의 입구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동포구 80리를 황포 돛단배들이 여기까지 거슬러 오르며 소금과 어물들을 실어날랐다. 지금은 강 건너 마을인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를 줄을 당기며 건너는 나룻배 하나만 있다.

이 작은 나룻배를 대신할 '화합대교'가 지난해 6월29일 기공됐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이 교량은 너비 13.5미터, 길이 358.8미터의 커다란 아치형으로 307억원을 들여 내년에 완공한다.
화개장터의 옛 영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시절의 장터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한 때문인지 관청에서 옛 장터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일치고는 좀 우스꽝스럽다.

화개장터는 사라졌지만, 그 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진 '10리 벚꽃 길'은 한때 최고의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도로를 온통 뒤덮은 '벚꽃 터널'이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상춘객을 불러모았던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이곳에 벚꽃이 만개하는 것과 때를 맞추어 '화개 벚꽃 축제'를 벌이고 있다. 올해의 벚꽃 축제는 4월7, 8일 이틀동안 화개장터 일대에서 열린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화개동천 입구 10리를 분홍빛 꽃바다에 잠기게 하는 '화개(또는 쌍계사) 10리 벚꽃 길'은 지난 87년 내무부가 펴낸 <한국의 가로수>에 전국의 가로수 가운데 유일하게 양면 대형 화보로 실렸다.
벚꽃 가로수는 전국 곳곳에 너무 흔하다 싶을 만큼 많다.
하지만 화개 10리 벚꽃 길은 다른 어느 곳보다 조성 역사가 오래 된다는 점에서 한층 더 유명세가 따랐다.

70여년 전인 지난 1928년 이소영(李韶榮)이 하동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화개동천이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풍속이 순후하며, 물산도 풍부한 것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는데, 군수로서 현지를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하지만 화개동천에는 물산을 수송할 도로가 나있지 않았다.
그는 김진호(金鎭灝) 화개면장을 불러 고승의 산방에서 하룻밤 동숙하며 화개~쌍계사의 도로 개설을 권했다.

김진호 화개면장은 "면에 재정이 없고, 면민들도 여력이 없어 방도가 없다"고 했다.
군수는 "옛날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을 '몽념장군의 돌을 채찍질한 기술이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의 힘으로 된 것으로 말한다. 면장도 사람의 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독려했다.

면장은 마음을 고쳐먹고 2년이 넘게 산을 자르고 골을 메워 마침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도로를 완성했다.
1931년에 개설된 이 10리 길에 하동군내 유지들로부터 비둘기가 모이를 취하듯 재물을 조금씩 거두어 첫해에 복숭아 200여 그루와 벚꽃나무 1,200여 그루를 가로수로 심었다.

이러한 내용은 최근 발견된 이소영 군수의 '화개동천기'에 기록돼 있다. 그러니까 화개 10리 벚꽃 길은 7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화개동천 사람들의 땀과 하동군민들의 정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심은 벚꽃나무들은 지금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
지난 80년대 후반 왕복 1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확포장하면서 한쪽편 벚꽃나무를 잘라내버린 것이다.
'벚꽃 터널'의 환상적인 아름다움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이 도로 옆으로 음식점 모텔 따위가 들어서 지저분하기까지 하니...!
도로 확장으로 계곡미를 망쳐놓았고, 거기에다 온갖 상혼이 10리 얼룩으로 자리한다.
자동차가 늘어난 만큼 새로운 자동차 도로는 화개천 반대편으로 개설해도 된다.
실제 근래 화개천 건너편을 따라 새 도로를 내기까지 했다.

화개 10리 벚꽃 터널을 옛 모습 옛 정취 그대로 살려놓고 마차(馬車)만 다니도록 했다면 그 자체가 지리산 국립공원의 이미지나 화개동천의 명성에 걸맞는 명소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자연과 옛 사람들의 정성까지 함부로 깔아뭉개버린 이 현실이 안타깝다.  
(2001년 3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