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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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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산> 깃발이 백두산 천지에서, 또 지리산 치밭목 산장 앞에서 펄럭이고 있다. '우리들의 산' 후원회원들이 백두산 등정에 나서면서 가지고 간 깃발, 그리고 '우리들의 산 지리산 종주 팀'이 치밭목산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모습을 책자 표지에 담았다.
...............................................................
우리들의 산, 특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펴내는 책자라면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담거나, 흥미와 감흥을 안겨주는 취재 기사 또는 기고문 등이 담겨 있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직업적으로 펴내는 전문출판사도 전문잡지사도 아니면서 그런 책무를 완수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초기에 나온 <우리들의 산> 가운데 아무 책이나  한 권을 집어 들어보자.
1988년 2월호(통권 11호)이다. 이 책은 어떻게 편집기획을 했을까?
책을 열어보니 먼저 ‘기획취재 / 지리산 노고단(老姑壇)’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기획에서 ‘편집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지리산 노고단이 달라졌다. 3층 벽돌건물의 호화산장이 개관되고, 천은사~노고단의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수많은 행락객이 노고단을 뒤덮게 된 것과는 반대로, 16년간 노고단을 지켜온 기존 노고산장이 헐리고 관리인 함태식(咸泰式) 씨도 노고단을 떠나야 할 운명에 놓였다. <우리들의 산>은 달라진 노고단을 현장취재했다.’

노고단 기획취재는 다음과 같이 세 꼭지로 구성돼 있다.
‘3층 벽돌 호화산장 개관, 지리산 노고단이 달라졌다’
‘함태식 씨, 노고단을 떠나야 하나’
‘노고단의 등대지기 함태식 씨’  

지리산 관련 기사도 시의적절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어야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터였다.
위의 기획 특집은 성삼재 관통도로 개통과 함께 3층 벽돌 건물로 새로운 산장 시대를 열게 된 노고단과, 노고산장에서 밀려나 피아골산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함태식 님의 입장 등을 집중 조명했다.

지리산 현장 취재 기획 특집은 벽소령의 여름, 청학동과 고운동, 대성골 산림왕 임봉출 옹, 서북능선 르포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벽소령의 여름 기획 특집은 당시 필자가 한 과목 강의를 맡았던 것을 계기로 부산여대 국문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취재팀이 특별히 수고를 해주었고, 서북능선 르포는 ‘우리들의 산 르포 팀’이 담당했다.
‘우리들의 산 르포 팀’은 지리산 기획취재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됐는데, 그룹산행을 하면서 글을 나누어 썼다.

그 무엇보다 <우리들의 산> 책자 내용에 힘을 보태준 것은 지리산에 정통한 원로 산악인들의 기고문이었다.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권을 펴낸 김경렬 님은 ‘어제의 지리산’ 사진을 시리즈로 싣는 것과 함께 ‘지리산 기행기’를 연재했다.
또 지리산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한 성산 씨가 ‘추억의 산행수첩’을, 불일폭포의 변규화 님이 ‘지리산 일기’를 연재했다.

<우리들의 산>은 후원회원들이 내는 회비(특별회원 연간 10만원, 일반회원 연간 1만원)로 만들다 보니 재정 사정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귀중한 기고문조차 원고료를 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실었다.
오직 하나의 예외가 있었는데, 성산 씨에게만은 당시 1회분 원고료로 10만원을 드렸다.
그이의 처지가 좀 어렵기도 했고, 그이의 지리산 이야기가 우리들에겐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산악인 성산 추억의 산행수첩’은 초기 지리산 등정사를 비롯하여 지리산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삽화들을 담고 있어 아주 흥미진진했다.
법계사 초막과 팔선주 이야기를 비롯하여 기업형 도벌꾼 이야기, 목마로(木馬路)와 도벌 댐, 그리고 칠선계곡 학술조사 활동 등을 재미있는 일화와 곁들여 엮어나갔다.
성산 씨의 이 글 가운데 눈길을 끌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대목들도 많은데, 거기에 살을 덧붙인 글이 근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펌’ 시비를 낳기도 했다.

불일폭포의 신선 변규화 옹의 ‘지리산 일기’도 연재를 거듭하면서 흥미를 더했다.
김경렬 님의 지리산 옛 모습을 담은 일련의 사진들 또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김 옹은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했던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권의 내용 가운데 수정보완할 부분을 다시 연재했다.
그이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3권을 펴낼 원고를 싣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건강 문제로 그 뜻을 접고야 말았다.  
  • ?
    선경 2009.11.15 05:23
    20년이 훌쩍 지나 빛바랜 표지사진속에 청춘의 젊은산행인들도
    지금쯤엔 중후한산행인들로 추억의 산행수첩을
    들여다 보시겠지요
    우리들의 산행지가 지금까지 계속 되었더라면
    살아있는 생생한 지리역사가 되었을텐데요
    정말 아쉬움이 많네요
    하지만 여산선생님이 계셔서 지나간 지리 역사의 한장면도
    후배들에게 보여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
    최화수 2009.11.16 16:19
    여기에 사진을 실은 <우리들의 산> 표지를 보니까 1990년, 1991년으로 표기가 돼 있네요.
    이 책으로만 보아도 그 사이 20년, 1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책들을 만드느라 빼앗긴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당시 그 일을 하면서 경험한 갖가지 애환이 한편으로는 그립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 ?
    moveon 2009.11.21 19:38
    열정의 순수함이 응집된 역사를 더듬는 행운에 행복해 하겠습니다.
  • ?
    최화수 2009.11.22 17:14
    지나간 일이지만, 되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개인적인 일을 여기에 써도 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지리산 관련 이야기가 많은 것을 핑계삼아 봅니다.
    말을 하자면 너무 많지만, 다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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