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글', 누가 먼저 썼나?(5)

by 최화수 posted Feb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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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은 김경렬 옹이 1988년에 펴낸 <다큐맨터리 르포 지리산> 2권 표지이며, 아래 사진은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으로 김경렬 옹이 1960년 2월 구례군 광의면에서 촬영한 것이다. 겨울방학 기간에 학생들이 지게를 지고 줄지어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모습이다. 반세기 전 지리산의 이런 모습을 요즘 학생들은 어찌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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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4년 필자는 걸핏하면 부산일보사를 들락거렸다. ‘부대신문(釜大新聞, 부산대학교 신문)’을 그곳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 입학 직후부터 교내 신문 기자로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부산일보 편집국에는 마도로스 파이프를 늘 입에 물고 데스크에 앉아 있는 아주 멋진 신사가 있었다. 그 분이 훗날 알고 보니 나중에 <다큐멘터리 지리산>을 쓴 김경렬 옹이었다.

김 옹은 20대에 중국으로 건너가 통신사 특파원을 시작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매일신문, 대한신문을 거쳐 당시에는 부산일보 취재부장을 맡고 있었다. 김경렬 옹이 위의 책 1권과 2권을 펴낸 것은 1987년과 1988년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은 필자가 그이를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있는 멋진 신사’로 눈여겨 보았던 1963년, 바로 그 시기를 전후하여 씌어졌다.

<지리산> 1권이 김종직 김일손 조식 이륙의 기행록 ‘유두류록’을 따라가는 편력기로 엮어진 것에 반해 <지리산> 2권은 지리산 개산기(開山記), 지리산 문화의 산실 운상원(雲上院), 지리산 가락국기, 서산(西山)의 지리산 20년, 칠선계곡 등반로 개설 기록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1960년대 초반에 부산일보 등에 시리즈로 썼던 것들이다.

1962년의 ‘지리산 7주야’와 ‘산막주변’은 '유두류록‘ 편력기이고, 1963년의 ’음악의 연원지‘는 운상원을 소개한 글이며, 1964년의 ‘지리산 학술조사 및 칠선계곡 등반로 개척보고서’ 역시 현지 보고로 부산일보에 연재가 되었다. 물론 책을 낼 때는 내용을 대폭 보완했지만, 그 초고는 거의 20여 년 전에 신문에 먼저 실었다.

‘달의 궁전 마한도성’이나 왕산 자락의 양왕릉(讓王陵), 서산의 지리산 20년 등의 귀중한 사료들은 누구보다 앞서 지리산의 역사를 밝혀낸 것으로 그 가치는 참으로 엄청나다. 지리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한학에 정통한 김경렬 옹이기에 지리산 개산 역사부터 한국전쟁의 참상에 이르기까지 그 두터운 베일을 벗겨내는 것이 가능했으리라.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1, 2권이 나온 얼마 후 필자는 김경렬 옹을 만나게 되는데, 지난 1963년 부산일보 편집국에서 인상깊에 지켜본 그 ‘마도로스 파이프 신사’임을 알고는 꽤나 놀랐다. 필자가 그이를 4반세기를 훨씬 넘긴 뒤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작용했다. 더구나 필자는 김 옹과 함께 지리산을 함께 찾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