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이태(李泰) 님이 펴낸 빨치산 투쟁 실록인 <남부군(南部軍)>(사진 위쪽)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이 책을 의식하여 <지리산 365일>(4권 사진)은 지리산의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부각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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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지고 있는 <지리산 365일>은 1~4권이 한 권씩밖에 없다. 꽤 많이 갖고 있던 것을 인터넷이 보급된 뒤 곳곳에서 요청이 들어와 죄다 기증해버렸다.
제4권의 인지를 붙인 곳에는 ‘1991년 5월 20일 초판, 1992년 10월 25일 중판 발행’이라고 씌어 있다.
서울의 도서출판 다나에서 이 책을 펴내준 것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상황은 좋지 않다. 출판사가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끝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리산 365일>은 필자가 재직했던 국제신문에 220여 회에 걸쳐 연재를 했던 것을 그대로 책에 옮겨 담아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글을 육필로 써나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독자의 눈에는 도무지 약도(略圖) 같지 않은 부실한 약도를 그려 넣었다. 그것이 책에 그대로 실렸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 365일> 책자 표지에는 •지리산 사람 •지리산 마을 •지리산 산길 •지리산 역사라는 부제목이 달려 있다.
사실 필자는 지리산 사람과 지리산 마을, 지리산 산길, 그리고 지리산 역사를 이 글에 담고자 했다.
그것도 아주 맑고 밝게 사는 지리산 사람과 지리산 마을, 아름다운 산길과 자랑스러운 역사를 사실대로 옮겨놓고자 했다.
당시 지리산을 곧잘 찾던 필자는 지리산의 정겨운 사람들, 인심이 넉넉한 마을, 아름다운 자연, 유서 깊은 역사문화가 좋았다. 지리산은 어둡거나 버림받은 땅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발로,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다.
필자가 <지리산 365일>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8년 7월11일 펴낸 이태의 <남부군>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지리산은 너무 어둡고 살벌하고 처절하기까지 했다.
필자가 찾은 지리산은 그러나 그 어둠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평화시대, 자유시대, 낭만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필자는 지리산의 이 건강한 모습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것이 집필 동기이다.
그래서 <지리산 365일>에는 빨치산 이야기 등의 어두운 얘기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빨치산 얘기는 필자가 그 뒤에 펴낸 대하르포 <지리산 1994>, <지리산 반세기> 등에 썼다.
<지리산 365일>을 쓰기까지는 무엇보다 필자가 운용했던 <우리들의 산> 모임이 큰 뒷받침이 되었다.
필자의 이 글을 위해 ‘우리들의 산’ 르포팀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이광전, 여승익, 김애란 등등…아무리 고마워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지리산 역사와 문화를 기술하는 데는 앞서 언급한 이종길 님의 <지리영봉>과 김경렬 님의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1, 2권 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리산 365일>은 200자 원고지 2700장의 분량이다. 하지만 필자의 지리산 글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하르포 <지리산 1994>(국제신문 출판국)는 대하르포 <지리산>1, 2권 분책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200자 원고지 3000장 분량이다. 이밖에 ‘빛깔 있는 책’ <지리산>과 <지리산 반세기> <나의 지리산 사랑과 고뇌> 등을 합하면 참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그것도 모자라서일까?
여기 인터넷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지리산 관련 글들을 이어가고 있다.
누구 말처럼 이것도 숙명인지 모르겠다.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니까!
“지리산, 정말 이름 그대로 지리(지루)하고, 지겹지도 않은가?”
이런 질문을 받을 만도 하다. 그렇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을 필자는 여전히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지리산의 푸르름과 함께 늘 청안하시옵길, 건필하시옵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