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잡지(?) <우리들의 산>(2)

by 최화수 posted Jul 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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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PEN산악회의 회지 '山에 山에' 제3호와 제4호 표지 모습이다. 이 회지 1~4권은 거의 1년 사이에 펴내졌는데, 일부 회원의 이의 제기로 4호를 끝으로 종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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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PEN산악회는 특색 있는 산행을 자랑으로 삼는다.
무턱대고 산을 찾아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나 자취를 추적해서 눈으로 확인하며 배우고 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1984년 9월 1일자 중앙일보는 창립 두 돌 기념잔치를 가진 부산PEN산악회를 ‘동호인’란에 박스 기사로 소개해주었다.
창립 두 해 동안 100회 산행기록을 가진 것도 대단하지만, 독특한 산행문화를 일구어가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부산PEN산악회는 매스컴의 이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창립 사실을 부산일보가 레저면 톱기사로 보도했고, KBS-TV 부산방송본부는 불일폭포 산행의 모든 과정을 녹화하여 방영했다.
부산PEN산악회 관련 인사들에 대한 TV나 라디오의 전화 인터뷰가 이어졌고, <월간 산>을 비롯한 산악잡지 등에도 소개 기사가 실렸다.
산행 경력은 일천했지만, 창조적인 산행 문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산악애호가는 물론,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부산PEN산악회는 부산소설가협회의 제1회 여름소설학교 개강이 계기가 되었다.
부산소설가협회 회원들이 출범시켰기 때문에 PEN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그러나 몇 달 가지 않아 소설가들은 거의 빠져나가고 일반산악동호인으로 멤버가 바뀌었다.
어쨌든 이 산악회는 원래 지향하고자 했던 새로운 산행문화를 계승할 필요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이 산악회를 이끌었던 나는 PEN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악회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회지 ‘山에 山에’ 창간호를 1984년 3월1일에 펴낸 것이다.

창간호를 낸 두 달 뒤, 84년 5월에는 2호를, 다시 그 해 11월에는 제3호를 잇달아 펴냈다.
다음해인 85년 7월에는 ‘山에 山에’ 제4호가 나왔다.
다른 산악회의 경우 1년에 회지 한 권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데, 우리는 무려 4권이나 엮어낸 것이다.
이 회지 ‘山에 山에’ 덕분에 인터넷이 없던 당시 부산PEN산악회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회원으로 가입하는 산악동호인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산악회지로 하여 산악회의 명성이 높아지고, 창조적인 산행문화를 열어갈 수 있게 된 것은 큰 보람이었다.
그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동분서주한 끝에 어렵게 회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회원들이 책을 만드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회지 발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 회원도 있었다.
“그 따위 회지를 무엇 때문에 만드느냐?”
회지 발행과 편집을 도맡아 하고 있던 나로서는 참으로 황당했다.

회지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산악회지의 전형’을 보이고자 했으므로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던 이가 “왜 회지냐?”고 빈정거리니 참으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말대꾸를 하는 대신, 부산PEN산악회의 모든 자리는 물론, 회원도 탈퇴했다.
PEN산악회에서의 이 경험이 나에게 <우리들의 산>을 85권이나 펴내는 지혜(?)를 안겨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