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22)

by 최화수 posted Apr 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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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4월6일)

예부터 일컬어오던 이름들, 그것이 함부로 붙여진 것은 아닐 터이다.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신선(神仙)이 사는 곳을 동자에게 묻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지명으로 남아 있다.

산청군 시천(矢川, 덕산)은 산, 내, 들이 3위1체로 명당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의 물을 화살처럼 흘러보내는 시천천,
그 북쪽은 연화부수(蓮花浮水)가 있다 하고,
그 남쪽은 금환낙지(金環落地)가 있다 했다.

시천천변 국동(菊洞)마을은 갈마음수(渴馬飮水)의 명당이라 하여
지명이 음수모퉁이,
그 위쪽을 '물위'라 하고,
그 아래는 '물아래'라 불러왔다.

'갈마음수' 건너편 '물아래' 첫마을이 상지(上芝)이다.
옛날에는 '나락금'이라고도 불렀다.
'장진보'라는 물을 끌어들이는 보(洑)가 있고, 애틋한 전설도 따른다.

상지마을에서 '물위' 쪽으로 과수(果樹)나무들이 제법 많다.
사과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밤나무...
봄빛이 이들 나무 가지들에서 너무나 따사롭다.
햇살이 간지러워 꽃망울이 킥킥거리고, 새 순이 몸을 비틀기도 한다.
그 나무 아래 흰민들레가 이쁜 꽃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민들레 좀 얻어가려고요!"
"아, 또 오셨네요. 어쩌지요.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상냥하고 친절한 젊은 부인이 웃음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지난해 민들레를 얻어러 왔던 우리를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때와 똑같이 밝고 친절하게, 환한 미소를 꿈결처럼 안겨준다.

그녀는 남편과 시아버지, 어린 딸과 함께 전지작업을 하고 있었다.
"흰민들레가 좋다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사람, 저 사람 캐가고 남은 것이라고 조금..."
그녀의 남편과 시아버지도 웃음으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3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네요."
"그렇기는 하지만, 정성 들인 만큼 소득은 없어요."
3대가 행복한 삶을 함께 누린다면 소득이 많고 적음이 무슨 대수랴!

송하문동자!
신선이 사는 곳을 동자에게 묻는다고 했다.
신선(神仙)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이들 가족이 바로 신선이나 같지 않겠는가.

이 곳에서 태어나 도회지로 떠난 이들도 많다.
하지만 고향을 지키며 부지런하게 일하는 젊은 부부,
그들의 아버지와 이쁜 딸도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송하문동자, 신선이 사는 곳을 물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4월6일의 일을 필자 사정으로 뒤늦게 글을 올렸습니다.)