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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마당>최화수의 지리산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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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펴낸 부산PEN산악회 회지 <山에山에> 창간호 표지(사진 위)와 같은 해 5월에 펴낸 <山에山에> 2호 표지. 2호 표지에는 [지리산 특집] "가슴을 태우며 우리는 가리라"는 글이 천왕봉을 배경으로 새겨져 있다. 2호의 이 표지 사진은 83년 5월22일 '천왕봉' 표지석을 세운 아주 뜻깊은 날로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당시의 등산 복장을 보면 요즘과 같은 검은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

<우리들의 산>!
1987년 1월 창간호가 햇빛을 보게 되었다.
<우리들의 산>은 부산에서 펴내는 ‘부정기 간행물, 비매품’이었다.
출판회사나 무슨 기업체에서 펴낸 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산악회가 펴내는 산악회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책자는 1995년 통권 85호까지 발행이 되었다.

<우리들의 산>은 ‘부정기 간행물’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거의 매월 빠짐없이 펴내졌다.
산악잡지 형식의 이 책은 매호 100쪽 안팎으로 3000~5000부씩 찍어 후원회원을 비롯하여 일반 산악동호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우리들의 산>은 특히 지리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때문에 ‘최초의 지리산 전문 잡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상업잡지도 아니었고, 산악전문잡지와는 그 수준에서 비교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산>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산악동호인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주목이 되었다.
무엇보다 지리산 관련 유용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하여 권위를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들의 산>은 그 나름대로 존재 가치를 당당하게 부각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나올 때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의 시기였다.
전국에서 이 책의 후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그런 시기적 특성 때문이었으리라.

<우리들의 산>이 ‘지리산 전문잡지’라고 해도 좋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우리들의 산>은 지리산 관련 글들을 참으로 엄청나게 많이 실었다.
그런 글 가운데는 지리산의 초기 등산사를 장식한 인사들의 귀중한 증언들도 적지 않다.  
<우리들의 산>에 실었던 글에 취재를 더하여 재구성한 글이 근래 한 지리산 커뮤니티 사이트에 실리고, 그것을 허가 없이 퍼갔다고 하여 야단치는(?)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필자는 <우리들의 산>을 펴낸 당사자로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통권 85호까지 펴낸 <우리들의 산>이 지금은 쓸쓸하게 망각의 늪으로 묻혀가고 있다.
인터넷 이전의 시대였으므로 이 책에 실렸던 방대한 글들도 누렇게 빛바랜 종이와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산>에 담긴 100% 육필(肉筆) 원고 그 한 줄 한 줄마다 신선한 정감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지울 수가 없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씨줄 날줄로 베를 짜듯이 엮어낸 글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런데 상업잡지도 아니고 산악회지도 아닌 <우리들의 산>이 어떻게 거의 달마다 3000~5000부씩 펴내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창간호가 종간호가 곧잘 되던 부산의 출판 현실에서 어떻게 통권 85호까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우리들의 산> 발행인, 편집인은 최화수였다.
그 책을 그렇게 만들어 펴내기 위해 필자는 ‘별의별 짓’을 다해야 했다.

<우리들의 산> 발행이 멈춘 날로부터 어느 사이 1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제는 그 책을 어떻게 펴냈으며, 어떤 ‘별의별 짓’을 했는지도 밝혀야 될 것 같다.
<우리들의 산>을 엮고 펴낸 것은 최화수였지만, 책이 나오도록 힘을 보태준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고마운 분들 가운데는 ‘지리산’에 살고 있거나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다수이다.
그 사실 또한 <우리들의 산>에는 큰 행운이었다.

<우리들의 산> 책자 발행 이야기를 하려면 그에 잠깐 앞서 <山에山에>라는 책 이야기부터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山에山에>는 부산PEN산악회 회지로 1984년 3월 창간호가 펴내졌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음해 4월 통권 4호로 종간이 됐다.
<山에山에>도 최화수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둘러싸고 빚어진 일련의 소동이 <우리들의 산>을 변칙적(?)으로 펴내게 만든 ‘지혜(?)’를 제공한 셈이다.

부산PEN산악회는 1982년 8월29일 지리산 뱀사골을 찾는 것으로 창립이 됐다.
그 해 ‘여름소설학교’를 한 해수욕장에서 열었는데, 취재를 갔던 필자가 숲속 강의를 곁들일 수 있는 산악회를 결성할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 산악회는 그 해 12월 일반 등산애호가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는데, 필자가 등반대장을, 그 다음해 11월에는 총무를 맡게 되었다.
산악회를 실직적으로 이끌던 필자는 1984년 3월 회지 <山에山에> 창간호를 펴냈다.
  • ?
    선경 2009.06.26 09:14
    지리산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시는듯
    참 흥미롭습니다
    책표지 또한 그옛날 산행모습들이 추억이 새록 새록~떠오릅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 ?
    최화수 2009.06.27 18:57
    지나간 일을 이 쯤에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로 들어도 좋고, 지난 날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하며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최화수 개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실 고백이기도 합니다.
    선경님에게 좋은 여름 이어지기를 빌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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