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잡지(?) <우리들의 산>(5)

by 최화수 posted Sep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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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통권 20호 특집호로 꾸민 1988년 11월호 <우리들의 산>과 부산여대 취재팀의 지리산 그룹취재를 특집으로 담은 1989년 9월호 <우리들의 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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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들의 산> 책자 발행에 너무 쉽게,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뛰어들었다.
뭘 몰라서, 아니 미쳐서 그 일을 시작했다고 한 말이 옳다.
나는 무엇보다 계산을 할 줄 몰랐다.
거의 매월 책을 펴내려면 얼마만한 돈이 들어가는지 그 계산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PEN산악회에서 펴낸 <山에 山에>에 대한 미련과 오기(傲氣)가 함께 작용했던 것 같았다.

<우리들의 산>은 1987년 1월호로 첫 햇빛을 보았다. 이 창간호를 시작으로 격월, 또는 월간으로 책이 계속 펴내졌다.
그런데 그 발행, 편집인인 필자의 신분은 어떠했던가?
당시의 나는 부산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기자생활을 국제신문에서 시작했지만,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처로 회사를 옮겨 근무해야 했었다.

부산일보사 밥을 먹으면서 어떻게 <우리들의 산>과 같은 월간지를 펴낼 수 있었을까?
그 또한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저지른’ 일이었다.
아무리 산악회지 형태의 비매품이라고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회사에서 결코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에도 어떤 한계선(限界線)이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해고(解雇)’와 같은 중징계를 내렸어도 나로선 할 말이 없었을 터이다.

‘山에 山에’를 펴낼 때도 비공식적인 루트로 편집국장의 ‘경고 메시지’를 받은 바 있었다.
그도 그렇지만, 나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우리들의 산>을 위해서라도 나는 회사 일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부산문화이면사’와 ‘기인(奇人)열전’과 같은 시리즈 기사를 썼다. 이런 기획기사는 분량이 방대하여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그 때는 원고를 육필(肉筆)로 썼는데, <우리들의 산> 글까지 쓰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

<우리들의 산>은 그냥 아무 원고나 묶어서 펴내도 되는 책이 아니었다.
무가지(無價誌)로 배포하는 것이지만, ‘책의 내용’으로 후원회원을 끌어 모아야 했다.
일반 후원회원은 연간 1만 원, 특별후원회원은 연간 10만 원의 후원회비를 내도록 돼 있었다.
산악회와 같은 조직을 갖춘 상태에서 펴내는 책이 아니었으므로 말이 후원회원, 또는 후원회비이지, 실제로는 정기구독료와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산> 책자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가 명백해진다.
산악애호가들에게 산악 관련 정보와 상식, 거기에다 재미와 유익함을 함께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만 원이든, 1천 원이든 누가 이 세상에 그저 버리듯이 후원금을 낼 이가 어디 있겠는가?
편집 기획에 대한 고민은 일반 상업잡지에 못할 것이 없었다.
<우리들의 산>은 매호마다 특별히 눈을 끌만한 기획기사를 싣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테면, 1987년 5월에 펴낸 통권 제4호에는 ‘지리산의 이샹향 목통마을’을 현지 취재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 때까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목통마을의 흥미로운 얘기들이 <우리들의 산>에 의해서 처음으로 외부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지리산의 이샹향 목통마을’ 특집은 ‘토종벌꿀의 신흥왕국’, ‘부산사람에서 목통사람 된 양영일’, ‘목통총각과 여수처녀의 큐피터 화살’ 등 풍성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목통마을에 대한 흥미로운 글은 나중에 필자가 국제신문사로 옮겨 <지리산 365일>을 연재할 때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
또한 이 특집기사 취재가 계기가 되어 ‘우리들의 산 지리산 오두막’ 짓기 운동 등 부수적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는 했다.
하지만 ‘목통’ 특집기사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우리들의 산>은 제2, 제3의 ‘지리산 목통마을’ 기사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