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재' 공수네 메주와 무청(1)

by 최화수 posted Dec 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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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해도 저물어간다.
서산의 공제선에 걸려드는 해가 유난히 크고 붉다.
거인의 임종이 저렇다고 했다던가.
산 너머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일까.
그렇지만 불덩이 같던 그 해도 금세 산그늘 저쪽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어둠이 화살처럼 빠르게 사방을 포위한다.
동지(冬至) 한파...이제는 어쩔 수 없이 겨울이다.
밤이 깊어가는 시각, 어둠을 뚫고 걸려온 전화...
"여기 바람이 너무 세차요! 오늘은 정말 춥군요."
지리산 '쌍재', '공수' 아우다.

"춥다고!?"
쌍재가 춥다니!? 좀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에게 쌍재라면 지글지글, 펄펄 끓는 온돌에 밤새도록 등허리를 데우고 또 데우고 하여...
춥기는커녕 너무너무 덥기만 했는데...
그것이 지지난 주말이었다.
쌍재에서 그 날 나는 큰 일을 저질렀다.

장작불을 몇 시간이고 지펴 메주콩을 삶았다.
삶은 콩을 절구통(도구통) 대신 자루에 담아 발로 밟아 으깼다.
그리고 네모꼴로 메주를 다듬었다.
주말 이틀 동안 계속 장작불을 지피고, 삶은 콩을 으깨고, 그렇게 메주를 만들었다.
지글지글 끓는 방에서 밤낮 가릴 것 없이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아주 엉뚱한 경우,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거나, "남의 다리를 긁는다"고 말한다.
쌍재에서 메주를 쑤다니, 그것도 내가...!!!
자다가 웬 봉창이며, 장단지냐는 핀잔을 들을 만하다.
고백을 하자면, '오브넷 사랑방' 때문이다.
'공수'가 올린 바로 그 사진, 메주와 무청!

메주와 무청...그것이 된장이 되고 시래기가 된다.
된장과 시래기는 된장찌개가 되고 된장국이 된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무청은 시래기 가운데서도 왕중왕이다.
'사랑방'의 그 사진을 보고 쌍재의 된장찌개 맛이 꿈결같이 떠올랐다.

또 한 가지의 까닭이 더 있다.
"장작불을 지펴 구들이 지글지글 끓는 방...!"
이 말을 노래 부르듯이 말하는 이가 있었다.
"구들이 지글지글 끓는..."
갑자기 그이가 못 견디게, 너무너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가자, 쌍재로 달려가자!!!"
연말이 닥치면서 이런저런 일이 겹쳐 '1박2일 빼내기'란 무리였다.
올 가을 오브넷 사랑방 가족들의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 쌍재 모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날마다 공교롭게도 일본 출장 등 일정이 겹쳐 쌍재에 가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뒤늦게나마 달래고도 싶었다.

어쩌랴, 무작정 염치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공수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다.
"메주콩 좀 쑤어보자..."
그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나는 또 이렇게 말해버렸다.
"장작불을 종일토록 지펴 온돌을 펄펄 끓게 해보자구!!!"

그렇게 불쑥 찾아가서 메주콩을 삶고 메주콩을 으깨고...
무엇보다 뜨거운 온돌방에서 밤새도록 등허리기 펄펄 끓게 했다.
그로부터 겨우 열흘 남짓 지났는데, 쌍재는 지금 너무 춥단다.
그렇다, 온돌을 끓게 하여 등허리는 뎁힐 수야 있을 테지...
하지만 가슴의 이 냉기를 어찌 장작불만으로 데울 수 있겠는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