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6)

by 최화수 posted Mar 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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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는 1990년 5월에 펴낸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1권 표지, 아래는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저자인 김경렬 님 옹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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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1, 2>는 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아스라한 역사의 흔적을 좇아, 달의 궁전이란 마한의 궁궐터가 여태도 달궁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는 사연과 천 년 동안이나 천왕봉을 지켜온 성모석상과 그 신성한 품에 기대었던 뭇사람들의 자취, 그리고 김종직 김일손 조식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정신의 뿌리들을 들추어내고 있다.’

월간 마운틴 김선미 기자가 쓴 기사의 일부이다. 김 기자는 계속해서 지은이 김경렬 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부산일보 기자였던 김경렬 씨는 30여 년 동안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유물을 발굴하고 옛 문헌을 뒤지면서 지리산을 새롭게 읽어냈다. 또한 산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많은 역사들을 채집해 담아 놓았다.
현장취재와 원고, 사진 그리고 책의 편집과 디자인은 물론, 제작 경비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해결하여 이 책을 세상에 남겨놓았다.’

김선미 기자는 이 책을 ‘지리산에 바친 한 사내의 인생 전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리산이 근대사에 새롭게 떠올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다면서, ‘부산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최소량만 겨우 찍어내 몇몇 사람들에게만 회자되었을 뿐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는 것.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1, 2>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0년 5월10일부터 1991년 5월20일 사이에 서울의 도서출판 다나에서 펴낸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전 4권)이 중판을 거듭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김선미 기자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김경렬 씨가 선조들의 산행기록을 가지고 지리산을 다시 오른 것처럼 최화수 씨는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를 지도삼아 <지리산 365일>이란 산을 올랐다. 뒤늦게 <지리산 365일>을 통해 김경렬 씨를 알게 된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희귀본이 돼버린 이 책을 소장할 수 있는 행운은 그리 많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김선미 기자는 김경렬 님의 이 책이 최화수에게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비유한다.
‘선배들의 교과서를 대물려 쓰던 지난 시절처럼 김경렬의 책은 최화수의 교과서가 되었고, 최화수가 졸업논문처럼 새롭게 해석해낸 책은 지리산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양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권은 1987년 11월, 2권은 1988년 11월에 펴냈다. 필자의 <지리산 365일>이 책으로 펴내진 것은 1990~91년이다.
그렇지만 <지리산 365일>은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국제신문에 225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것을 자구 수정 없이 그대로 책에 담아 펴낸 것이다.
신문 연재는 1989년 봄에 시작했으니, 김경렬 옹의 책이 나온 지 불과 몇 달 후였다.

필자가 김경렬 옹의 책을 들고 지리산을 찾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김 옹의 책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필자는 지리산에 이미 푹 빠져 있었다.
또한 김 옹의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과 최화수의 <지리산 365일>은 저작 의도나 지향점이 전혀 다르다.
그럴지라도 김 옹의 책이 ‘최화수의 교과서가 되었고, 최화수가 졸업논문처럼 새롭게 해석해낸…’이라는 김선미 기자의 지적은 맞다.

필자가 김경렬 옹의 역저 <다큐멘터리 르포 智異山 1>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서점 등을 통해 구매한 것이 결코 아니다.
김 기자의 지적처럼 자비출판(自費出版)으로 소량의 한정판(限定版)을 펴냈으므로 서점 판매대에 깔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면 지은이가 필자에게 주었는가? 아니다. 2권은 지은이로부터 직접 기증을 받았지만 1권은 아니다.
  
1권의 귀한 책을 필자에게 기증한 이는 김경렬 옹의 사위인 윤쾌수 님이다.
어째서 사위로부터 책 기증을 받게 되었을까?
당시 필자는 ‘우리들의 산’이라는 산악회를 이끌었는데, 그 사무실이 윤쾌수 님의 건물에 세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산>이라는 산 책자를 매달 펴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는 건물 주인이 장인의 지리산 책을 기증한 것이다.

윤쾌수 님의 부인은 당시 부산에서 유력한 공직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산대 약대 출신의 재원으로, 알고 보니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 캠퍼스에서 눈여겨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미모와 지성을 고루 갖추어 많은 남학생의 선망의 대상이 된 그녀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꽤나 많이 흐른 어느 날, 우리 산악회가 세를 든 건물의 여주인이 그녀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보다 더 놀랄 일이 있었다.
하루는 그녀의 안내를 받아 노신사 한 분이 우리 산악회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 노신사는 단박에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낯익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 지난날 부산일보 편집국의 ‘마도르스 파이프’ 그 신사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녀는 그 노신사의 따님이었으니…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