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 '孤雲洞天'(2)

by 최화수 posted May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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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간 마을의 집들은 지난 80년대 이래 크게 탈바꿈을 했다.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가 슬레이트로 바뀌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혁명적 변화였다.
전래의 땅집 귀틀집들이 헐리고 새로운 ‘슬라브 양옥집’이 들어섰다.
'지리산 냄새' 가 사라진 이 집들은 지리산을 찾는 탐방객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주로 ‘민박’ 등 상업적 목적에서 세워진 경우가 많다.

90년대 이후 지리산 자락에는 다시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회지 사람들의 주말 별장용 주택이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상업 목적의 팬션도 지리산 주택 구조를 바꾸는데 일조했다.
귀농 또는 귀향을 했거나,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기도 했다.

집을 좋게 짓는 것은 누구나의 욕망이리라.
첨단 건축자재와 현대적 공법이 눈부신 주택문화를 창출한다.
또 여유 있는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는 과시욕 또는 경쟁심리도 발동하는 법이다.
지리산 자락 곳곳에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위풍당당한 가옥’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지리산 자락에 잘 지어놓았다는 주택에 한번 들어가 보시라.
놀랄 만큼 화려 찬란하다.
사실 문명의 이기(利器)는 전기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마음대로 누릴 수 있다.
지리산의 주거생활 혁명도 전기 공급, 통신시설과 도로 확충 등에 따른 것일 터이다.

그런데 지리산의 아름다운 집 ‘고운동천’은 ‘지리산 가옥의 반란’이라고도 할 만하다.
‘고운동천’은 지리산의 가옥 혁명과는 거꾸로 거슬러 간다.
굴피지붕에 나무와 황토로 잘 지어놓은 전통가옥 황토집 세 채!
이들 집에는 일부러 전기를 넣지 않았다. 문명의 이기란 한 가지도 없다.
반문명의 '자연생활’을 따르고자 하는 이 집 주인의 의지가 읽혀진다.

많은 돈을 들여 잘 지어놓은 집, 그러나 현대 문명과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있다.
전등도 전화도 없고, 라디오도 TV도 없다.
취사대도 없고 세면대도 없다.
샤워시설도 없고 양변기도 없다.
요란하게 꾸미고 장식한 다른 지리산의 새로운 집들과는 정반대이다. 흙집의 수수한 그대로가 전부이다.  

없는 것이 많아서 불편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란 것이 주인장의 대답이리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끌어넣지 않은 것이 아니다(입구의 살림집에는 전기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전기가 없이도 잘 살았다.
지금이라고 못 살 까닭이 없다. 편리나 불편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 터이다.

아름다운 집 '고운동천'을 가꾸고 있는 주인공은 이도정, 이창석 형제이다.
형은 부산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동생은 고운동에 살면서 함께 힘을 합쳐 아름다운 자연생태의 집을 가꾸어가고 있다.
고운동은 8대 선조 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정도님은 고운동에서 성장했는데, 초등학교는 30리를 걸어서 통학했다는 것.

형 이도정님은 소박하면서도 다정다감하다.
동생 이창석님은 부산대 경제과를 나온 미남자인데, 아름다운 부인과 귀여운 자녀들과 함께 아예 고운동에 정착하여 '고운동천'을 낙원으로 일구고 있다.
유기농으로 기른 청정 채소로 담근 김치 독들을 2년째 땅속에 묻어둔 것에서도 이들 형제의 '자연귀의(自然歸依)'의 뜻을 읽게 된다.

필자가 '고운동천'을 찾은 날, 때마침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이병철님이 이 자연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겠다며 찾아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이병철님은 '지리산생명연대'와 '녹색연합'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늘 바쁜 그이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것에서도 ‘고운동천’이 얼마나 아름다운 집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