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야간산행과 전기공사(2)

by 최화수 posted Dec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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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는 힌두교 주신(主神) 시바의 배우신(配優神)이다. 산스크리트로 '산의 딸'이란 뜻이다.  
칼리여신은 검은 피부에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새빨갛고 긴 혀를 늘어뜨리고, 4개의 손에는 포승, 칼, 잘린 목, 두개골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다.
곧 귀신을 물리치는 데 효험이 있다하여 칼리 신앙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칼리 여신은 자애로움과 광포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마(친절한 여자), 아나푸르나(많은 쌀을 주는 자), 가우리(희게 빛나는 자), 칼리 (검은 여자), 찬디(광포한 여자), 두르가(접근할 수 없는 자)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양면성을 이야기할 때 바로 이 칼리여신을 보기로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은 대개 양면성(兩面性)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引入) 공사를 싸고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환경단체들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사안 자체가 양면성을 지닌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문명의 이기와 환경의 파괴, 그것은 언제나 불가피한 대립관계이다.

국립공원 지리산관리사무소는 지난 11월말 벽소령대피소에 대한 전기 인입 공사를 마무리한데 이어 해발 1600미터의 세석대피소 전기 인입 공사를 추진중이다.
거림골을 따라 세석대피소까지 총연장 6㎞, 지중매설 구간 0.4㎞를 제외한 5.6㎞는 직경 215밀리의 전주 160여기를 이용하는 구간이 된다는 것이다.

지리산관리사무소는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공사의 불가피성을 내세운다.
이 대피소는 연간 2만7000리터의 경유를 사용하여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다. 그에 따른 매연, 소음과 경유 운반 과정의 기름 누출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또한 전기를 끌어들이면 연간 5000만원의 운영경비도 그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리산생명연대 등 환경단체는 "세석대피소 전기 인입 공사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국립공원내 자연보존지구는 생물 다양성, 자연생태계의 원시성, 보호야생동식물의 서식, 뛰어난 경관 가치가 인정돼 특별한 보호를 위해 지정된 곳으로, 복원 및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 이외에는 어떠한 시설의 설치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는 대전제를 앞세운다.

환경단체들은 또한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공사를 하게 되면 지리산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아니라 탐방객의 휴양시설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립공원 보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신중한 분석과 논의도 없이 지리산 주능선까지 함부로 전기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
세석대피소에 전기 인입 공사를 끝내면 설악산과 한라산 등에도 전기공사를 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한다.

지리산관리사무소는 창원 소재 W사 직원 654명이 지난 11월13일 새벽 4시께 집단으로 야간산행을 시작한 것에 대해 3억27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것을 추진하고 있지 않는가.
수백명의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야간산행을 한데 따른 등산로 주변의 주요 동식물 서식환경을 파괴하는 것 등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등산객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도 야간산행은 금지되고 있다.  

야간산행을 하는 이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지리산 관리사무소가 주능선상의 대피소에 대한 전기 인입 공사를 강행하고자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법하다.
그렇지만 수백명이 이용하는 대피소에 전등을 켜는 것이 불가피하고, 경유로 발전기를 돌려 전깃불을 켜고 전기기기들을 이용한다면 아예 전기를 끌어들이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세석대피소 전기인입 공사, 여기에도 '칼리의 양면성'을 떠올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