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문수암에서 죽을랍니다!"

by 최화수 posted Nov 02, 200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 문수암에서 죽을랍니다!"
도봉(道峰) 스님이 '10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남겨두고 문수암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여름 애써 마련한 새 토굴 석계암으로 거소를 옮긴 지 불과 넉달여 만이다.
"따뜻한 데선 게을러져서 안 되겠어요."

아직은 따뜻하고 편안한 것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니란다.
아니, 목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찬바람이 솟아나는 곳에서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자 하는 스님이다.
"나 문수암에서 죽을랍니다"는 이 한 마디에 스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을 터이다.

"석계암은 그저 안온합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니 긴장도 풀리고, 생각도 느선해져요. 문수암 찬바람이 어찌나 그립던지!"
스님이 새 토굴 석계암을 마련한 것은 노후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힘이 넘쳐나지 않는가. 평생을 수행정진한 스님으로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가로운 휴식'이 무슨 사치처럼 생각됐을 법도 하다.

석계암은 도봉 스님이 필생의 수행으로 겨우 세운 토굴이다.
문수암을 찾는 등산객이나 불자들이 한푼 두푼 모아준 헌금과 화주보살의 시주 등으로 어렵게 장만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스님의 '평생'이 그 석계암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의 무슨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란다.

석계암을 짓기 위해 스님은 평생 동안 모은 그 모두를 다 쏟아넣었다.
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는 따뜻한 명당에 세운 새 토굴은 비좁고 남루한 문수암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법당도 넓고, 뜰도 넓고, 자동차 도로까지 연결돼 있다.  
해발 1000미터 응달진 곳에 자리한 문수암과는 천양지차다.

도봉 스님은 그런 석계암을 박차고 나왔다.
스님은 곧장 찬바람이 점점 세차게 솟아나는 문수암으로 되돌아왔다.
"문수암이 그립더라고요. 문수암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났고...그 사람들이 그립기도 했고요."
스님에게는 문수암이 고향이나 같을 것이다. 20수년을 홀로 수행정진한 문수암이 아니던가.

스님이 '평생'을 바쳐 마련한 석계암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터를 구입하고, 땅을 고르고, 길을 닦고, 법당을 세우고 하는 데만 1억8000여만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굴암은 일을 도와준 박처사에게 관리를 맡겼어요. 그이도 혼자 공부하고 싶어하니까..."
스님이 노후를 의탁하고자 했던 석계암이었는데...!

"어차피 공수래 공수거 아니던가요!"
스님은 문수암으로 되돌아온 것을 오히려 기뻐한다.
"나 문수암에서 죽을랍니다."
그래서 문수암에 다시 머물게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느라 다른 걱정도 생각도 접어둔 스님이다.

"문수암에서 등산객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스님은 석계암에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깨우쳤는지 모른다.
빈한(貧寒)하기 짝이없는 문수암!
모든 것이 불편한 문수암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더 정겹고 포근하게 여겨지는 모양이다.

"땀도 실컷 흘려보고 싶었어요. 석계암에선 땀 흘릴 일이 없더군요."
스님은 땀 흘리며 일하거나 운동하고자 한다.
문수암은 마을에서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땀이 나지 않겠는가.
스님은 그 땀을 사랑하며 문수암을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스님은 '평생'을 바쳐 마련한 석계암을 미련없이 떠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