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리산

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최화수 프로필 [최화수 작가 프로필]
조회 수 422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우리들의 산> 1990년 4월호와 1991년 11월호 표지. 이 표지에 실려 있는 [윤석화 모노드라마 <목소리> 초청공연] 등은 당시 재정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들의 산'의 딱한 실상을 엿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
<우리들의 산> 1990년 4월호(통권 제36호), 1991년 11월호(통권 제50호)의 표지를 한번 살펴보자.
표지에 일부러 수록한 글들이 지리산 잡지를 표방한 산악회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곳에 옮겨놓은 책 표지 사진에서 일별이 된다.

통권 제36호 표지에는 [윤석화 모노드라마 <목소리> 초청공연(4월27~29일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이, 통권 제50호 표지에는 [김진희, 조셉 첼리 무세계 즉흥연주 / 매혹의 리릭 테너 김태현 독창회 / 김지숙 모노드라마 <로젤>(여자살이)]를 싣고 있다.
얼핏 보면 무슨 공연 안내 책자와도 같다.

<우리들의 산>은 산악동호인들을 위해 산, 특히 지리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달 산악회지 형식의 책을 엮어내는 것이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후원회원들의 결속을 위해 매주 주말에 안내산행을 가졌다.
그밖에 여름철 등에는 지리산에서 후원회원 가족 수련회 등을 열고는 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들의 산>에서 윤석화의 모노드라마 공연이며, 리릭 테너 김태현의 독창회 등을 개최한다는 것일까?  
책을 펴내는 데는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했다. 후원회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책 한 번 펴내는데 인쇄비만 수백만 원이었다. 두 번, 세 번 그 비용을 미루다 보면 빚이 천만 원대로 껑충 뛰었다.

이런 재정부담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이 곧 ‘윤석화 모노드라마 초청’과 같은 일련의 공연이었다.
전문 공연기획단체도 아니면서 공연 흥행에 도전한 것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꿈을 접고 두 손을 들면 그것으로 좌절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었다.

초청공연이란 그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었다. 개런티를 비롯하여 대관료 등등 온갖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어 초청공연 모험에 도전했다.
필자가 문화부기자를 한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당시 인기 절정의 윤석화 모노드라마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공연잡지 ‘객석’ 부산지사장으로 일하던 박준우라는 젊은이가 필자와 친하게 지냈는데, ‘우리들의 산’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윤석화의 부산 공연을 연결해 주었다.
또한 부산문화방송국 프로듀서이자 음악해설가로 명망이 높았던 곽근수 님이 ‘우리들의 산’을 위해서 최고 기량의 성악가들을 초청하여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개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초청공연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개런티와 초청연기자의 숙식비도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한 오페라단 관계자는 음악회 입장권을 팔아주겠다며 표를 가지고 간 뒤 돈도 표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기까지 했다.

‘우리들의 산’은 공연기획단체가 아니었다.
다만 책자 발행비, 그 재정 뒷받침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청공연행사의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초청공연을 하여 밀린 인쇄비 등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사실 하나의 공연행사를 갖는 데는 수천만 원의 돈이 들어갔다. 인쇄비도 몇 달치나 밀려 있는 주제에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나는 아내에게 강요하여 빚을 내서 그 돈을 댔다.
흥행이 성공하면 인쇄비도 갚고, 그 다음으로는 빚을 갚는 데 썼다.

그런데 이런 일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묘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화수가 돈을 벌기 위해 별짓을 다한다거나, 아주 떼돈을 벌었다는 등등의 벼라별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인쇄비에 보태라며 후원금 한 번 제대로 낸 일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 ?
    moveon 2009.11.30 18:50
    사람들이란. . .!!!!! 늘 어리석은 자들이 있게 마련이라서. . 노고는 치하하기 어렵고 소문은 힘안들이고 만들기 쉽고. . . 드러난 이면의 노고가 짐작됩니다.
  • ?
    최화수 2009.12.01 11:33
    20년 전의 일이니까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한없이 쓸쓸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20년이 지나니 웃으며 얘기를 할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1.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9)

    1988년 이태(李泰) 님이 펴낸 빨치산 투쟁 실록인 <남부군(南部軍)>(사진 위쪽)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이 책을 의식하여 <지리산 365일>(4권 사진)은 지리산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부각하고자 했다. ............................
    Date2009.05.08 By최화수 Reply7 Views1602 file
    Read More
  2.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8)

    사진은 1990년 8월25일 초판을 펴낸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3권. 이 책의 1~4권 내용은 1989년 봄부터 국제신문에 225회에 걸쳐 매일 연재한 것을 자구 수정 없이 그대로 책에 옮겨 담은 것이다. ........................................................
    Date2009.04.23 By최화수 Reply3 Views1395 file
    Read More
  3.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7)

    필자는 지난 1980년대에 <우리들의 산>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산악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매월 <우리들의 산>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의 대부분은 지리산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이 모임이 어떻게 특이했으며, <우리들의 산> 책자가 어떠했...
    Date2009.03.29 By최화수 Reply2 Views1669 file
    Read More
  4.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6)

    사진 위는 1990년 5월에 펴낸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1권 표지, 아래는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저자인 김경렬 님 옹 모습이다. ...........................................................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1, 2>는 천 년을 훌쩍 뛰어넘...
    Date2009.03.07 By최화수 Reply12 Views1953 file
    Read More
  5.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5)

    위쪽은 김경렬 옹이 1988년에 펴낸 <다큐맨터리 르포 지리산> 2권 표지이며, 아래 사진은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으로 김경렬 옹이 1960년 2월 구례군 광의면에서 촬영한 것이다. 겨울방학 기간에 학생들이 지게를 지고 줄지어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모습이...
    Date2009.02.23 By최화수 Reply6 Views1402 file
    Read More
  6.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4)

    1987년 11월에 펴낸 김경렬 옹의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1>의 표지(사진 위). 아래 사진은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2>에 실려 있는 '화개동천의 나무다리'로 1959년 2월에 저자가 촬영한 것이다. 모든 시설물을 시멘트로 뒤덮은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는 ...
    Date2009.02.14 By최화수 Reply2 Views1601 file
    Read More
  7.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3)

    위의 사진은 지리산 최초의 인문지리지 <지리영봉>을 펴낸 이종길 님. 1985년에 펴낸 책의 지은이 소개 사진을 옮겨온 것이다. 아래 사진은 이종길 님이 가장 먼저 그 신비로움을 소개한 쌍계사 국사암의 사천왕수(필자 사진). ................................
    Date2009.02.04 By최화수 Reply4 Views1621 file
    Read More
  8.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2)

    이종길 님이 1985년 10월에 펴낸 지리산 최초의 인문지리지 <지리영봉(智異靈峰)>. '발길따라, 느낀대로, 들은대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부산의 도서출판 일중사에서 펴냈다. ..................................................................... 1982...
    Date2009.01.23 By최화수 Reply2 Views1501 file
    Read More
  9. '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1)

    사진은 2000년 8월31일 돌베개에서 펴낸 최석기 외 옮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한문으로 씌어진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한글로 옮겨 엮은 것이다. ............................................................. ‘지리산 이야기’를 들려주...
    Date2009.01.09 By최화수 Reply0 Views1635 file
    Read More
  10. 성락건의 '지리산 신비 안내서'(4)

    성락건 님의 오두막 '나무달마살래'의 '다오실(茶悟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다관(茶罐)과 차숟가락. 다관은 티벳과 중국 고원지대에서 성락건 님이 직접 수집한 것들이고, 차숟가락은 성락건 님이 지리산 계곡에 떠내려오는 나무뿌리로 손수 다듬은 것이다...
    Date2008.12.07 By최화수 Reply2 Views1442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