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만나는' 극락세계(1)

by 최화수 posted Jun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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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碧松寺)는 지리산 8대 사찰의 하나로 꼽힌다.
칠선계곡을 찾는 길에 들러볼 수 있고, 벽송 지엄대사의 흥미로운 전설도 있다.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의 무대라고도 하고, 독특한 형상의 목장승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벽송사와 조금 좋지 못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9년 한여름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제신문에 <지리산 365일>을 연재하면서 벽송사에 취재차 들렀을 때의 일이었다.

사찰로 오르는 산길 중간에 민중미학(民衆美學)의 표상이라는 목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한쌍의 목장승 가운데 여장승인 금호장군은 1969년 산불이 났을 때 머리가 타버려 숯이 되다시피 했고, 코도 떨어져 참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목장승을 지켜보노라 얼마간 시간을 보낸 뒤 벽송사 경내로 들어섰다.

그런데 필자보다 앞서 사찰에 들어선 사진기자가 스님과 험한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된 일일까?
때마침 당우에 기와를 얹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진기자가 그 광경을 촬영하려고 하자 스님이 벌컥 화를 내며 무단촬영을 나무랐다는 것.
사진기자도 어이가 없었던지 스님에게 맞고함을 치면서 사태가 험악해진 것.

이 일은 꽤 오랫동안 필자의 뇌리에 씁쓰레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칠선계곡을 찾을 때도 필자는 벽송사 쪽으로는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던 것이다.
광점리와 얼음터를 거쳐 하봉이나 치밭목으로 갈 때도 벽송사에는 들리지 않았다.
6.25 때 인민군 야전병원 구실도 했다는 벽송사는 화재로 소실되어 당우도 근래에 다시 세웠고, 3층석탑이 유일한 보물로 자리할 뿐이었다.

...벽송사를 의식 무의식적으로 멀리 했던 바로 그 때문에 필자는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살아서 만나는' 극락세계가 벽송사의 한 암자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벽송사 서암(西庵), 지금은 사찰로 승격하여 '서암정사'로 불린다.
필자가 이 서암정사를 찾은 것은 2003년 1월, 사찰 경내 정려에 옮겨놓았다는 목장승을 다시 한번 만나보려고 갔을 때였다.

벽송사 주차장 위 삼거리에서 왼편 비탈 도로를 잠시 걸어오르니 아주 경이적인 불국정토의 신비로운 세계가 열려 있지 않겠는가.
한 스님의 원력으로 바위를 뚫어 극락보전을 이뤄놓았는데, 참으로 찬탄불금이다.
돌에 불과한 암반에도 부처님의 숨결을 만들 수 있다는 스님의 원력을 실감케 했다.

바위를 깎아 극락세계를 만든 서암정사의 경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람의 집념이면 해내지 못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신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또한 보여준다.
아니, 바위가 부처가 되는 현실이 또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서암정사를 21세기의 불국정토로 만든 이는 벽송사 조실 원응(元應) 스님이다.
1989년 서암으로 옮겨온 스님은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에 대방광문(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세계), 광명운대(光明雲臺: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 등을 조각하고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